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세미세 좋은, 맑음
매일 아침, 둘째 꼬망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걸어간다. 나의 손은 그저 거들뿐, 그 짧은 10여분의 산책길에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건 자연이다.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의 창이 펼쳐 있으면 “오늘 날씨 좋네! 엄마, 오늘은 킥보드 갖고 와야 해! 꼭이야!” 하며 꼬망의 걸음걸이는 신남을 몇 배로 장착하고 어린이집으로 곧장 날아갈 기세. 집을 나서기 전, 거실 베란다 창으로 내다본 하늘의 표정이 시큰둥 회색 낯빛인 날엔 자동으로 이 질문이 제일 먼저다.
엄마, 미세 미세 보여줘,
하얀 구름 구름 말이야.
이 말은 미세먼지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좋음인지 보통인지 나쁨인지 알려주는 앱을 당장 보여 달라는 뜻이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휴대폰에 ‘미세미세’ 앱을 필수로 갖고 있다. 대기오염, (초)미세먼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건 기본이요, 미세먼지가 수치가 매우 좋으면 하트 뿅뿅 눈에 웃음 표의 얼굴이, 매우 나쁠 땐 방독면을 쓴 검은 악마의 얼굴이, 나쁨 수준일 때는 입모양이 울상인 얼굴이 나타난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라도 미세 미세의 얼굴 표정을 보면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산책을 갈 때조차도 미세먼지를 파악하고 마스크를 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날씨.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려 본들, 과연 미세먼지가 얼마나 걸러질까. 공기마저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맡을 수 없는 이 작금의 현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한숨만 절로 쉬어진다. 오랜만에 해님이 반짝 뜬 맑고 상쾌한 아침. 오늘은 어쩐지 느낌이 좋은 하루. 아이도 하늘의 표정을 파악하고 벌써 들뜬 기분에 취해 있다. 발걸음도 가벼이 꼬망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데 아이 발걸음 맡에 그림자가 생겼다.
여기 그늘이 졌네?! 발 끝에.
어디? 어디 엄마?
여기 봐봐, 엄마 발끝에도 그림자가 있지?
응. 내가 움직이니까 얘가 따라와.
그렇지. 꼭 붙어서 가네.
맞아. 해삐치가(햇빛이) 자꾸 날 따라와. 그래서 그림자도 오는 거야.
해님의 그림자놀이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맑음, 미세먼지가 없는, 근래 보기 드문 하늘이다. 매일같이 이런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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