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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Sep 09. 2024

9월 9일  월 _ 2024년

에일리언에게 보내는 팬레터


아! 맞아, 이 얘기는 꼭 해야겠네요. 


영화 역사상 가장 좋아하고, 이뻐하며, 늘 반가운 캐릭터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줄곧 그래왔다는 것을 최근 이 영화가 나오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에일리언; 로물루스




새로 리부팅된 이번 ‘에일리언’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맞아, 이게 영화지~! 보는 내내 영화, 그 원초적 재미를 만끽했습니다.


<에일리언>의 원초적 재미를 쫓아가려면 상당 기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저는 반백 년을 이어온 <에일리언 시리즈>를 참 좋아했습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리즈라 믿습니다. 


듣는 이는, ‘왜 그럴까?’ 의아해하거나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일례로 <에일리언>을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스타워즈 시리즈>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리즈가 있습니다. ‘대부’나 ‘007’ 혹은 ‘아이언맨’을 필두로 수많은 마블 시리즈까지. 하지만 저는 이 모든 ‘시리즈’가 <에일리언 시리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같이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설명이 끝날 때쯤 ‘에일리언’이 얼마나 위대한 캐릭터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에일리언>의 시작은 무려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시작은 괴물이 나오는 B급 호러 영화였습니다. 다만 우주선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새롭다면 새로운 부분이었을 겁니다. 이는 우주전쟁이 배경인 ‘스타워즈’가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니 그 덕 좀 보려고 제작된 것이니 전형적인 콩고물 영화가 ‘에일리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작은 참으로 미비했습니다. 


시작이 이랬으므로 시리즈는 고사하고 후속작도 생각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 영화는 반백 년이 되도록 그 서사를 이어가며 전설이 됩니다. 


시작은 ‘b급 호러’ 양식이었지만 영화 역사상 가장 일관되고 완성도가 있는 ‘시리즈’가 된 이유는 누구나 아는 이 두 가지입니다. 그중 하나는 리들리 스콧입니다. 우리는 ‘에일리언’을 통해 리들리 스콧이라는 위대한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에일리언’에 끼친 영향은 다시 얘기할 것이니 지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에일리언’이 전설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에일리언’ 그 자체입니다. 이 놀랍도록 기괴하고 무서운 생명체. 이 에일리언의 매력이 전설의 원천입니다. 


그 원천의 시작은 외모입니다. 그도 배우인데 외모가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에일리언은 아기 시절의 ‘체스트버스터’부터 그 씨를 전달하는 ‘페이스허그’까지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형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인간을 숙주화해서 생명이 잉태된다는 설정까지. 그의 외모가 완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빅재미가 나올 정도로 외모에 관해서는 외모지상주의 최고 정점에 올라있는 생명체입니다. 아니 이런 수사로도 도저히 그의 외모 칭찬이 충분하지 않기에 외모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이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임스 카메룬의 <에일리언 속편>을 통해 ‘에일리언’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떼거리 에일리언을 본 후라 전편의 ‘에일리언’ 등장이 그리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에일리언 속편’을 통해 외모를 알고 있음에도 ‘에일리언 1편’에서 고양이를 찾으러 간 선원 뒤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에일리언의 첫 등장 장면은 정말이지 존멋 그 자체입니다. 영화 역사상 그 누구도 이 정도의 파괴적인 첫 등장 신은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제임스 카메룬에서의 에일리언도 잠깐 얘기하면 위치 추적기를 통해 떼로 몰려드는 에일리언이 보이지 않자 마이클 빈이 천정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에일리언이 슬금슬금 기어 오고 있는 모습을! 


정말이지 이미 외모로 ‘에일리언’은 전설입니다. 여기에 그를 디자인한 H.R 기거의 업적에 대한 칭송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일리언’의 외모 얘기는 한참을 더 해도 부족할 테지만 여기서 줄이고, 그의 성격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1979년, ‘에일리언’ 1편에서 인조인간 애쉬가 에일리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끈질긴 생명력, 양심의 가책이나 헛된 망상,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에일리언이라 설명합니다. 이 설명이야말로 순수하고 영롱한 ‘빌런’의 탄생을 고하는 선언과도 같아 보입니다. 특히 맘에 드는 특징은 헛된 망상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는 헛된 망상이 없을지 몰라도 그를 본 인간은 모조리 망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 이 부분이 사실 에일리언의 핵심입니다. 우주의 미아가 되어 떠돌아도 에일리언은 죽지 않습니다. 사실 에일리언 1편과 2편에서는 우주로 방출하는 것으로 에일리언을 퇴치하는데, 이 방법은 사실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다 에일리언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가 곧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에일리언의 피는 심지어 우주선도 녹여버리기 때문입니다. ‘에일리언 4편’에서는 심지어 ‘에이미 이언’이 자신의 동료를 죽여 갇힌 곳에서 탈출하기까지 합니다. 이번 ‘로물루스’에서는 ‘에일리언의 피’가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것만으로 엄청난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니가 ‘에일리언’은 피마저 말 그대로 치명적으로 매력적입니다. 




자, 이렇듯 에일리언은 외모에서부터 끈질긴 생명 유지적 기질까지 완벽에 가까운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에일리언 시리즈’는 뚜렷한 서사 없이 에일리언 매력만 갖고는 시리즈를 이어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다행히도 에일리언을 지구까지는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에일리언 4편>의 끝이 폐허가 된 지구에 도착한 것으로 끝났기에 폐허가 된 지구에서 에일리언 시리즈를 이어갔다면 그저 다른 괴수 영화와 차별점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에일리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도 같은 ‘우주’와 ‘한정된 공간’을 버리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히어로가 바로 에일리언의 처음을 함께 했던 리들리 스콧입니다. 




제가 이리도 <에일리언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 경위가 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에일리언 시리즈’의 매력은 ‘에일리언’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에일리언이 이제는 이야기를 확장시켜 이어가기에는 분명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4편에서 머물렀고, 심지어 ‘프레데터’라는 다른 외계 생명체를 데려다가 싸움을 붙여보기도 했던 겁니다. (제가 ‘에일리언’ 매니저였다면 이 영화의 출연을 결단코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을 위시한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그 근원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시작이자 끝, 바로 에일리언에서.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파고 또 판 겁니다. 저는 끝까지 파고, 파서 찾아낸 노고의 결과물인 <프로메테우스>라는 것에 탄복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에일리언’ 시리즈를 넘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제목에서 ‘에일리언’이라는 타이틀도 떼어내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에 ‘에일리언’이 나오지 않으니 그 제목을 달 수 없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에일리언’의 근원을 파다가 결국 ‘에일리언’이 등장하지 않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제가 이해하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시리즈’는 ‘에일리언’으로 인한 생명의 순환구조에 대한 대서사시가 되었습니다. 이 서사시의 화자는 인조인간 ‘데이빗’입니다. ‘데이빗’은 화자이자 빌런이 되었기에 ‘에일리언’이 중심 캐릭터에서 잠시 밀려나고 맙니다. 아마 리들리 스콧이 이 3부작을 완성했다면 다시 ‘에일리언’이 중심에 섰을 텐데 ‘커버넌트’에서 중단되어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데이빗’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닙니다. 


‘에일리언 1편’에서는 애쉬로 ‘2편’에서는 비숍으로 ‘3편’은 건너뛰고 4편에서는 리플리마저 인조인간이 됨으로, ‘에일리언 시리즈’의 늘 조연으로 옆에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로물루스’에서는 인조인간, 앤디가 다채로운 성격 변이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커버넌트>에서 보여준 ‘데이빗’과 ‘월터’를 한 몸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여튼 이렇게 인조인간, 인간, 에일리언, 거기다 엔지니어라 부르는 외계인까지. 이들의 역량을 가지고 생명의 순환구조를 보여주는 대서사시를 만들어 낸 겁니다. 


이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리들리 스콧의 이 영화는 대단히 직접적인 우화인데요, 그래서 이야기는 어렵지 않은데, 기존의 ‘에일리언 시리즈’와는 이야기가 무척 동떨어졌기에 많은 관객이 등을 돌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톤앤매너는 충실하게 유지했습니다. 우주의 한정된 우주선이란 설정을 말입니다. 




저는 여기 지구에 태어나 살면서 ‘에일리언 시리즈’의 위대함을 직관했습니다. 


45년에 걸친 이 웅장한 시리즈는 시작은 미비했으나 그 고민의 과정은 위대했습니다.


결국엔 장사의 목적으로 ‘로물루스’가 탄생했으나 그 역시 참으로 좋아서 다행입니다.


예전 그 자리 어디에 온전히 에일리언을 놓아준 영화가 이번에 나온 ‘로물루스’입니다. 




매끈하게 반질한 피부는 항상 젖어 있고, 군살 하나 없는 몸집에 움직임은 날렵한 에일리언, 강력한 아귀힘으로 천정이든 어디든 붙어 다니며 입안에 입을 성기처럼 쭉 뽑아내는 에일리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저이지만 에일리언과는 사진 한 장 찍고 싶네요,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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