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儒者인가 유학자儒學者인가
'순자는 공자와 다르다'
처음 <순자>를 완독 한 후 매우 혼란스러웠다.
학창 시절 배웠던 공자와 순자의 관계에서 많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 후로 <순자> 뿐만 아니라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수 없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렸던 결론은 '순자는 공자와 다르다.'
유학자儒學者, 공자
종종 '유자儒者'와 '유학자儒學者'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商나라 때 농경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제사가 주周나라 이후 정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공동체 질서가 서열 중심의 계급 사회로 변형되었다. 쉽게 말해서 적장자嫡長子가 집안 혹은 공동체의 대표가 되어 제사를 비롯한 가례家禮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었다. 이러한 적장자 상속의 원칙은 국가에까지 발전이 되어 왕위 계승에 있어 장자가 왕위를 잇는 최우선 순위가 된 것이다. 이를 종법宗法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주나라 종법을 사상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유자 사상에 변혁이 일어났다. 정명正名론(이후, 정명)을 내세워 신분 제도를 강화시킨 것이다. 공자의 정명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시킨다. 그래서 권력 집단의 신분에 따른 권익을 보호하고자 했다. 이러한 공자를 따랐던 무리들을 '유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자儒者, 순자
순자는 공자와 다른 정명을 말하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을 인정하고 있다. <순자> 제16권 22편 정명편을 보면 인간은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고 싶지 않은 욕망이 강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그 욕망을 억제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정명은 단지 사물의 뜻을 명확히 해주는 역할만 할 뿐 확대 해석하지 말고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정명론이다. 따라서 순자는 공자의 정명처럼 신분 제도에 갇혀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시스템을 거부한다. 순자에게 있어서 신분 제도는 능력에 따라 변동 가능한 유동적인 시스템이다. 이러한 순자의 신분 개념은 계급 구조의 적장자 상속의 원칙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수염을 기른 성인 남자라면 누구든지 일정한 교육 후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주나라 이전, 유자의 제사 시스템과 들어맞는다.
따라서 순자는 유학자가 아닌 '유자'이다.
탈공자脫孔子
후에 제3권 6편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서 자세히 언급을 하겠지만 순자의 공자 탈출기(이하, 탈공자)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 정명正名이란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개념으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 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 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는 정명론의 핵심 구절이다.
* '유儒'는 갑골에서 비雨와 수염, 즉 성인 남자를 뜻하는 이而 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로 기우제를 지내는 성인 남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공자 이전까지 이들을 '유자'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