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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an 06. 2022

새해 새벽에 찾아든 것은

 희망이 아닐지라도,



1월 2일 일요일 새벽 4시, 내 휴대폰 벨이 울렸다. 딸이었다. 남편과 나는 후다닥 딸의 방으로 갔다. 아이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라고 가느다랗게 말하며 벌벌 떨었다. 손발은 차고 식은땀이 가득 배어있었다.


딸의 불안 증상은 몇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집에서는 멀쩡한데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호흡이 가빠지며 어지러움증이 생기곤 했다. 심전도와 혈액검사 등 내과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 마음의 문제이려니 그 안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순서라 생각했다. 지인의 소개로 몇 주 전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그러나 증상이 잦아지고 힘들어해 정신의학과에 갔다. 문진과 상담이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의사는 "네 불안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다독여 주었다. 타이레놀보다도 안전하다며 증상 완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아이 표정이 밝았다. 불안을 안고 있는 스스로가 불안했기에 의사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약을 먹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방심하고 있던 새해 새벽,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안'이 아이의 심장을 짓눌렀다. 평소에는 수 분 정도면 가라앉았는데 새벽에 온 녀석은 강했다. 비상시에 먹으라고 준 약을 먹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창백해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또다시 심전도와 X-ray를 찍고 채혈을 했다.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수액과 안정제 링거를 맞았다. 아이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었지만 '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었는지 손은 땀이 줄고 따뜻해졌다. 예상했던 대로 이전에서처럼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 없었다. 비상시에 먹으라고 준 쌀알만 한 안정제 다섯 알을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 새벽에도 녀석은 찾아왔고 아이는 두려워하며 비상약을 먹었다. 불안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심장박동수는 정상치를 벗어났다. 긴긴 새벽을 버텨내고 월요일 아침 다니던 정신의학과에 다시 갔다.


"심장은 아무 이상 없어요, 절대 죽지 않아요. 아셨겠지만 응급실을 가도 소용이 없어요. 또다시 그 녀석이 오면 끌려가지 말고 숨을 크게 쉬고 심호흡을 해요. 약 먹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요. "


의사는 응급실에서 준 약은 딸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지어준 것이니 버리라고 했다. 예전에 자신이 처방한 비상약을 안정이 될 때까지 몇 알 더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는 새벽에 녀석이 오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자며 약을 바꿔주었다. 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약을 바꿔 먹은 다음 날 새벽에도 그 못된 녀석은 또다시 찾아와 아이 심장을 마구 펌프질 해댔다. 딸은 이번에는 비상약을 먹지 않고 미리 준비해 놓은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심장을 다독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이의 가느다란 뒷모습이 너무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아이를 그저 지켜보고 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다행히 불안은 작은 그림자만 남기고 떠났고 아이의 손이 말랑해지면서 우리 둘은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잤다.


딸은 작년 한 해 휴학을 하고 취업에 필요할 만한 대외 활동과 교환학생 지원에 필요한 어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공황발작이 있기 전) 아이가 울먹이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런 사전 공지도 없이 자신이 교환학생으로 가고자 하는 대학의 지원 기준이 바뀌어 여태 준비한 자격들이 무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 담당기관에 항의를 했지만 미리 공고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왔다. 아마도 이 절망이 아이의 심장을 절구질했을 것이다.


아이는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것을 보고 나약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이건 정신력으로 되지 않는다.'라고 다. 말 그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르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은 아프지만 그 두려움과 고통은 가늠만 할 뿐이다. 절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함부로 가벼이 말해서도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다.


딸은 아침과 잠들기 전에 명상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나와 함께 한 시간 남짓 호수공원을 걷는다. 더 이상 '불안'을 검색하지 않고 그곳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비닐봉지를 옆에 두고 고3 때 안고 자던 노란 계란말이 인형을 다시 껴안는다. 불안을 불안해만 하지 않고 맞설 준비를 하는 것이다.


'희망 찬' 새해이어야 할 첫 주일 새벽에 우리 가족에게 찾아든 것은 느닷없는 농도 짙은 '불안'이었다.

절대 내 바람대로 흐르지만은 않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있다. 일상을 암울하게 흩트려놓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식상된 문구가 큰 위안이 된다. 진부한 말이 진리일 경우가 많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딸이 친구들과 zoom으로 수다를 떠는 소리를 듣는다. 두 시간 넘게 깔깔거리고 있다.

그 검은 녀석은 또 '느닷없이' 딸을 찾아올 것이다. 아이들의 공황장애를 이미 겪고 있는 지인들의 조언과 위로 속에서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서운하고도 불안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반드시 불안을 물리치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약이든 심리상담이든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이든 아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단지 보조적 도움밖에 줄 수 없다.


언젠가는 홀로 주먹 쥐어야 할 가느다랗고 하얀 손, 그 안에 배인 땀을 닦아주는데 눈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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