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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Oct 04. 2020

나의 직장 상사 연대기

나의 타고난 보스 복(福) 자랑하기

1. 나는 왜 이렇게 내 전 보스를 좋아했던 걸까?

나 스스로도 미스터리다. 친구들이 퇴근하라고 성화였다. 누군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던데, 나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되뇌며 일한다.


이 글은 나의 보스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2. 직전 보스에게는 첫눈에 반했다.

면접장에 누가 저벅저벅 들어오길래 봤더니 별로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 여자였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대뜸 자기가 신사업본부장이라며, 이 면접을 잘 보면 당신은 합격이라고 했다(아직 1차 면접이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보니 어느새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고, 대뜸 당신은 합격이니 이 회사에 다니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일할 때 사심이 없었다. 카카오의 조수용 공동대표 인터뷰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경영학과 필독서로 꼽히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를 졸업한 지 5년 만에 읽으면서도 전 보스가 떠올랐다. 그에게 푹 빠져있는 게 나뿐만은 아니라, 당시 다른 동료는 '직장 상사라기보다 은사님'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3. 7년 전 여름,

철강사 전략기획팀 인턴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팀장님은 나에게 첫 업무 지시를 내리며 '세상에는 두 종류의 보스가 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해 주는 보스와, 설명해주지 않는 보스'라고 하셨다. 지금 들어도 사무치는 말이라, 내 임금 노동의 1차 소비자인 나의 보스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재차 물어 확인해볼 용기를 심어주셨다. 

당시 보스는 항상 '일은 재밌게 해야 해'라고 외치고 다녔다. 사실, 그가 나의 '업무상 즐거움'을 위해 딱히 뭘 해준 기억은 없다. (그건 내 사수의 몫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일을 즐기지 못하도록 만든 적도 없다. 이는 아마도 관리자들 입장에선 이루기 힘든 목표일뿐더러, 불필요하게 눈치 볼 필요 없는 보스 자체도 희귀한 포켓몬이라는 걸 사회생활 짬바가 차고 나서 알았다.

'우리는 학습하는 조직이야'라고 항상 말씀하시더니, 인턴 마지막 날에는 내게 책 한 무더기를 선물하셨다. 경영 전략, 마케팅, 재무 등 분야별로 엄선된 책들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팀의 막내로서 열심히 팀 택배를 받아 나르며 '아니 뭐 이리 교보문고 배송이 자주 와'라고 투덜댔다. (이거 따라 하려고 전 직장 인턴 출근 마지막 날에 재무학 책을 선물하려다 까였다. 요즘 젊은것들이란. 크흠. latte is a horse)



4. 인턴을 챙겨주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내가 후배 인턴을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당시 팀원들은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의 ㅎ 첫 획 하나도 티 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주느라, 내가 회의록이라도 하나 정리해 간다 치면 도륵도륵 의자를 끌고 와 한 줄 한 줄 첨삭해주곤 했다. 그럼 난 숨죽이고 앉아서 '을' 이 '를'로 바뀐다거나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마 전 현 보스로부터 '이메일을 잘 쓰네요'라는 피드백을 들었는데, 7년 전 심어진 씨앗이 요즈음 싹을 틔웠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쓰는 PT 슬라이드와 목차 구성 방식은 그때 직상관이 전수해준 것이다.

당시 내 의자는 허먼 밀러였다. 회장님께서 다른 직원들과 같은 의자를 쓰겠다고 하셔서, 전 직원이 허먼 밀러를 썼다.



5. 5년 전 겨울,

워싱턴 D.C. 싱크탱크에서 꼬꼬마 인턴으로 일하던 때, 나는 매일 '리차드 리차드' 하고 노래를 불렀다. 리차드는 당시 내 보스였는데, 그가 너무 좋아서 나는 무슨 얘기만 나오면 리차드를 갖다 붙였다. 예를 들면, 누가 샐러드를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으면 갑자기 내가 리차드의 겸손함을 칭송하는 식이었다. 맥락은 없었다.

"리차드는 자신의 최근 연구 주제를 말할 때 눈이 반짝이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장래 희망을 사는 사람이다." 라며 이미 리차드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은 바가 있으므로, 그가 얼마나 자신의 분야에서 빈 틈이 없으면서도 (이 경우 권위는 남들이 앞다투어 드높여준다) 인턴 따위를 얼마나 따뜻하게 대해주는지 (끔찍하게 괴롭혔어도 그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면 앞다투어 눈물을 닦았을 텐데 말이다)를 소개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6. 3년 전 여름,

대학을 졸업하고 편의점 영업관리자로 내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워커홀릭으로 악명 높은 팀장이 당첨되어 동기들이 앞다투어 내 걱정을 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입사한대도 그 사람 팀원이고 싶다. 배울 점 투성이였다. 

그분은 '세상에는 1을 주고 9를 얻으려는 영업사원 천지다. 나는 10을 다 주려고 노력했다. 점주들의 마음을 얻고 나면, SC가 묻기도 전에 점주는 오케이다'라고 하셨다. 팀장님이 과거 담당하셨던 점포 점주님들은 십수 년이 지나도록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승진이 빨랐고(그는 사회생활도 무척 잘했는데, 아마 점주님 대하듯이 상사를 대해서 그렇지 싶다. 곰의 덩치 안에 여우가 들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시기도 많았다. 퇴사하려는데 인사팀에서 계속 '팀장님때매 힘들어서 퇴사하는 거죠?'라고 물어와서 몇 번을 부정했다. (아니 나는 블록체인 하려고 퇴사하는 거라니깐요!!) 

큰 조직에서 정치 싸움은 필연일까?



7. 나는 대학 때부터 종종 '너는 스타트업이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작 나는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현재는 '넌 스타트업 방식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말한다'는 얘기를 듣는데, 이는 내가 '스타트업 희망편'만 경험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트업 희망편 보스1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흡사 연예인이었다. 온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일품이었고, 셀프 브랜딩을 숨 쉬듯 했으며 일단 에너지 레벨이 높고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쳤다. (새로운 자극을 가까이하기 때문일까? 특히 네트워크-정보가 빨랐다) 무엇보다 추진력이 '로켓에 자리가 나면 무슨 자리인지 묻지 말고 그냥 올라타세요' 급이었다.

보스2는 정갈한 모범 답안이었다. 단어의 적절한 용례를 사전에서 찾듯, '이런 상황에서 비즈니스맨의 적절한 행동과 대사는?'을 찾으려면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면 됐다.

보스3은 업무적으로는 이미 정평이 난 완성된 보스몬이었다. 창업 2회차의 그는 일하기 즐거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 이름에 '플레이'가 들어가면 게임 끝난 것 아닌가?



8. 업무 지시를 할 때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날 부려먹는지 알 수 있다.

다시 직전 보스로 돌아와서, 

첫 출근날 그는 내게 사업의 큰 그림과 현황을 대강 설명해준 뒤, 'VOC(Voice of Customer) 봐주세요'라고 처음이자 마지막 업무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느슨하게 묶어놔야(?) 내가 신나서 날아다닌다는 걸 그 사람 덕분에 나도 처음 알았다. 

팀과 업무에 익숙해지기 전에 신선한 시각으로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그동안 본 것들 정리해서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이런저런 게 있고, 관련해서 저런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전부 초록불을 켜 주셨다. 피드백도 한보따리 안겨주셨다. 일이 재밌었다.

조직에서 가장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상대방이 정말로 이해할 때까지 차분히 설명해주고, 마지막에는 꼭 더 궁금한 점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9. 그리고 지금 보스를 만났다. 

운명인가 싶다. 이렇게 지독한 워커홀릭은 처음 봤다. 아마 업계의 이름난 카리스마틱 리더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일에 미쳐있다. 우선순위가 확실하며, 1순위는 당연히 사업의 성공이다(그 1순위를 위한 우선순위 중 1순위가 바로 우리 모두가 외치는 고객 지향이다). 그래야 J커브를 그리고 유니콘이 될 수 있나 보다. 

성취지향의 끝판왕과 일한 지 한 달, 자아 성찰의 기회는 충분했다.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히피다! 

이렇게 큰 파도를 만난 것도 서퍼의 영광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구명조끼 던져주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맘 편히 파도를 타고 있다.



숨은 서퍼 찾기


10. 제3의 길

글을 쓰다 보니 내게 의외로 프리랜서가 맞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느끼는 게 크기 때문에, 그 모든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보다 부대끼며 팀으로 일하는 게 더 좋은가보다. 디지털 노마드 할 수 있으려나? 

일단 연휴가 끝나가기 때문에, 지난 여름 알바하던 시절의 글로 대강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 굿바이 추석!






요새 열심히 알바 중인데, 돈 버는 일은 역시 고통이다. (주는 이도 괴롭겠지만, 받는 이도 고통이다!)

지난주에는 시급제 알바를 했는데, 아침에 출근 시간 맞춰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여름철 홑이불이 어느새 석고 기브스가 되어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침대에 붙여두는 게 아닌가! 

병명은 출그나기시러병이라고, 간신히 폰을 집어 들어 친구에게 "출근하기 너무 싫다 끙끙" 하고 카톡을 날렸더니 "빨리 출근해서 돈 받으며 끙끙대"라고 답장이 왔다. 

큰 깨달음을 얻어 빠르게 씻고 출근도장을 찍었더니 아까 아침보단 덜 괴로웠다.





이미지 출처: surfer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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