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워크숍 후기
내 주변에는 멋있는 선배, 후배, 동료들이 많다.
내가 싱가포르에 첫 해외취업을 했던 무렵엔 거의 또래 한국인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당차고 똑똑한 분들이 점점 많아진 것 같다. 이번에 아는 동생이 취업/이직을 위한 이력서 워크숍을 싱가포르에서 한다고 했다. 매번 적극적이고 행동력이 좋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동생인데 워낙 콘텐츠를 만드는 센스, 솜씨가 좋아서 팔로워 수도 많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다. 이런 행사 자체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나름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텐데 빠른 행동력으로 실제 해내는 동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 당장 이직을 생각하고 있거나 이력서 준비를 하는건 아니지만 동생의 도전을 응원하는 언니의 마음으로, 행사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간식을 준비해 워크숍 장소로 향했다.
싱가포르에서 회사일 목적 외에 개인적으로 사교모임을 자주 가거나, 일부러 인맥을 넓히려고 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아는 한인 네트워크는 좁다. 그런데 워크숍 장소에는 많은 참석자분들이 계셨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시면서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력서 쓰는 방법, 면접과 네트워킹 전략에 이르기까지 실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발표가 이루어졌고, 참석자들도 그룹을 이뤄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류하는 형식의 워크숍이었다.
발표를 듣는 내내,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동생이 얼마나 수많은 고민의 순간들을 마주했을지, 그래도 피하기보단 정면돌파로 전략을 짜서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온 것 같아서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커리어우먼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멋진 분들이 정말 많이 계신데 그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Grit (근성)이다. 성취를 이뤄냄에 있어서 타고난 재능보다는,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노력이 크고, 그 노력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는 모습이다.
발표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바로 "역발상"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같은 업종으로 이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보통 관련 업종 경험이 없으면 인터뷰 기회 자체를 잡기가 쉽지 않다. 경력직 이직에서는 특히 입사하게 되면 바로 성과를 낼 사람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관련 경험이 없으면 기회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과제를 마주할 때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 그동안 쌓아온 노력을 폄하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관점의 전환에 공감했다.
나 역시 금융권에서 15년 동안 이직을 하면서 프론트/미들/백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른 부서로 도전을 해왔고, 2년 전엔 금융에서 테크로 아예 업종을 옮겼던 경험이 있다. 프로이직러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이직을 겪으면서 밖에서 보기엔 굉장히 쉽게 옮긴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매 순간마다 너무 많은 리젝션 메일과 최종에서 떨어져 본 좌절의 경험들이 정말 많았다. 돌이켜보면 떨어져 본 그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지 않았나란 생각도 들고 모든 일이 생기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그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 보니 이해할 것 같다.
대부분의 참가자 분들은 경력 초반에 계신, 지금 막 30대 초반에 계시고 앞으로 커리어 플래닝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으셨다. 이미 경력이 오랫동안 쌓인 나는 그 분들을 보니 얼마나 고민이 많을지, 10년 전 고군분투하던 내가 떠올라서 마음이 짠했다. 지금도 이미 너무 잘해오고 있으신데 커리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하고 계시니, 앞으로는 더욱 더 잘되실 분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방 한칸을 빌려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매일 고군분투하며 직장생활을 하는것이 정답인걸까. 물가도 비싸서 매달 겨우 서바이벌하고 있는데 매번 구조조정이 밥먹듯 일어나는 업계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함께, 커리어 점프를 하기위해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방법을 찾으면서 MBA, 자격증, 직무공부들을 기웃기웃했던 나날들, 하지만 당시엔 이렇게 친절하게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주는 이력서 워크샵 행사는 없었다. 그런의미에서 동생이 이렇게 준비한 행사는 커리어로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려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서두르거나 애쓰지말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격려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해서 탐색하면서 불안해하지 말고 내안의 단단한 중심을 잡고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회는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는데, 그 기회를 잡기위해선 지금 위치에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같은 테이블에 계셨던 분께서 한분이 나에게 이렇게 시니어 자리에 계신 한국인 여성멘토를 만나게 되서 든든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멘토”라는 훌륭한 단어를 붙이기엔 지금의 나는 여전히 좌충우돌 실수도 많고,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으면 좌절하는 평범한 직장인인데 왠지 부끄럽단 생각과 함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단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런 멋있는 멘토가 될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열심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단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력서 워크샵을 응원하러 왔다가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응원과 동기부여를 받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웠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