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과 그 가능성
총 제20권, 제32편
대부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들은 2천2백여 년 전에 기록되었다.
어떤 책들은 기록된 시점부터 편집의 의심을 사는 책들이 있고, 어떤 책들은 중간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거나 기존의 내용이 삭제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많은 주석가들이 원문에 주석을 가하면서 원문의 의미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순자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순자>의 원저자에 대한 이견을 거론하지 않고 <순자>의 원저자가 순자이며, 저서의 내용이 훼손되었으리라는 의심은 하지 않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기록되었듯이 원래 수만 자에 달하던 방대한 분량을 유향劉向이 <손경신서孫卿新書>라고 명명하여 지금의 32권으로 정리하였다.
공자孔子와 중니仲尼
그러나 <순자>를 읽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공자'에 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을 <맹자>와 함께 대조해서 살펴보면 <순자>의 편집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공자의 호칭은 여러 가지 있지만 주로 공자孔子와 중니仲尼를 많이 사용한다. 공자는 통상적으로 제자들이 그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고, 중니는 공자의 자字로서 아랫사람이 왕에게 공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거나 서열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자를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이다. 따라서 자는 제자들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존칭이다.
<맹자>를 보면 공자라는 호칭을 총 81번 사용하고 중니라는 호칭을 총 6번 사용한다. 전자는 <맹자>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호칭이고, 후자는 양혜왕 앞에서 공자를 지칭하거나 또는 격식을 갖추어야할 때 사용했다.
반면에 <순자>에는 공자와 중니의 호칭 사용 범위와 빈도가 확연히 구분된다. <순자>에도 공자라는 호칭이 81번 사용된다. 그러나 제18권 제26편 부賦편까지 단 10번 사용되었고, 제27편 이후 제32편까지 총 6편에 걸쳐 71번이 사용되었다. 또한 중니라는 호칭은 제27편에서 1번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번은 제1편부터 제26편까지 고루 사용되었다.
이를 토대로 제1편부터 제26편까지는 순자 본인이 직접 저작한 부분이고, 제27편부터 제32편까지는 첨가된 부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 완력
제27편 이후의 저작에 대해서 순자의 제자들이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순자의 제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내용에 있어 순자의 사상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순자의 주 개념은 후왕론後王論이기 때문에 제1편부터 제26편까지 일관되게 이를 주장하지만, 제27편 이후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선왕론先王論을 옹호하는 입장이 강하다.
따라서 본인은 제26편까지는 순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논할 예정이고 제27편 이하는 편집 의도에 맞춰서 글을 쓸 예정이다.
따라서 한 권의 책에 상반되는 개념이 기재되어있다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은 오류임을 알게 된다.
통치자의 완력에 의해 역사적 진실이 왜곡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