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스쳐가지 말고.
몇해 전 부터 여름이면 언제나 여행을 떠났다
무전여행이든 유전여행이든 그리고 그 여행이 혼자든 누군가와 함께든 .
내 나라가 아닌 곳의 크고 작은 도시, 그리고 그곳에서 내 나라의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동성이던 이성이던지던간에,
나에게는 묘하게 가슴설레이는 일이고, 서로의 정보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사소한것 하나하나가 약간의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때 만났던 인연들중에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갔던 신기루같은 인연도,
지금도 때가되면 같이 여행하는
죽이 잘 맞는 여행친구가 된 인연도 있다.
#1.바다
프랑스의 남부 어느 바다
석양이 거의 저버린 적보라빛 지중해 바다를 보며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나란히 해변 한 쪽에 앉는다
코발트블루색의 수채화물감 위에
물을 엎질러 번져버린것 같은
하늘을 함께 바라본다
조근조근 이어지는 대화 속에 오가는 여러가지 감정들, 순간순간 끊어지는 대화도 어색하지 않다
그냥 조용히 거대한 오로라를 품은 자연을
묵묵히 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대화를 이어 나간다
#2.파리
트로카데로 아래 정원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10시 정각을 기다린다
딸깍.
10시 정각에 맞춰 에펠탑을 둘러싼 수천개의 전구가 파리를 더욱 빛내는 듯 반짝거린다
모두들 입을모아 환호를 하며 사진을 찍는다
몇번을 봐도 밤의 에펠탑은 너무 예쁘다 괜히 랜드마크다 아니다
5분동안의 화려한 반짝임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환경, 같은곳에서 살아온 사람은 없고, 공통의 관심사 따위는 더더욱 있을리 만무하지만
모두가 서로의 말에 집중하며 상대방을 탐구한다
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여기저기 로맨스가 꽃핀다
슬프지만 나는 언제나 로맨스의 친한친구1이 되어주고 있다 하하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 끼리 다음 만남을 이야기 하고있다
한달뒤 홍대앞 8시.
외국에 거주하는 나로써는 이 약속에 갈수가 없다 근데 너무 가고싶다
#3. 로마
와, 외국이다!
프랑스에 있지만 프랑스는 더이상 나에게 외국이 아니다
(물론 내가 몇년을 있던 여기 사람들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로마에 다녀왔다. 외국에 다녀왔다.
그 무덥다는 로마의 7월은 비가 내렸다
느긋하게 일어나 늦고 이른 '아점'을 먹었고,
해를 마주한 채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걸었다
걷다보니 온갖 역사의 흔적들을 스쳐지나갔고
나도 사람들 속에 스쳐 지나다녔다
여행은 좋지만 만남은 힘들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고 공허하다
여행을 하지 말아야 하는건가
누구를 만나지 말아야 하는건가
혼자 하는 여행은 늘 설레이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