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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대신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

첫 사회생활의 무대를 선택하기까지

by 커리어 아티스트

첫 직장의 오퍼 레터가 왔을 때는 사실 홍콩 오피스로 합격이었다.


한국시장은 홍콩본부에서 매니징을 했기에 한국 사람인 나는 당연히 그곳으로 배치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싱가포르로 가기를 요청했다. 이미 인턴생활도 싱가포르에서 해서 이미 익숙한 그곳에 왜 다시 그곳을 다시 가고 싶었을까.


낭만적인 홍콩만의 분위기 (출처:구글)


당시 싱가포르는 동남아 총괄 본부였다. 그리고 홍콩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총괄이었다. 나는 한국 말고 동남아 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시장을 담당하고 싶었. 한국 시장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맡을 수 있지만 베트남 시장을 잘 아는 한국사람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베트남에 살았던 향수는 나에게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었고 대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를 활용해 남들이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 해외취업 자체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는데, 마음속 어딘가에서부터 첫 사회생활의 무대는 이곳이 맞다고 강하게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당시 회사의 APAC 헤드는 이런 나의 요청을 흥미롭게 생각했고 원하는 장소가 어디든 좋다고 했기에 결국엔 싱가포르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선택한 싱가포르에서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홍콩은 당시 싱글이 살기에 더 흥미롭고 싱가포르는 홍콩에 비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가족으로써 살기에 좋은 곳이라고들 했다. 솔직히 외국인으로서 살기엔 두 장소 모두 장단점이 있고 어디에서 살든지 이방인으로써 사는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홍콩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여행 갈 때마다 집이 워낙 작아 답답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생활의 질로 따지자면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가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일 년 내내 여름인 싱가포르가 어린 시절 살았던 베트남과 비슷해서 더 익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는 지인들 중 몇몇은 이런 일 년 내내 더운 날씨가 힘들어서 그래도 겨울엔 쌀쌀한 홍콩을 더 선호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 싱가포르로 간다고 하니 한국에 있던 주변 지인들은 보통 선진국 하면 떠오르는 미국이나 유럽 호주 같은 나라가 아닌 동남아에 위치한 싱가포르를 가는걸 특이하게 생각했다. 나는 이미 인턴생활을 통해 경험해봤기에 나의 결심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정착해서 지내는 나라를 선택한다는 건 호기심과 설렘도 불러일으키지만 장기간으로 있을걸 생각한다면 미리 인턴이든, 여행이든 맛보기로 경험을 해봄으로써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생활하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아져서 얼마 못가 귀국하는 사례들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상징인 멀라이언 (출처:구글)

싱가포르에 살면서 나라가 도시국가라 워낙 작아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에 여행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 같다. 태국의 푸껫이나 인도네시아 발리 같은 휴양지들은 2-3시간 내면 도착하고 저가항공으로도 주말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부담이 덜했다. 특히 베트남 호치민시는 이곳에서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기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방문해서 지인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커리어적이나 개인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아서 그때마다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또한 한류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기 때문에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호감을 가지는 싱가포르의 분위기도 이곳에 정착하는데 확신을 갖게 했다. 요즘에는 싱가포르에 한국식품이나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꽤 생겨서 한국이 그리워지는 향수병이 고개를 들 때면 한국 친구들과 한식당에서 만나서 수다를 떨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이곳은 한국인가 싱가포르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첫 직장생활부터 시작한 싱가포르는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장소다. 이곳에서 초창기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본국으로 귀국을 하거나 다른 제3의 나라로 이주를 했고, 그럴 때마다 남아있는 사람으로서 약간 우울할 때도 있고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이제 결혼을 해서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나니,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이제 또 다른 나라 제3 국으로 이주하게 될 일은 잘 없지 않을까 싶다.


15년 전 나의 선택에 대해 싱가포르는 나에게 많은 기회로 보답해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에 감사하며 싱가포르가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할 하루하루 일상을 소중하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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