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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싶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누군가의 롤모델이란

by 커리어 아티스트

오랜만에 마리나베이 파이낸셜 센터를 찾았다.


싱가포르 금융가의 상징과도 같은 이 빌딩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근길에 바쁘게 오가는 이들의 표정에는 긴장감과 활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하이힐 구두 소리를 울리며 걸음을 옮기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예전 은행다니던 시절이 겹쳐졌다. 금융권에서의 치열했던 직장생활, 늘 바쁘게 뛰던 그 시간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 시절, 닮고 싶었던 멘토가 있었다. 유럽계 투자은행에서 전무로 있던 싱가포르 여성 임원이었다. 그녀는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과 세련된 액세서리, 절제된 말투와 매끄러운 업무 처리, 그리고 회의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 모든 것에서 배울 점이 넘쳐났다. 그녀 특유의 우아한 아우라가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했던 분이었다.


멘토링 시간에 그녀가 내게 해주던 조언은 단순했지만 강렬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
안정적인 금융 커리어를 뒤로하고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야 할지 갈등하던 시절,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내 등을 떠밀어 주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니?”라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 깊이 스며들었고, 결국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새로운 회사에 합류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원래는 수습 기간이 끝난 후 조용히 소식을 전하려 했으나, 코앞으로 다가온 출장 준비와 거래처 인사 때문에 링크드인에 먼저 업데이트를 올렸다. 뜻밖에도 수많은 분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었다. 번아웃에 시달리며 기운이 빠져 있던 날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 주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용기를 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언제나 ‘사람들’이었다. 존경하는 멘토의 조언, 동료들의 격려,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지인들의 시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블록체인 업계는 여전히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야다. 그래서 여성 롤모델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는 훌륭한 여성 임원진들이 있다. 회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리더십과 지혜, 그리고 담담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은 또 다른 자극이 된다. 되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매일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된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특히 내 아이들에게-
요즘 큰 딸은 벌써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내 말에 쉽게 반발하기도 한다. 친구처럼 다가가고 싶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하나다. 언젠가 아이가 이 시절을 돌아보며, 엄마가 단순히 바쁘게 일했던 사람이 아니라 끝없이 도전하며 성장했던 존재였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 엄마 참 멋있다”라는 말을 해주기를,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하나의 자랑스러운 롤모델이 되었음 좋겠다.


오늘도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조용히 이번 주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받은 영감을 이어받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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