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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Jul 27. 2020

어느 금 세공사 이야기

7월의 백수

역사 속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실패했듯, 나 또한 시간을 더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연금술사가 아니라 금 세공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시간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1. 내가 가진 것 중에 아마 시간이 제일 귀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라고 하는 것 같다. 10년생들은 시간은 비트코인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관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공부만 했고 (망나니 대딩시절 같은 예외는 물론 존재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돈 버는 일 (과 방전된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일)만 했다. 



2. 백수가 되고, 관성이 끊어졌다. 

어느새 졸업 이후 직장인으로 지낸 시간보다 백수로 지낸 시간이 길어졌다. 관성에 젖은 사회인이라기보다 맥북을 옆구리에 낀 모글리자연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는 불안하다. 하루 24시간이 부담스럽다. 할 일이 없는데, 이 많은 시간을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난감하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마일드 스포 주의) 물을 무서워하듯, 나는 내 시간이 온전히 내 몫인 게 두려운가 보다.



3. 모교 건물 옥상에는 고3 전용 하늘정원이 있었다.

풀떼기를 가꾸느니 시들 때마다 새로 사다 심겠다는 관리자의 결단력이 빛나는 공간이었다. '풀떼기' 대신 '고3'이나 '도비'를 넣어도 말이 된다. 졸업을 앞두고, 하늘정원에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앞으로 아무도 내게 '공부를 좀 그렇게 해 봐라'라고 잔소리하진 않겠군. 그럼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지난 12년간 학교에서 모범수로 생활했으니, 4년간 가석방을 시켜주겠네"라는 말을 듣고 "안돼요!! 제 삶은 감옥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고요!!"라고 외치는 식이었다. 방향성은 사회에서 정해줬고, 나는 그 힘의 크기만 키우면 되는 생활에 익숙했다. 

벡터 10년 차, 여전히 우왕좌왕이다. 

(벡터 - 크기와 방향으로 정하여지는 양 / 스칼라 - 하나의 수치만으로 완전히 표시되는 양. 벡터, 텐서 따위의 유 방향량(有方向量)에 대하여 방향의 구별이 없는 수량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4. 경제적 자유를 측정하기에 소득보다 시간이 더 적절한 지표일 수 있다. 

부(富)는 소득이 아니라 소유다. 여유는 소유에서 나온다. 진짜로 시간이 금이다!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친구가 "지난주 휴가는 정말 행복했어"라고 외쳤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이 휴가인 셈인데, 왜 별로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다시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바보야!"라고 외쳤다.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연설을 눈 앞에서 듣는 기분이었다.

아쉽다. 나의 부를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금 세공사가 아니라 모글리였다. 

돈 많은 백수였다면 행복했을까? 하지만 내 시간으로 돈을 산다고 해도, 나는 내 시간이 바닥날 때까지만 돈을 살 수 있을 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유함이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나의 시간과 체력은 부자들의 부가 스스로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친구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한 모금 물더니 "음~ 삼천 오백 원의 행복!"이라고 외쳤다. 그깟 커피 한 잔에 저렇게 기뻐하다니. 대체 부(富)란 무엇일까? 어쩌면 마음 가짐에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5. 관성의 힘은 무섭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벽돌처럼 굳어지고, 성실한 막내 돼지가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 아늑한 모닥불이라도 피우고 나면, 큰 형님이 아무리 초가집의 ROI를 외쳐도 소용없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블랙베리를 보며 아이폰을 만들지 않았고, 일론 머스크는 폭스바겐을 보며 테슬라를 만들지 않았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어렵다. 나 또한 나의 금덩어리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곁눈질해서는 안될 것이다. 

멋모르고 주물주물 만들다 보면 '아, 내가 이런 걸 만들었구나!' 하는 순간이 오겠지.


일과 중 명상이 참맛이듯, 글도 퇴근하고 주말에 짬 내서 턱 괴고 쓰는 게 진또배기인데 이렇게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 메뉴가 되니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이미지 출처: 영화 <정글북> 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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