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아나 May 19. 2016

네 가능성을 죽이지 마

가능성은 희망이다



사람들은 주로 무언가 고민할 때 조언자나 상담자를 찾는다. 단순히 털어놓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신뢰하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 수많은 경우 속에서 나는 주로 무책임한 조언자였다. 내 지인이 전공과 상관없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할 때도 그러했고,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에도 그랬다.


'정말 원한다면 해봐.'


해봐. 좋아. 정말 쉽고 무성의해보는 대답이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느꼈을 정도였으니 그 말을 듣고 있던 상대는 얼마나 허탈하고 진이 빠졌을까. 


내게서 그런 대답을 들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이나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모두 진심이었다. 무슨 일이던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


나는 현실적이라는 말이 참 싫다.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그 말의 뒤에 따라오는 말은 늘 부정적인 말뿐이었다. 


'현실적으로 봐서 가망이 없어. 솔직히 네가 그걸 한다고 한다고 치자 그게 얼마나 더 오래가겠어. 영원히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 열려있는데 굳이 왜 되지도 않는걸 하겠다고 설치는 거야. 솔직히 말할게 넌 그쪽에 재능도 능력도 열정도 없어.'


물론 조금은 차갑게 들릴지라도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고 포기하게 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현실적'이라는 말 아래 어떤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른다기보다는 모두들 그 희미한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다.


세상은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이도 벌어진다. 가수보다 노래 잘하는 은행원이 있고, 화가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미화원도 있다.


나의 고민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순 없고, 나의 선택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도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다. 그 책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다면 후회를 해도 실패를 해도 당신은 이미 훌륭한 어른이다.


사회는 냉혹하고 현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차갑다. 그러나 그 '현실'이라는 단어가 이미 훌륭한 어른들의 가능성을 죽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