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 Jun 17. 2020

엄마의 엄마와 엄마와 나의 풍성하고 너그러운 매생이국

[브런치x우리家한식] 좋은 밥 먹고 컸으니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겠지

어릴 땐 모르는 맛이 있다.


뽀얗게 우러난 바지락 국의 탄식 어린 시원한 맛, 겨울날 달큼한 배추를 대충 썰어 넣고 맑게 끓인 된장국의 개운한 맛, 좋은 소고기를 오랫동안 우려낸 설렁탕의 깊은 맛 같은 건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지칠 줄 모르는 아이일 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물이 대체 왜 시원하다는 것인지, 목욕을 마친 것도 아닌데 뭐가 개운하다는 말인지, 고기를 땅에 파묻은 것도 아닌데 맛은 왜 깊다는지 알 수 없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 한 수저를 목구멍에 밀어 넣고 캬아- 소리를 낸 것을 뒤늦게 발견하는 당황스러운 순간도. 살다 보니 한 시절 어른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어느새 내가 들어와 있다.


“참 내, 언제부터 좋아했다고.”


매생이국이 먹고 싶은 날이면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다. 물에 빠진 귀신의 초록색 머리카락 같은 행색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것을 요즘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찾게 된다. 코 끝에 저장된 풍성한 바다 내음이 뇌리를 스치며 자, 이제 매생이국을 먹어야 할 때라는 신호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파래과에 속하는 매생이는 대략 11월부터 5월까지 나긴 하지만 아무래도 제일 향이 진하고 맛이 좋은 때는 ‘아이고 추워’ 소리가 절로 나는 한겨울이다. 같은 철에 가장 알이 굵고 맛도 좋은 굴과 함께 찰떡궁합을 자랑하는데 그 올이 너무도 고와서 파래처럼 씹는 식감은 없지만 부드러운 질감이 마치 바다에 살짝 적신 뭉게구름을 먹는 것 같다. 한 술 떠 넣은 매생이 뭉치를 오물거리고 있노라면 비강으로 바다의 향이 둥그렇게 퍼진다. 그러니까 매생이국의 맛이란 결국 풍미일 거다. 언젠가의 겨울밤, 서럽게 울다 눈물 콧물이 입술 사이로 스며 우연히 혀 끝에 느껴지던 짠맛, 매생이국의 간은 딱 그 정도로 순하지만, 그 위로 바닷바람에 실린 은은한 향이 겹겹이 쌓이니 그 맛이란 풍성한 바다의 너그러운 맛이랄까.




매생이국을 끓이는 건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싶을 만큼 간단하다. 매생이를 차가운 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 고운 체에 건져두고, 굴도 찬 물에 깨끗이 헹궈두면 재료 준비는 끝. 다시마와 야채로 내어둔 육수가 있으면 좋지만, 맹물로 끓여도 굴이 있으니 괜찮다. 나는 매생이의 농도가 짙은 국을 좋아해서 일단 물은 조금만 끓이는데, 혹시 부족할지 모르니까 전기주전자에 여분의 물을 끓여뒀다 쓰면 된다. 다만, 라면 끓이는 것도 아닌데 텅 빈 냄비가 왠지 아쉬우니 다진 마늘을 조금 넣을 뿐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잘 씻어둔 굴을 먼저 투하한 뒤 휘휘 젓다가, 물이 다시 끓어오른다 싶을 때 매생이를 넣는다. 여기서 핵심을 알려주려 했던 건지, 외할머니는 국을 끓이면서 옛날이야기를 종종 들려줬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 이웃한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또다시 동네에 살다 동네에서 죽는 게 당연했던 시절, 어느 이웃 동네에 (파격적으로) 다른 데서 시집 온 각시의 일화였다. 시어머니가 장 보아 온 것들로 밥상을 준비하던 각시는 정성껏 국을 끓이는데, 이 무슨 장난인지 국에 넣은 매생이가 자꾸만 없어지고 또 없어지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 대목에서 늘 가늘고 앳된 목소리로, 억울한 감정을 살려 각시 성대모사를 했다.


“엄니, 매생이가 다 어디로 가불고 없어진디라.”


왠지 시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크게 한 소리 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언제나 이야기는 딱 각시의 대사에서 멈춰, 각시에서 그냥 할머니로 돌아온  목소리와 함께 급 마무리됐다. 냄비의 바닥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듯 커다란 공기방울이 매생이 더미를 해치고 진득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 봐라, 매생이는 살짝 데친 거 맹키로 적당히 끓여야 써. 푹푹 끓이믄 물 되아부러.”


생긴 게 맘에 안 들어 매생이국을 먹지 않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이야길 새겨 들었다. 세상의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서 새나라의 일꾼이 되고 싶었던, 세계 위인전을 읽으며 ‘아무나’로 자라는 건 상상할 수 없던 어린이였으니까. 어린 내겐 매생이를 물로 만들지 않는 것도 왠지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처럼 여겨졌다. 덕분에 그로부터 이십 년이 넘게 흘러 만든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풍성한 결이 살아 있는 매생이국을 끓여내고 있다. 이게 뭐라고, 매생이국을 올린 가스불을 잠글 때마다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워지고 마는 것이 우습다.




완성된 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 김장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겨울날 이만한 별미가 없다. 사실 할머니도 엄마도 매생이국을 냄비째 베란다에 옮겨놓고 차갑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 이렇게 먹으면 매생이 가닥들이 흐물 해 지지 않아 좀 더 찰지게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국을 푸느라 베란다 새시를 열고 나갈 때마다 분홍색 삼중 보온메리 바람으로 거실에 굴러다니던 나는 훅 밀려 들어오는 냉기에 ‘앗 추워!’ 외치며 맥반석 오징어가 오그라들 듯 재빠르게 몸을 말고 날렵하게 이불속을 파고들곤 했다. 식사 준비를 하느라 가스불 앞을 오가며 볼이 상기된 엄마는 맨날 무엇이 그리 춥다는가 핀잔을 하며 나갔다가, 잠시 후 살짝 열린 베란다 문 사이에 어깨를 비틀어 넣고선 몸으로 문을 밀어젖혀 쟁반 가득한 국과 함께 들어왔다.


상에 오른 매생이국의 형세는 한 번도 깔끔했던 적이 없었다. 초록색 가닥이 국물에 섞여 국자로 퍼올려 담는 사이 그릇 가장자리에 꼭 떨어지고 눌어붙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어른들의 무심한 청결의식에 눈을 흘기곤 했는데 내가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매생이는 아무리 잘 담아도 어딘가 흔적이 남고 만다. 내 손에, 테이블에, 심지어 며칠 뒤 싱크대 구석 어딘가에서도 얇디얇은 초록의 가닥이 발견된다. 아마 자연에선 이토록 가는 가닥들이 바다에 몸을 싣고 흘러 다니다 잔잔한 어딘가 다다르면 살포시 안착하고, 무리를 키우며 살아갔겠지. 그러니 이 흔적들은 가느다란 삶의 쉼 없는 의지라고 해야 할까나.


매생이국을 처음 만들어 본 날을 기억한다. 나는 떡국을 하려던 참이었다. 우리 집에선 밥 말아먹던 국이지만 매생이 떡국이란 것도 있단 걸 며칠 전 TV에서 보았는데, 마트에서 마침 매생이를 팔기에 한 팩 샀다. 평소 먹던 고기 육수의 떡국엔 고명으로 올린 소량의 채소가 전부라 어쩐지 아쉬웠는데, 매생이를 넣어 만들면 국물 가득 섬유질 무기질이 풍부해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저기 검색하면 요즘 세상엔 온갖 레시피가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집에서 먹던 음식은 언제나 엄마에게 묻는 게 1순위다. 내겐 엄마가 네이버고 유튜브다.


“매생이? 굴 넣고 마늘 넣고. 적당히 끓여. 오래 끓이면 안 돼!”


엄마의 레시피는 늘 이런 식이다. ‘바지락 넣고’라던가 ‘(소고기) 국거리 사다가’와 같이 베이스 육수를 무엇으로 내는지와 간을 소금으로 하는지 간장으로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 적당량 준비해서 적당히 볶고 끓이다 적당히 보아가며 간을 하라는 것. 듣기엔 세상 쉽지만 막상 조리대 앞에 서면 다시 수화기를 들고 ‘그래서 적당히가 얼만큼인데?!’ 하며 나는 매번 원격으로 툴툴거린다.


엄마는 글쎄- 하며 고민하다 ‘딱 좋게’, ‘알맞게’, ‘먹을 만큼’, ‘대충 이쯤이다 싶게’ 등등 내 듣기엔 똑같은 소릴 다양하게도 늘어놓는다. 우리 엄마는 유의어 박사인가 싶어 나는 매번 웃음이 터진다. 말하는 엄마도 웃겨져서 이내 곧 콧김을 뿜는 소리가 나고, 결론적으론 요즘 세상엔 인터넷에 다 있다고, 인터넷에 찾아보라고 한다. 나도 그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닌데, 인터넷에 있는 건 엄마 맛이 아닌걸 낸들 어떡하나.


대단한 전통이 있는 집안은 아니니까 대대손손 전해지는 레시피가 있을 리는 없고, 엄마는 이 요리들을 다 어떻게 알았나 싶어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한테 물어보면서 했지. 해보고 맛보고 또 해보고. 먹어본 가닥이 있으니까 하다 보면 그냥 돼.”


당연한 거지만, 한 때는 엄마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건 무척 새삼스럽다. 나에겐 처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뭐만 먹고 싶다면 척척 만들어주는 엄마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그때그때 물어가며 만들었다니. 내가 기억하는 맛에 의존해서 엄마의 설명 아닌 설명대로 만들고 또 만들다 보니 ‘아! 이 맛이다!’하며 입 안에 퍼지는 맛과 기억이 일치하던 순간이 엄마에게도 있었다니. 엄마도 나처럼 적당히란 대체 얼만큼이냐고 묻던 그런 날이 있었다니.




컴퓨터는커녕 전화기도 흔치 않던 시절, 스물셋, 그러니까 지금의 나보다도 열세 살이나 어린 엄마는 아빠 회사 근처 사글세 단칸방에서 나를 품고 나를 낳고 길렀다.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으면 참고 참다 주인네 전화를 빌려 전화를 걸고, 그마저도 할머니 집에 전화가 없으니까 이웃에 사는 친척집으로 걸고, 그러면 다시 친척집에서 할머니를 부르러 가고, 할머니가 담박질 해 전화를 받으러 오고, 그렇게 어렵게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서도 전화비 많이 나오면 안 되니까 용건만 간단히 짧게 끊었다는데 아마도 그 와중에, 전화 끊기 전에, 무슨 나물은 어떻게 무치는지 국은 어떻게 끓이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 어린애가 통풍도 시원찮은 작은 방에서 부채질로 더위를 헤집고 겨울엔 연탄을 갈며 쪼그만 주방에서 살림을 하고 뱃속의 나를 살찌워 키운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애가 짠해 죽겠다. 하물며 그 애의 엄마, 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그 어린 딸이 또 얼마나 보고 싶고 걱정되고 안쓰러웠을까. 돈도 없고 전화도 없고 택배도 없는 시절, 그 가슴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엄마는 무덤덤하게 그 시절엔 다 그랬다지만, 나는 그 마음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다. 내 젊은 엄마의 작은 어깨도 쓰다듬어주고 싶고 딸 전화에 담박질 하는 엄마의 엄마도 꼬옥 안아주고 싶다. 지금보다 삼십 년도 넘게 젊은 두 사람의 뺨 위로 흘러내렸을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그 시절엔 다 그랬다니까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았을 것 같아서, 나는 저 뒤로 밀쳐두었을 그 마음들이 더 안쓰럽다.


겨우 스물셋에 나를 품고, 서른에 학부형이 되고, 서울로 대학 간다고 품에서 나를 떼어 보낸 게 엄마의 마흔둘. 평생 젊은 엄마를 둔 덕을 보는 나는 내 엄마를 가장 늙은 딸을 둔 엄마로 만들고 있다. 아마도 엄친딸 중에 시원한 맛, 개운한 맛, 깊은 맛, 그리고 매생이국의 향긋함을 알게 된 것도 내가 1번일 테지. 눈이 동그래지는 ‘다 컸네’보단 탄식 어린 ‘아이고, 늙었네’에 더 익숙하고 청년을 지나 중년을 향해 가는 나이. 얼마 전 엄마와 통화하다, 레몬청을 담근다고 하루 종일 레몬을 씻고 썰고 버무렸더니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 푸념한 적이 있었다.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꾸 일을 하건 운동을 하건 많이 쓴 자리가 아프더라고. 그 이야길 들은 엄마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울컥했다.


“세월이 너무 빨라. 근데 내가 늙는 것도 무섭지만, 내 새끼가 이렇게 나이 드는 게 나는 더 무섭다.”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관절이 정직해질 나이가 된 딸은 여전히 제 앞가림 하나 하기도 벅차서 허둥대는데, 엄마는 그 딸 잘 먹고 잘 살라고 철마다 택배 상자를 가득 채워 보낸다. 봄엔 쑥, 돌미나리, 산취, 쑥지 각종 봄나물을 손질하고 데친 뒤 해동해도 질겨지지 말라고 물을 채워 얼린 지프락이 가득 실리고, 여름에 옥수수가 나면 땀 흘리며 푹푹 삶아 하나씩 랩핑을 해선 얼려 보내주는데 박스가 비어 아쉽다며 자두와 복숭아로 빈칸을 가득 채워 준다. 가을 겨울이면 수산물 꾸러미가 온다. 아이스박스 안 봉투마다 율낙(율희 낙지), 율문(율희 문어) 등 엄마의 축약어가 쓰여 있다. 장 보러 갔더니 있더라며 매생이도 한두 덩이, 국 끓일 때 같이 쓰라고 굴도 깨끗이 씻은 뒤 함께 보내준다. 요즘 마트에선 간단히 끓여먹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가 유행이라는데,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표 밀키트를 받아온 것이다. 전화도 되고 핸드폰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택배도 되는 시대에 사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매일 엄마표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


어느 신문에선 요즘이 영 앤 리치,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풍족한 젊은이의 시대라는데 영도 아니고 리치도 아닌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지, 뭐 이리 할 줄 아는 게 없는지, 그간 나는 무얼 한 건지 싶은 한숨은 주문한 적도 없는데 근래에 자꾸만 내게 배송된다. 잘난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고 심지어 씩씩하지도 않은 내가 우울에 절여져 한없이 쪼그라든 날, 한 것도 없는데 왜 어김없이 배는 고픈가 또 한숨을 쉬며 냉동실 문을 열었다. 지난겨울 엄마가 보내준 뽀얀 굴이 봉지 봉지 소분되어 묶여 있기에 마트에서 끝물인 매생이 한 덩이를 사다 국을 끓였다. 맹물에 다진 마늘을 넣고 굴을 넣고 매생이는 데치듯이! 대단한 기운을 내지 않고서도 금세 영양이 가득한 한 끼가 차려졌다. 냄비를 가득 채운 매생이의 풍성함을 보며 역시 이것 하나는 내가 잘하지 고개를 끄덕끄덕,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입맛을 살린 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 푹푹 떠먹으면 입 안에 바다가 순하게 밀려온다. 부드럽게 그 향을 즐기고 있노라니 그래도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지 싶어 진다. 그래, 내 평생 좋은 밥 먹고 컸는데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겠지.


오늘의 한숨은 아무래도 오배송인 것 같으니, 박스에 잘 포장해서 다시 보내줘야겠다. 우리 집에 올 택배는 따로 있다고, 이제 곧 엄마가 옥수수를 보내올 것이고 철 바뀌면 또 보내올 게 있으니 잘못 온 택배까지 보관할 자리란 없을 것이라고 알려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저기 벤치에 잠깐 앉아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