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베팅이야! by 젠
안녕하세요, 저희는 12개월짜리 프로젝트 기반의 pseudo-가족입니다. 첫 타자로 소개하려니 멋쩍어서 영단어를 막 던졌습니다. 왜 하필 나야 대충 1년짜리 유사가족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논스라는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같이 살던 친구 네 명이 스핀오프 해서 1년 반전세 계약을 묶었습니다. 주거비를 확 아낄 수 있습니다. 전세자금대출 문 닫고 받았습니다. 사랑해요 카뱅
사실 친구라는 단어 쓰는 것도 역겨운 오글거리는 토 나오는 사이인데, 어쩌다 보니 4인 가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 '어쩌다'에 대한 기록, 다 큰 어른 넷이 같이 사는 12개월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4명이 돌아가며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4인 가구> 총 12편 연재!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가 오늘 백신 2차 맞아서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습니다. 줄 긋기 많이 보실 거예요.
굳이 개인의 가정사(?)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여러분도 언젠가 이런 삶의 방식을 한 번 시도해 보시라고 은근슬쩍 부추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따라 해 보세요. 인생 퀘스트 별로 (대학 잘 가기 → 취업 잘하기 → 결혼 잘하기 → 애 잘 키우기 → 와칸다폴에버) 주어진 가구 구성 (엄빠랑 살기 → 자취 하기 → 배우자랑 살기 → 애랑 살기→ 와칸다폴에버) 을 선형적으로 따르게 되겠지만, 그 사이에 이합집산 (논스톱 같아요. 요즘 사람들 논스톱 알아요?)도 가능하다는 것과, 그 가능성을 직접 탐구해보니 꽤 재밌다는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저는 혼자서도 잘 살 사람입니다. 좌우명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남들 눈에도 그래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혼자서는 절대 못 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퇴근길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처럼 흔들리며 맥주 한 캔 없이는 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수많은 1인 가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외롭지 않나요?
10/1에 이사 와서, 같이 산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희는 이미 논스에서 2년 정도 같이 살았던 경험이 있었고, 규칙 없는 것이 규칙인 그곳에서 '같이 살기'에 대한 교육은 대한민국 0.1% 수준으로 빡시게 받았다고 자부했습니다. 게다가 논스에서 와글와글 4인실, 6인실도 살았는데, 여기는 각자 1인실을 쓸 수 있는 4룸 복층 빌라입니다! 월세도 더 싸고! 친한 애들끼리 같이 살면 재밌겠다고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대강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저희도 부동산을 계약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있어서, 같이 한 잔 하고 보면 앉은자리에서 타임 워프하게 되고 잘 시간이 되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논스 탈출한 건데 이건 아직 우리가 같이 산지 얼마 안 된 '허니문 가족'이라 그런 걸 수 있습니다. 다음 화를 기대해주세요! <어쩌다 콩가루>로 제목이 바뀔 수도
제가 이렇게 빨리 글을 마무리하고 싶게 될 줄 모르고 동거인들로부터 닉네임과 사진을 요청했는데요. 달라 해놓고 안 쓰면 혼날 것 같아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소개를 막 던져보겠습니다. 저희는 메루, 셀퍼, 우니, 젠 이고요. 소개 순서 이런 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나다순으로 가겠습니다.
메루는 인테리어 업자입니다. 이사 오기 전에 자기 방 3D 모델링해서 가구 배치 손봤습니다. 메루가 거실까지 신경 써준 덕분에 저희 거실이 좀 태가 납니다. 진짜 인테리어 업자는 아니고 네 명 중에 가장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추구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소개가 좀 이상하네 각자 차례 때 직접 하자.
셀퍼는 주방의 정령입니다. 제가 타자를 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손에 행주를 들고 뭔가를 닦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주방이 태가 납니다. 정리정돈은 엔트로피를 낮추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신기한 생명체라 정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셀퍼는 302호의 청일점입니다. 같이 사는 데 성염색체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다수자인 저의 생각일 수 있으니,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쩌다 4인 가구> 11월호 바톤은 셀퍼에게 넘기겠습니다.
우니는 저희 급식업체입니다. 자기 밥 하는 김에 4인분 해줍니다. 우니가 집에 없을 땐 시리얼을 먹습니다.
우니의 어머니가 그렇게 댁에서 바닥을 정돈하시며 우니의 머리카락을 치워주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어 우니가 기겁하며 직접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수거합니다. 덕분에 저희 집 바닥이 태가 납니다.
저는 제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방도 태 안 나는데. 이 글을 보면 아마 나머지 셋이 제각기 뭘 시키겠지 아이디어를 주겠죠.
당근 최대 아웃풋 전자 피아노! 제 소중한 F를 지키기 위해 예술에 투자했습니다 (MBTI의 그 F 맞습니다). 아 그리고 같이 살면 좋은 게 각자가 투자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니는 프로젝터, 셀퍼는 스피커, 메루는 지금 보니까 오큘러스가 있네요. 그걸 같이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써도 되는 거 맞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꽤 큰 베팅을 한 걸지도 모릅니다. 넷이 그냥저냥 친한 사이를 유지하며 얇고 길게 갈 수도 있었는데, 논스가 너희를 그렇게 키웠니! 인생은 베팅이야!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아예 가정(?)이 파탄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 <어쩌다 4인 가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런 선택이었습니다. 친구가 집 보러 간다길래 별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그 공간에서 같이 사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의 가장 일반적인 가구 형태인 1인 가구를 저는 상상할 수 없게 됐나 봅니다. 다 논스 탓이라고 하고 싶은데 지면이 부족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피곤한 작당 모의를 하게 되었는지 배경이 궁금하시다면 논스 브런치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나머지 애들은 무슨 생각으로 4인 가구가 되었는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 마저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다음 달에!
+a 한 달 회고를 안 했네요. 일단 저는 처음에 상상했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고요, 매 달 반상회를 하기로 했는데 (이 글 연재도 반상회에서 결정했습니다) 불편함이 있다면 그때 조율하면 되지 않을까 일단 미룬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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