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권, 제 2 편
팽조彭祖와 대장부大丈夫
수신修身은 유가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다.
수신을 시작으로 제가齊家,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까지 이어져서 유가가 바라는 이상 사회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어>와 <맹자>에서는 군자 혹은, 성인의 수신에 대한 방법론을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가 수신의 최종 목표는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大丈夫'가 가장 가깝다.
"천하에 큰 도를 행한다. 行天下之大道" <맹자, 등문공 하>
이 말처럼 대장부는 천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바로 세우고 수신을 하는 것이다.
<순자> 제1권, 제2편 제목이 '수신修身 편'이지만, 당나라 장량이 <순자>의 목차를 만들 때 제목을 의도적으로 유가와 연관시켜서 유가식으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공맹의 유가가 말하는 수신의 방법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공맹의 인간상이 앞서 살펴본 대장부라고 한다면, <순자> 수신 편에서의 인간상은 '팽조'다. 팽조는 중국 고대 왕조인 하夏(BC2000?-BC1500?)나라 사람으로 수명이 800년에 달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팽조는 <장자>, <순자>, <사기> 등에 등장하는 지금의 의술인과 비슷한 일을 했던 사람으로 알려진다. 팽조는 <논어>와 <맹자>에는 등장하지 않고, <장자>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대종사大宗師에 등장한다. 주로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팽조를 <순자>의 인간상으로 지목한 이유는 <순자>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팽조를 모델로 삼기에 어색함이 없다. 사실 유자儒者라고 일컫는 순자의 책에 <장자>의 대표 격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순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 시대, 전쟁의 연속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맹식으로 생각한다면 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무릅써야 군자,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에 상황에 따라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다. 목숨을 가볍게 여겨야 하는 상황이 많았던 그 당시 맹자의 대장부는 순자가 생각하는 수신과는 어울리지 않다.
때문에 당시 목숨 보존이 중요했던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800년 가까이 살았던 팽조를 예로 든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순자>의 내용을 보더라도 수신 편에 유가의 개념인 수신이라는 단어는 1번 나오는데 반해, 도가류 인간론의 핵심인 '양생', '양심養心'이라는 글자가 4번 나오고, <순자>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양養은 100번이 넘게 등장하고 있다. 순자는 도가류의 양생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목차를 '수신 편'보다는 '양생養生 편'으로 정한 것이 나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잘 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
전국시대 후기로 갈수록 전쟁의 방법(이하, 병법)이 다양해지면서 점점 대량 살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동원되는 백성들의 피로도와 전쟁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래서 전국시대 후기에 전쟁을 반대하는 노자와 장자, 양주와 열자, 묵자 등의 사상들이 압도하게 된다.
"양주와 묵적의 말들이 천하에 가득하다.楊朱墨翟之言盈天下" <맹자, 진심 하>
이처럼 맹자 역시 춘추전국시대의 아나키스트 양주와 반전주의자 묵적을 적극적으로 견제했다.
순자도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대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목숨이라도 던질 각오를 했던 맹자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옹호하는 순자의 사고방식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더 나아가 맹자의 사고방식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은 반면, 순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의 관계가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순자적 well-being
순자는 잘 사는 것의 중심에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제안한다.
순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예禮 또한 벗어나지 않는다. 순자의 예는 치기양생治氣養生(혹은, 치기양심治氣養心)을 중심으로 예가 없으면 잘 살지 못하고不生, 예가 없으면 일을 잘 이룰 수 없고不成, 예가 없으면 나라가 편안하지 못하다不寧고 말한다. 순자는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잘 돌보고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노자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순자는 치기양심하기 위해서는 굳세고 강한 혈기 보다, 부드러움柔과 조화調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은 죽간본竹簡本 <노자老子>에 등장하는 노자 사상의 핵심이다. 노자는 인간성에 있어 유가의 강함과 높아짐과 다르게 부드러움과 낮아짐을 강조한다. <순자> 수신 편을 읽어보아도 곳곳에 낮아짐과 부드러움 그리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겸손을 말하고 있다.
공의公義와 공동체주의
순자의 양생은 학문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조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수신 편 후반부에 가면 몸을 바르게 하는 것正身과 예를 바르게 하는 것正禮을 논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인간은 혼자서 스스로 설 수 없음을 논파하고 있다. 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예가 필요하고 예를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홀로 당당히 서있는 맹자의 대장부와는 다른 관계지향적인 인간상이다. 자신이 바르게 서기 위해서 예라고 하는 학문적 근거와 스승이라고 하는 실천적 근거가 따라야 하는 전인격적인 인간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대장부로 시작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한 사람의 정의로운 인간을 통해 사회가 정화되기 바라는 이상향을 꿈꾸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서는 현실감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가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반드시 2인 이상 복수의 인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각각의 인격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절대 원칙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대화와 합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순자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듯하다. 순자는 개인의 의견보다는 스승이라는 더 나은 인격체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결론을 얻고자 했다. 물론 순자적으로 이해하자면 스승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순자가 이해한 군자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천재가 아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나은 기술,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스승으로 삼아서 더불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순자는 정의正義가 아닌 공의公義를 주장한다. 공의는 반드시 공익公益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남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론이다. 내 주장을 관철하기 보다는 나를 낮추고 남의 생각을 귀 기울이는 겸손함을 통해 생각을 조율해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순자는 노인과 가난한 부류 같은 약자를 배려해야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남이 모르도록 베푸는 선행과 선행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동기를 통한 실천을 강조한다.
이렇듯 공익의 실천을 통해 사욕私欲을 억제하고 공의가 실현되어 최종적으로 공동체주의의 완성을 기대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양養은 도가류의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개념이다. 몸과 마음을 보존하고 양생해야 장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에 도가가 종교화되어 도교道敎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괘가 발달하고 수련을 위한 기공수양이 발달하게 된다.
*<노자> 죽간본은 최재목 선생님께서 번역하시고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한 서적을 참고함.
* 앞으로 각 장마다 내용을 계속해서 증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