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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Jul 03. 2020

과거 회상 5컷

Price you pay for the Life you choose

5. "티셔츠에 청바지는 마크 저커버그만 입을 수 있다. 대부분의 미팅은 자네가 무슨 색 정장을 어떻게 갖춰 입었는지, 그 첫인상에서부터 승부가 갈린다"

라는 조언을 해 주신 교수님이 계셨다. 당시 나는 내면의 창고가 비좁아 겸양과 싸가지는 내다 버리고 오만과 허풍으로 가득 채웠던, 청개구리처럼 푸르른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어쩔"이라고 생각했다. (부디 지금은 그때보다 더 넓은 창고를 가진 사람이길) 

교수님의 뜻을 이해한 건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미팅에 나가면 나를 보호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어느 대기업 무슨 팀의 몇 년 차라는 그런 자기소개는 불가능했다.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쓰레빠를 끌고 미팅에 들어가면, 테이블 건너 상대편에게 내 말의 권위를 세워줄 것은 오직 내 말뿐이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지만이 중요했다. 이건 내게 꽤 큰 스트레스였다. 어디 뒤로 숨을 기둥이 없었다.


4. 걷지 않은 길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보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이 물끄러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위키피디아에 "단돈 80만 원과 카메라 1대만 들고 무작정 유럽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라고 나오는 이 영화는 실제로 20대 친구 4명이 히치하이킹도 하고 접시도 닦고 게스트하우스 홍보 영상도 만들어주며 1년간 유럽을 여행하는 실화 다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청춘이 부러웠다. 

내가 머리가 좋았다면 영화감독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성공 사례를 보며 부러웠다. 집에 돈이 많았다면 건축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우 로마의 이 건축물은 매해 찾아가도 매번 아름다워요. 정말 웅장하죠." 내가 가진 선입견은 그렇게 생겼나 보다.


오늘은 또 다른 '걷지 않은 길' 영상을 봤다. Foo Fighters의 리더 데이브 그롤의 <Play> 뮤비다. 음악은 8:10에 시작하고, 앞의 영상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강 "음악 오디션 쇼에서 심판들은 구리다고 개소리를 해대지. 구린 너와 구린 친구들을 모아 구린 음악을 연주해봐. X나게 합주하다 보면 너는 어느 순간 뮤지션이야"라고 얘기한다. (아이디어 출처: 시사인)

여기서 데이브 그롤은 일인 다역으로 혼자 모든 악기를 연주한다. 그중에 드럼을 칠 때만 헤드셋을 벗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드럼을 가장 먼저 녹음했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22분짜리란 말이다! 이 사람은 미친 유전자변형식품천재인가? 

자신의 분야에서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을 만났다. 코끝이 저렸다. 난 마블 영화를 볼 때 빼고는 잘 울지 않는 근엄한 사람인데 말이다.


오늘은 후회나 부러움보다 '나도 내가 선택한 길에서 어떤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오, 다행히 서른의 창고는 그리 작지 않은가 보다.

문제는, 무슨 길을 선택하고 싶은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호, 통재라.


3. 30년을 함께 살면서 파악한 나의 특성

중 하나는 물욕이 별로 없다는 점인데, 갑자기 슈퍼리치가 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오른 적이 최근 들어 두 번 있다. 하나는 a16z라는 벤처캐피털에서 2030년의 하루를 그린 영상을 보면서였다. 아침에 일어나 걱정을 비우면 (절에서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인 '해우소(解憂所)'는 근심 해에 풀 우를 써서,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마트 변기가 나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 준다는 것이었다. 첫 등장인물이 스마트 변기라니! 너무 구린데 너무 짱이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건 돈 많은 사람들이나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본소득 대신 기본스마트변기를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면 어ㄸ 그래서 부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오늘 본 유튜브 영상에서 "야 단세포가 다세포가 된 것만큼이나 하나의 생명체가 여러 개의 행성에서 산다는 것은 진짜 개짱이지 않니? VR도 킹왕짱이고 우리 모두 유전자조작식품사람으로 초싸이언이 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와 정말이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한 손에 꼽지만 (아이폰, 맥북, 에어팟, 애플워치 이거 다하면 얼마게? 애플 공홈 기본템 기준 99+132+19+53=303만원), 나중에는 정말이지 넘나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겠다.


2. 내가 선택한 삶이 치를 대가, the price you pay for the life you choose

는 영화 대부3에서 마이클 꼴레온이 자신의 조카에게 하는 말이다.

나도 뭘 하고 싶은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영화나 음악, 건축은 아니고, 오히려 아까 말한 그 유튜브에 나오는 Tim Urban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저명한 블로거다. <Wait but Why> 는 '잠깐, 근데 왜?' 정도로 번역되려나? 

아무튼 아이 같은 호기심을 참지 않고 엄청난 양을 읽어 제끼며 자기가 힘들게 배운 걸 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로 기술 분야의 지식 전도사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 탐사 일지'는 꼭 읽어보고 싶은데 다 영어고 너무 길어서 일단 미룬다. 그는 미룬다에 대한 재밌는 TED 강연도 했다. 이건 한글 자막도 있다.

하지만 2020년 난세의 영웅은 역시 사업가가 아니겠는가? 21세기의 전장인 피 튀기는 붉은 바다 시장에서 진검 승부를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흘러서 변한 것이라고는 삼국지 만화책을 읽다가 마블 무비(아이언맨은 일론 머스크를 모델로 했단다)를 보기 시작한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무거운 정장 갑옷 대신 가벼운 손발놀림을 택했고, 이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내 마른 체형에 제법 잘 어울리기도 하다. 프로 선수들을 보면 나와 비슷한 가벼운 체형은 서핑이나 클라이밍, 테니스 등이다. 대신, 이기고 싶다면 축구나 농구는 안된다. 


1. 무던히 글을 쓰면 언젠간 잘 쓰겠지

하는 소망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래도 두 달 걸러 한 편 정도는 썼는데, 세 달째 감감무소식이니 오늘 들었던 생각들이라도 정리해 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영화 <대부3>,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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