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어요 하지만 깜깜하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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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산속 리조트에 가는 길, 벌레들이 우박처럼 날아왔다.
정확히는 설렁설렁 날아다니는 그들을 향해 내가 시속 60km로 돌진하면서 얼굴로 깔아뭉개 죽인 거였지만. (미안!) 기분이 나쁘기도 나쁘거니와, 벌레가 조금만 커도 진짜로 우박 때려 맞는 것처럼 아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다시 우박을 맞지 않기 위해 가방에 항상 넣어 다니는 비상용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후드 고무줄을 꽉 조였다. 실패로부터 배울 줄 아는 나 자신을 기특해하며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 문제는 벌레가 아니었다. 문제는 어둠 그 자체였다. 어둠이란 녀석은 도시에서 얼마나 맥을 못 추는가. 그래서 우리는 어둠을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산속에서 홀로 어둠이라는 녀석과 맞닥뜨린 적이 있는가? 완연한 어둠. 사실 완전한 어둠도 아니었다.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헤드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곳은 전부 어둠이었다. 무한한 우주 속에 와있는 것 같았다. 어둠은 우리의 치부를 손안에 쥐고 있다. 살짝만 힘을 주면 박살 나 가루로 흩어질 것이다.
벌레 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 그리고 헬멧을 스치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귀가 예민해졌다. 만일 동물 소리라도 들렸다면 나는 아마 엉엉 울었을 것이다. 잠시 유체 이탈을 해서 천천히 내 공포를 음미하며 생각해 봤다. 이 산속에 이 오토바이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육식동물이 얼마나 될까? 혹은 정확히 내가 가는 속도를 계산해서 날 옆에서 덮칠 수 있는 정도의 지능과 순발력을 가진 산짐승? 얼마 안 되겠지? 애써 희망 회로를 돌리며 꼬불꼬불 산길을 올랐다.
이렇게 어둠에 갇혀 두려움에 몸서리쳐본 적이 있던가.
7년 전,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는 길,
최단거리 루트를 택했다. 관광객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듯했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날 내려 주는 걸 깜빡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주며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행선지가 같은 라오스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문자 그대로 길 잃은 어린양이 되어 쫄래쫄래 그 사람을 따라다녔다. 분명히 고속버스 정류장일 텐데 건물은 없고 길가에 노점상들만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작은 동물들이 꼬치에 끼워져 불에 지져지고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사 먹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 라오스 친구는 하나뿐인, 따라서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 동아줄이었고, 그 친구가 올라타는 버스를 보지도 않고 따라 탔다. 어차피 나는 베트남어도 라오스어도 하지 못하고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버스에 몸을 실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가 멈춰서는 느낌에 놀라 깼다. 새벽 세시였다. 버스가 고장 났나? 갱단의 습격으로 멈춰 선 건가? 창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무한히 펼쳐진 황무지 위였다. 여기서 사라지면 시체도 못 찾겠군. 두려움에 사로잡혀 털 끝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달빛이 눈부셨다. 달빛이 어찌나 밝던지 어둠을 가리는 커튼 같았다. 손을 뻗으면 그 빛줄기가 손가락에 걸려 커튼을 열어 젖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튼이 달린 그런 럭셔리한 버스는 아니었는데. 덕분에 밤의 빛을 알게 됐다.
버스는 한참을 어둠과 적막 속에 우둑하니 서 있었다. 한껏 털을 세운 채 웅크리고 있던 내게 한 줌의 평화를 가져다준 것은 탁 터져나온 갓난아이 울음소리였다. 엄마가 아이를 어르는 소리도 들렸다. 아, 여기에 아이와 아이 엄마도 타고 있구나. 그렇다면 여긴 안전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잠에 빠져들었다.
피처폰이 틀림없는 알람 소리에 놀라 깼다. 그게 버스 운전기사의 피처폰이었는지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그저 운전 기사의 쪽잠일 뿐이었나? 긴장이 풀어져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버스가 급하게 방향을 트는 느낌에 놀라 깼다. 버스 정류장이 틀림 없는 건물이 보였다. 서서히 동이 트면서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차례로 자기네들을 드러냈다. 거대한 등짐을 짊어진 백인들이 보였다. 나는 이제 살았구나. 안도감이 부드럽게 날 집어삼켰다. 태양은 정말 절대적인 존재다. 태양의 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나는 그를 섬겼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일렁일렁 동이 터오르면 마음에도 평화가 차오른다. 잔이 차고 흘러넘친다.
지지난 주말에 드디어 브런치북 공모전에 지원했다.
8년 전 이맘때쯤 처음 브런치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그전 해, 페이스북에 주절주절 나에게 인상 깊은 경험들을 남기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사실 나는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언제나 있었고, 학창 시절 선생님이 강제로 쓰라던 일기도 꽤 즐겁게 쓰는 어린이였지만, 글을 쓴다는 건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읽을만한 거리가 있도록 나를 끝없이 갈고닦은 후에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남들이 보는 곳에 나의 졸문을 걸어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다가 만난 한 외국인 강사는 한국인들은 매일 배우려고만 하고 지금까지 배운 걸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생각은 안 한다고 말했다. 나 들으라는건가? 어차피 내가 공부를 많이 하는 때는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럼 그냥 공부 안 한 채 쓰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 과정만으로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돈 안 드는 취미 혹시나 '더 배워서 써야지'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냥 쓰시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매체에 대한 고민은 계속 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한 고민도. 구사할 줄 아는 전략이 소거법이라 억울하긴 하지만 이것저것 해보는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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