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등내떠(밀어) 노마딩 이야기
3년 전 이맘때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매거진 이름을 '디지털 노마드 로그'로 지었다. 내 삶의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였는데, 왜 나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거나 언젠가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는 다짐을 어딘가 잘 보이는 데 걸어두고 싶었나 보다. 거창한 이름의 매거진을 시작한 지 3년 후, 출사표까지 내걸어본다.
1. 22년 9월 30일 강남을 떠났다.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닫히고 그다음 페이지로 스륵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인생에 강남에 살게 될 줄이야! 취준생 때 면접 보러 한 번 갔던 강남은 빌딩만 높고 쥐뿔도 매력 없는 동네였다. 논스라는 커뮤니티 하우스에 넘어가서 거기서 2년 넘게 살고, 또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논스 스핀오프'로 1년 살면서 어느새 강남 주민이 됐다. (야너두, 강남 셰어하우스 살 수 있어!)
강남 마지막 날, 이삿짐을 가득 싣고 들린 논스에서 같이 일했던 ㅇㅅ와 ㅇㅈ이와 마주칠 수 있어 기뻤다. 안녕이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2.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까지 부모님 댁에 신세를 지고 있다.
나는 수도권 베드타운 키즈다. 집적 효과니 중심업무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니 해서 회사들이 모여 낑기다 못해 수직으로 끝없이 쌓여있고, 그 비싼 땅에 집 짓고 살 수는 없으니 (돈 모아봐 안 되는 게 어딨어?) 근처 교통 좋은 곳에 아파트촌을 짓는다. 이곳에는 학원, 마트, 헬스장, 카페 등 돈을 쓰는 시설밖에 없다. 회사들이 모이는 곳, 출퇴근러의 나머지 가족이 사는 곳, 도시의 성격과 생김새가 다르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출퇴근 시간은 막힌다.
메타버스에서는 이 모든 법칙이 무너진다. 나는 어디로든 요리조리 순간 이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4차원의 존재가 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요컨대 회사 근처에 살 필요가 없다. 회사들도 비싼 월세 내가며 사무 공간을 마련해줄 필요가 없다!
있는 건 오피스뿐인 강남에서 일하다가 일산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니 옆 테이블 급식러들의 소란이 귀에 걸린다. 베드타운의 대장주는 쟤네+쟤네 보호자들인 것 같으니 안 들리는 척하며 타자를 친다.
아무튼 100% 재택근무인 일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3. 해외 현장학습의 결론은 '1년 정도 내 나라를 떠나 여행하듯 원주민인 듯 살아보자'였다.
지난여름 갑자기 유럽에, 이번 가을에 미국에 다녀왔다. 둘 다 블록체인 컨퍼런스(더 적절한 소개가 떠오르지 않아 독일, 프랑스, 미국 이벤트 링크로 갈음한다)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7년 만의 해외 유람은 우물 안 베짱이에게 충격의 연속이었다.
독일 뷔케부르크의 한 성에서 열린 이벤트는 '컨퍼런스-아님(Unconference)' 이었다. 정해진 일정표가 없었고, 매일 아침마다 모여 '오늘 이거 주제에 대해 같이 얘기해볼 사람?' 하고 함께할 사람과 시간, 장소를 조율해서 화이트보드에 하루살이 시간표를 적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은 달은 어느 누구의 관활권도 아니니 거기서 우리의 거버넌스 실험을 하자는 대화 주제 (이후 미국 대법원에서 낙태 합법화 판례를 뒤집었을 때 또 달로 가주아라는 얘기가 나왔다)가 있어 가봤는데, 그러면 지구와 달 사이에 송금은 블록체인으로 하면 되겠다, 그럼 블록체인 간 시간 싱크(block time sync)는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 앉아서도 천리안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이 달라지니 대화 주제(narrative)가 못 알아듣게 달라졌다.
4. 인터넷은 '물리적 장벽'이 없다고 썼지만, 현실적으로 넘기 힘든 두터운 벽이 있다.
언어와 시차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들의 61%는 영어다(위키피디아). 구글 번역기 좋지만 진짜 문제는 '문화'나 '제3 시민의 움츠러드는 어깨'라고 할 수 있다. 30년 차 농경민족인 내게 '블록체인 괴짜'들의 유목민 문화는 낯설다(관련 재밌는 유튜브).
참고로 라떼는 크레파스에 '살색'이 있었다. 역시나 백인 남성 위주인 블록체인 이벤트에서 내 살색은 눈에 띄었고, 이런 '소수성'이 낯설었다. (여자로 살기엔 더 좋았다. 노브라 천지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곳의 언어 하나 제대로 구사한다면 모범 시민이라 할 수 있을진대, 생각은 한글로 하고 말은 영어로 하려니 초딩 수준의 대화가 이어졌다. 할많하않.
시차 얘기를 해보자면, 지구는 미국과 유럽 위주로 자전하기 때문에, 나의 내일 일정은 새벽 1시, 아침 6시, 아침 10시다. 시차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미국이나 유럽 가까이로 움직이면 된다. 바벨탑은 좀 더 높은데, 나는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 벗어나면 움켜쥘 지푸라기는 영어뿐이라 태국도 충분하다. 물가도 싸고, 날씨도 좋고!
5. 더 늦으면 못 떠나겠다 싶어서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지난 해외 유람 한 줄 요약은 '태어난 곳에서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떠나는 걸 미룰수록 두려움은 커질 것 같아 편도로 비행기를 끊었다. (편도는 입국 거절될 수 있다고 해서 귀국편도 대충 아무거나 끊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보다 변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낯설다와 두렵다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논스 입주를 고민할 때도 자신이 없었다.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자신이 없어서 1인실에서 딱 세 달만 살고 나오기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한 달만에 4인실로 옮겼고, 2년 살다 논스 운영팀에 취업까지 했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이기도 하다.
6. 나는 왜 떠나려고 하는 걸까?
고생길이 훤하다. 그냥 한국에 살면 어떨까? 부모님 집에 오니 마냥 편하다. 무전 취식 짜릿하다.
논스 고인물이 되어 내게서 악취가 나기 시작할 때쯤 그곳을 나왔다. 처음에 그렇게 발 담그기 두려워했던 곳이 나중에는 뽀시라운 안전지대(Comfort Zone)가 되고, 결국 떠나게 됐다는 게 재밌다. 난 어디에 가려는 걸까?
7.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기쁜 일이 있었다.
스포어다오를 대표해 참여한 '공공재 Noun NFT' 입찰에 성공했다! 어깨춤이 절로 나왔지만 내 가족, 친구,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그 기쁨을 함께할 순 없었다. 이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 전의 나에게도 설명할 자신이 없다.
축하는 디스코드, 트위터, 텔레그램에서 받았다. 독일에서 만났을 때 나와 너무 다르고 멀게만 느껴져서 같이 지내는 게 스트레스였던 사람들이 나의 기쁨을 함께해줬다. (알고 보니 그 사람들 중 몇몇이 만든 거였다!)
7번 확장판) 설명 스겜, 건너뛰어도 아무 문제없음
1) Nouns
- 나운들은(복수형 -s, 나운즈) 저 네모네모 안경을 쓰고 있는 애들이다. 초기 설정된 특징 변수(trait, 배경2/몸통30/악세사리140/머리242/안경23)에 따라 AI가 매일 하나씩 영원히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NFT다. 하루 동안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자동으로 그 NFT의 주인이 된다.
- 나운즈 NFT를 들고 있는 사람은 나운 다오(DAO,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하자)에 가입할 수 있다. 나운즈 NFT 판 돈은 전부 나운즈 다오 금고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금고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포함한 나운즈 다오의 중요 의사결정(Governance)은, '나운 NFT 1 개 = 1 표'로 결정된다.
- 나운즈를 만든 애들은 CC0(링크 맨아래)를 선택, 모든 저작권을 포기(대신에 처음 5년간 매 10번째 나운즈 NFT, 10, 20, 30.. 을 가져간다)했기 때문에 나운즈랑 아무 상관없는 지나가던 행인 1도 나운즈 로고를 티셔츠에 박아 팔 수 있다.
- 그래서인지 나운을 가지치기(fork)한 프로젝트가 많은데, 스포어다오가 산 저 퍼블릭 나운즈(Public Nouns)도 '공공재(Public Goods)' 펀딩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 퍼블릭 나운은 가지치기하면서 하루 2개가 만들어지도록 했고, 저 주머니쥐는 12번째니까 생겨난 지 7일 차인 신생 프로젝트다.
- 참고로, 가지치기 후에도 본체를 잊지 않고 나운즈다오에게 매 30번째 공공재 나운즈 NFT를 준다.
- 이 모든 건 블록체인 위에 적힌 코드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도 바꿀 수 없고 자동으로 실행된다.
2) 공공재(Public Goods)
- 정부같이 중앙화 된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 세상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공공재/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 이에 대해 각자 답을 만들어가는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중 7개의 프로젝트, 그들의 마스코트를 '나운화' 한 게 바로 퍼블릭 나운즈(pnouns) NFT다.
- 피나운즈 NFT를 판 돈은 피나운즈 다오 금고로 들어가며, 공공재 자금 조달에 쓰인다. 공공재가 뭐고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나 어떻게 줄 지는 퍼블릭 나운즈 다오에서 정한다. (1NFT = 1표)
- 스포어다오의 퍼블릭 나운은 옵티미즘(Optimism, 낙천주의) 이라는 프로젝트의 마스코트인 OPossum(주머니쥐) 중 첫 번째다.
- 옵티미즘은 자기네 블록체인의 주요 매출원을 공공재 자금 조달(PGF, Public Goods Funding)에 사용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설명은 링크와 링크로 대신한다.
- 다른 공공재 프로젝트로는 깃코인, 몰로크, 메타카르텔 등이 있다.
3)스포어다오
- 설명 커밍쑨! 링크 투척!
8. 다오(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다오에 대해 가장 맘에 드는 설명은 '인터넷 원주민(internet native) 조직'이다. (주식회사의 미래라는 설명도 있다) 대부분의 조직은 기본값이 '오프라인'이다. 회사가 전부 온라인에서 굴러간다면 어떨까? 메타버스 일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와 상관없이 직원 모두가 원격 근무를 한다면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개인의 하루, 인생, 도시와 국가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물리적 제약이 사라지고 새로운 디지털 제약, 예를 들면 '만나서 얘기해'가 아니라 비동기적(async) 커뮤니케이션이 기본값이 된다는 건 중력장이 변하는 느낌일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오가 디지털 협동조합(Cooperative),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수평적 조직화 방식의 2022년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9. 초딩들의 장래 희망에서 의사를 제꼈다는 유튜버가 바로 메타버스 일자리다.
경제 활동이 전부 인터넷 위에서 일어난다. 어디에도 고용되지 않으며, 정해진 업무 시간이 없고, 인터넷이 접속되는 어느 곳에서나 일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 법을 따른다거나 세금을 낸다거나 하기도 애매하다. 물론 유튜브는 미국 법인인 구글에서 서비스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미국 시청자들로부터 발생한 수입에 대해) 달러로 세금도 내고 정부 규제에 영향도 받는다(한국 거주 중인 한국인은 종소세도 낸다. '수출'이니까 부가세는 면제해준단다).
10. 지금도 포르투갈이나 두바이같은 나라들이 디지털 노마드에게 면세 혜택을 주고 있다.
인터넷 원주민 법인(다오)과 인터넷 원주민 화폐(암호화폐)가 기본값이 되면 어떨까?
내가 쓰는 공공재는 옵티미즘에서 만들어줬는데!
사진: 뷔케부르크 마을 축제에서 노신사&노숙녀가 춤추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