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토 _ 2020년

by 이게바라

흐린 날씨, 포근하다.



2017년이 다 갈 무렵 난 ‘달빛동맹’이라는 이름의 술집을 차렸다.

이 술집은 나를 버리는 쓰레기통.


나는 늘 ‘영화감독’을 꿈꿨다.


그래서 버릴 게 그것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내 주위 사람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러고도 줄곧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감독이 되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댔으니까.

그 후 몇 년 사이 두 번 정도의 기회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화감독’이란 꿈을 버렸기에 데미지가 없다.

나를 버리면서 내 꿈도 버렸기에 좌절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존심, 자존감은 살아 숨 쉴 정도만 유지한다.

다시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게는 좌절이 있을 수가 없다.


나는 하루하루 그때그때

최소한의 일만 하며 산다.

거기에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일, 소상공인으로 장사를 하는 일 등.

그 일 외에 내가 하는 어떤 일은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여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안 보여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나는 설렁설렁 산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데,

내 어머니가 버렸던 나를 다시 들춰냈다.

그리하여 짠 하고 각성한 내가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겨

죽이는 시나리오를 써낸다면 참 드라마틱하겠지만 그리될리 없다.


이미 버린 나를 찾을 길이 없다.

버린 나를 찾을 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버린 나를 찾을 길도 없거니와

이미 버린 나를 재차 버릴 것도 없으니

이대로 살 것이다.

입에 풀칠하면서 설렁설렁.



그럼에도

쓰레기통을 들추며 나를 찾는 내 어머니의 표정은 잊지 못하겠다.


내 어머니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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