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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22. 2022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착각



"전학을 가라, 너희를 가르칠 생각이 없다. 부모님들, 아이들 데리고 가세요. 전학 가세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죄스러운 마음으로만 아이 뒷 자석에 앉아있었다. 무릎이라도 꿇어야 한다면 꿇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러나 다짜고짜 중식도를 내리치듯 한 교감 선생님의 말에 분노가 일었다. 안다. 내 자식이 잘못했고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걸. 그런데 학폭도 아닌 선도위원회였기에 그렇게까지 강도가 반응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몹시 당황스러웠고 불쾌했다.


정글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렇게 참담한 순간은 없었다. 나 자신이 아닌 자식의 일이라 감정이 과잉되었을까. 남편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나 훈육을 할 때도 듣기 싫고 그가 미워지는데 하물며 남이, 그것도 학교 선생님을 통해 듣는 내 자식의 허물은 참고 받아내기가 힘들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아버지가 각자의 아이들 뒤에 앉아있었다. 두 명의 어머니가 잘못했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들도 교감 선생님의 강한 공격에 놀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는 울지 않고 분노를 느꼈을까.


내 아이를 포함해 같은 반인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죄명이 같았다. 반장과 담임 선생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희롱하거나 욕설을 하였다. 반장은 선생님의 부탁으로 수업태도가 좋지 못한 아이들을 파악하고 보고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한 시스템에 아이들 대부분이 불만이 많다고 언젠가 아들이 지나가면서 툴툴대긴 했었다. 그런 간섭과 감시가 부당하다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했을 것이다. 그 주동자들 중 한 사람이 내 아들이었다. 아이들의 비아냥을 견디지 못한 반장이 언어폭력으로 아이들을 신고하였고 더불어 담임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과 욕설의 내용도 신고되었다. 상대방의 면전이 아닌 쉬는 시간 교실에서의 험담이었기에 학폭이 아닌 선도에 그쳤을 것이다.


아들의 죄의 경로는 이러하다. 첫째, 휴대폰을 반납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 사용한 것을(금지사항) 반장이 선생님에게 보고를 했고, 아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것도 아닌데 굳이 고자질을 하냐고 일부러 반장이 들으라고 큰소리로 비꼬았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아들이 '거의' 떠들지 않았는데도 떠들었다고 자백하도록 유도했고 아이는 마지못해 인정했다고 한다. 그것이 억울했다.  (이것은 아들의 말, 선도위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둘째, 선생님이 나가신 뒤 몇몇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선생님에 대한 욕을 했다. 한 대 치고 싶은 느낌은 처음이다, 18, 이라고. 마지막 진술문에서 나는 절망했다. 누구의 아들이 아닌 내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사건을 전해 듣고는 아이에게 확인한 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를 드렸었다. 간접적이긴 했지만 제자에게 그런 말을 듣고서도 내게 미소를 보여주셨던 담임 선생님에게 너무도 죄스러웠다.


아이들이 18 같은 욕을 말끝마다 추임새처럼 붙인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너의 고운 입술에서 그렇게 상스러운 말은 제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늘 말해왔는데. 어른들, 특히 선생님께는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지겹도록 이야기했는데. 아이는 그저 스르륵 넘기는 도덕 교과서처럼 내 말들을 흘린 거다. 집에서는 단 한 번도 아이 입에서 그런 욕을 들어보지 못했고 인사성도 밝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 욕은 선생님을 향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아이들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담임 선생님과 반장의 태도가 불합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폭력성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반장이 '꼰질러서' 자신들이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억울해하고 있다고. 그 말에 내가 찔렸다. 반장이 좀 참았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내 안에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분노가 조금씩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교감 선생님의 필터 없는 말들은 계속되었다. 너희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선한 아이들이 피해를 보았고, 담임 선생님은 너희들을 가르칠 의욕을 잃었다. 이건 선도위 대상이 아닌 학폭위와 교권보호위 대상이다. 너희들이 학급 분위기를 다 망쳤다. 창피하다. 소문날까 두렵다. 전학 가라. 전학 가서 이미지 개선하라.


교감 선생님의 발언이 더욱 거세어지자 한 선도위원 선생님이 그의 팔뚝을 잡았고 대신 학부모들의 의견을 물었다. 무슨 의견이 있겠는가. 1학기 말이 끝나가는 중3이 전학을 간다는 건 나는 문제아요, 하고 공표하는 것인데. 앞 두 어머니들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반복했다. 그다음 아이의 아버지는 담담하게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교감 선생님에게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뼛속까지 반성하고 있으니 용서해달라고 했다. 내 목소리도 물론 떨렸다. 사죄의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분노의 기운은 살아있어 나는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90도로 절까지.)


부모들의 흐느낌에 교감 선생님은 '나도 아이를 키운다' 라면서 다소 부드러워졌다. 이번 건은 실수라 여긴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의 거친 발언들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유와 원인이 어떻든 아이들이 폭력적인 언행을 한 것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는 심각했다. 뉴스로만 들었던 선을 넘는 아이들 중에 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아이의 그릇된 행동들의 원인은 파고 들어가면 결국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의 결을 인정하지 않고 거스른 시간들의 결과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행동의 원인은 순간적인 직접적 동기보다 오랜 시간 쌓인 어른들에 대한 인식, 혹은 불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만들어간,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준 인식의 틀은 아이를 옭아매고 있었다. 납득이 되지 않아 회색 덩어리 납처럼 제 스스로 무겁게 가라앉기도 했다. 그것 또한 부모, 나의 잘못이다. 욱여쌈을 당한, 억압을 느껴본 존재는 자기 방어를 위해 폭력적이 된다. 아니면 반대로 자기 안으로 깊게 침잠한다. 아이는 분노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어른들 앞에서는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후에 혼자 있게 되면 맨 손으로 벽을 치곤 했다고. 너무 아파서 분노를 잊을 수 있었다고. 아이 말에 겁이 나면서도 슬펐고, 미안했다. 아이의 동의를 얻어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지 않고 타인 탓으로 돌렸던 아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보았다. 반장과 담임 선생님의 상처보다 그들에게 상처를 준 내 자식이 아플까 봐 전전긍긍하는 못난 모습도. 아이 앞에서는 백 퍼센트 네가 잘못했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내심에는 담임 선생님의 교육방식에 대한 의구심과 창피하니 전학 가라고 모멸감을 주었던 교감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남아있다.


아이는 선도위가 열리기 전에 담임 선생님과 반장에서 사과를 했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징계로 내려진 5일간의 교내 청소를 매일 꼬박 두 시간씩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이중성을 발견했고, 고백한다. 폭력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가해자는 할 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자식의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 태도를 취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나불대면서도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유치하다. 아이의 폭력성은 언제든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순화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 부모는 아이의 시험 점수가 아닌 '마음속'을 언제나 물어야 한다.

태풍은 지나갔고 이제 복구(깨달음과 실천)만이 남았다.

아직도 바깥은 습하고 흐리지만 곧 맑게 갤 거라는 굳건한 사실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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