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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25. 2019

우리 뽀로로 만들까?

안 되는 게 어딨어요, 뭐든지 되는 너의 세상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에 들렀던 어느 날. 친정엄마는 여동생과 모싯잎 반죽을 만들어 송편을 빚고 있었다. 장난감이 없자 울먹거리며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아이. 놀거리가 없어 시무룩해진 아이의 시선을 끈 건, 여동생이 빚어낸 아기 송편 하나였다.


집안 어른들이 손으로 조물 거리며 만들어낸 모양이 신기한지 골똘히 바라본다. 동생은 새알만큼의 반죽 두 개를 빚더니 하나의 반죽에 네 개의 다리를 붙이고 동그란 반죽 윗면에 사선으로 빗금을 가득 새겼다. 다른 반죽엔 꼬리를 만들어 이음새를 고정시켰다. 아이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거북이와 물고기 한 마리가 뚝딱 태어났다.

나도 관심을 끌어볼까 싶어 나비 형상을 빚어보려 하는데 툭 던지는 말.



이건 고래잖아…….




아, 김 빠지는 소리다. 그, 그래... 그렇지만 고래는 아니고 나비였다고 말은 하나마나였다. 몸에 비해 더듬이 비율이 너무 컸던 탓이다. 나비의 더듬이가 아니라 고래가 물기둥을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어쩜 아이의 시선은 이리도 정확한 걸까. 아이 눈에 아닌 거면 정말 아닌 게 맞다. 급히 고래로 수정하여 완성하고 나니 모싯잎 송편 반죽을 갖고 조물조물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슬쩍 말한다.



우리, 뽀로로 만들까?
……


(잠시 침묵...)

엄마와 나, 동생 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던진 말은 분명 의문형이지만  ‘뽀로로, 만들어 줄 수 있지...?’ 하고 밉지 않게 말하는 완곡한 권유형의 문장이었다. 언뜻 보면 함께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난 잘 못하니까, 엄마랑 이모가 나를 위해 뽀로로를 만들어 대령하라는 미션이기도 하다.


송편을 빚던 여동생이 조카의 주문을 즉각 받들어 뽀로로를 빚어냈다. 오! 정말 똑같아! 미니어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오밀조밀 참으로 섬세하게도 뽀로로를 재현해냈다. 손자의 마음을 읽은 엄마는 뽀로로 송편을 찜기에 담아 따끈한 떡으로 쪄 내주셨다.


삶은 놀이인 걸까. 요즘 아이가 몸소 보여주는, 나와 집안의 어른들이 배워가고 있는 진리 중의 하나다. 비록 너의 손은 아직 야물지 못해 온 집안 어른들에게 지시를 할 뿐이지만, ‘안 되는 게 어딨어?!’ 정신으로 모든 걸 또 생각대로 가능케 하는 너의 세계. 그 덕분에 그 세계에 입성한 어른들은 피식피식 웃으면서 잠시나마 아이가 되어 보는 건 아닐까.
‰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2013 #가족 #송편 #뽀로로 만들까
# 거북이, 물고기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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