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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Aug 03. 2016

그 여자의 사정, 짝사랑도 아닌데.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혼자다.


- 왜 그녀는 나에게 이 글을 쓰게 했을까

 힘을내요 예쁜당신, 전화 할게요.


흐트러진 생활, 어이없이 벌어지는 그녀도 모르는 일들, 늦은 귀가, 여행, 잠자리.

눈을 뜨자마자 역겨운 매스꺼움에 등 떠밀리듯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나오지 않는 헛구역질을 하며 어제 먹은 음식물들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쓴 물만 나오더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떻게 하루가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그녀의 생활은 많이 흐트러졌다

어제 일이 꿈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바늘 길을 맨발로 걷듯 다녀온 그곳.

그를 만난다는 이유로 비난하던 사람들이 있는 곳..

모두가 그렇게 즐거웠는데 왜 이지경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미련은 없다

단지

그 나불거려대는 주둥이를 떨어져 있는 휴지뭉치로 막고 싶은 심정뿐.


요즘 그녀의 귀가시간은 밤 낮이 없다.

많이 흐트러진 생활

비단 그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 생활에 그를 탓할 수 없는 건

충분히 사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고

만나는 시간은 늘 한정되어있고

그녀가 게으른 탓이 90%를 차지한다


여자는 연애를 하면 생활과 생각의 중심이 90% 이상 연애의 대상으로 쏠린다고 한다

십분 공감이다


세상에 널린 게 남자고 살아가면서 나 좋다고 하는 사람도 계속 생길 것인데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면 여자는 미련해진다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만 생각과 마음은 늘 따로 노는 법

그녀는 매번 그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스린다


어제 그렇게 그곳을 다녀온 후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나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건다

그는 언제나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늘 그저 그런 비슷하고 지루한, 마른 장작 같은 대화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하며, 내용의 의미를 둬서는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조그마한 그 손에서 땀이날 때까지 핸드폰을 부여잡고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그가 퇴근한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이제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를 기다리는 일뿐만 남았다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티브이를 보며 잠시 쉬다가,

기다리며 읽을 책을 주섬주섬 챙기고,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옷장 한가운데에 고의 모셔놓은 새 블랙 시폰 원피스를 갈아입고

일주일에 한 번 화장할까 말까 한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정성 들여 화장도 하고

몇 번이고 같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 뒤

아슬아슬한 스트랩 힐을 신고

그를 기다리러 갔다.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서 병아리 모이 먹듯 재잘거린다

그녀도 그 속에 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에게 서울은 참 외로운 도시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하루하루가 이렇게 외롭기는 처음인 것 같다



까맣고 동그란 큰 눈과,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그녀.

누구를 사귀든 그녀는 항상 사랑받는 쪽 이었다.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냐는 아침인사가 꼭 와있었고

혹시나 그녀가 문자를 못 봤을까 비슷한 뉘앙스의 중복된 메시지를 받기도 했었다.


바쁜 와중에도 틈을 비집고 연락 주는 상대방이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주자주 전화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쉬는 날에는

그녀의 회사 근처에서 맛집, 데이트 코스를 고민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가끔 집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고 기다리는 낭만적인 사람도 있었다.


예쁜 옷이나 액세서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얼마 되지 않는 가격의 작은 선물이지만

가끔 그런 귀여운 선물들로 그녀를 감동시켰고

뭐하나 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그녀가 잘 챙기지 못해서 그냥 넘어가버리는

사소하고 작은 기념일 하나도 꼼꼼하게 챙겨줬고

잠이 쏟아지면서도 그녀에게 줄 거라고

졸림이 한가득 느껴진 글씨가 적힌 짧은 편지도 받았었다.



툭하면 삐지는 그녀를 달래려

본인도 화가 날텐 데도

꾹 참고 하루 종일 열심히 토라진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생각한다.

더 이상 구구절절이 늘어놓으면 무엇하랴

다 지나간 인연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진 않다

그 좋았던 기억이 흐트러지는 게 너무 싫으니까


과거를 회상해본 까닭은

그와 만나면서 매일 느끼는 그녀의 외로움 때문이다


그가 좋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바쁘고

한정되어있는 저녁시간에 잠시 만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되는 그로서는 최선인 듯

늘 피곤한 모습으로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언제나 기다린다.

먼저 출근하는 그 사람이니까

혹시, 자고 일어나면 잘 잤냐는 아침인사가 와있지 않을까?

아침에 연락이 없으면

연애 초기처럼 sns에 비밀 글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그것부터 확인한다

없는 글을 보며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고,

그녀는 열심히 비밀글을 남긴다.


상냥한 답변이 남겨져 있지 않을까,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보지만

글은커녕 이모티콘 하나도 없다


점심시간에는 문자 한 통 주지 않을까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전화해주진 않을까

밥먹 고양 치하고

점심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뜨려놓지 않았지만

내가 전화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결코 울리는 법이 없는 휴대폰이다


요즘 들어선 퇴근할 때 잠깐이라도 목소리를 들으려 전화를 하면

전화연결도 잘 안 된다

물론 나중에. 전화 오긴 하지만.


퇴근을 한 뒤

공부할 거리와 읽을거리를 안고,

단골 커피숍에 가서 공부를 하며 또 그를 기다린다


언제 퇴근할지도 모르고, 약속이 생길지도 모르는 그를 말이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를 기다리기만 한다


기다림에 익숙하지도 않고 사랑만 받아온 그녀에겐 기다림이 너무 힘들다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기는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든다

전화기를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그를 탓하고 싶지 않지만 외로움이 더 커져갈수록 그에 대한 섭섭함이 커진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외로움과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서 슬프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아파온다.


제발 이제 그만


그러면서도 그를 만나 대화를 하면 집착으로 들리거나 귀찮아할까 봐 난 말도 못 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좋다며 수그러지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


이게 나 혼자 사귀는 건지 짝사랑인 건지.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때는

기대하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까지 외롭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그를 기다렸고, 웬일로 저녁시간 전에 전화가 왔다

해맑게 전화를 받았다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끈질기게 연락이 온단다. 이미 몇번이고 끝이 난 거라고

연락도 끊었다고 했는데.

확실히 정리를 하고 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녀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끝난 것이 아니었나. 우리가 만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미련하게도 그녀는 그를 그렇게 기다리며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

그녀가 속이 상할까 봐 숨기지 않고 전화했다고 한다

그런 건 그녀가 모르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오늘 그녀는 너무 속상한 날이다.

그와 강남에서 대충 저녁을 먹고

집 근처 횟집에서 안 마시던 술을 마셨다.


술이 밍밍한 게 오늘 많이 마시면 취할 것 같더라

속이 상한 그녀는 주절주절 말이 많아졌다.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슬슬 취기도 올랐다.


시간이 늦어 그곳에서 나왔다

그녀가 취기가 오르니

그는 그녀가 불안했는지 아니면 힘들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혀를 끌끌 차며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집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랜만에 마신 술이 과했으리라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그는 피곤했다.

의문점을 많이 남긴 채 그들은 헤어졌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 그는 몇 개월 뒤 그녀보다 전에 만났던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이 사실을 몰랐다. 어제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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