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과 주거, 세 공간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느새 이 1년짜리 4인가구 프로젝트의 시작보다 끝이 가까운 시점이 왔네요.
지난 2월호 이후 저는 세 곳의 다른 공간을 써봤습니다. 이번 호에는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지난 3월, 을지로에 있는 로컬스티치에서 한 달 살기를 했습니다. '크리에이터 타운'이라는 이름의 코리빙 공간은 호텔을 리모델링한 곳이었습니다. 1층에는 호주에서 온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2층에는 비건 레스토랑이 있고, 옥상인 18층에는 라운지가 있었습니다. 라운지 전망에 '아! 여기서 매일 일할 수 있는 거면 여기 한 달 살아야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교류 맥시멀리스트들이 모여 사는 논스(1인실 별로 없어요) 출신인 저에게는 좀 어색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힙한 공간만 있고 커뮤니티는 없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부 1인실이고(호텔이던 시절 객실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듯합니다), 인원 대비 공용공간이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지하에 공용 부엌이 종종 붐빕니다. 요가룸, 회의실 등 1인실을 개조해서 만든 공용 방도 있었지만 사용되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월 1회 로컬스티치가 주최하는 '커뮤니티 이벤트'로는 소속감을 주기에 택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옆방 이웃과 친해지고 직접 파티를 열고 하는데 장애물은 따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뭉쳐지지 않고 멕시칸 밥알처럼 푸슬푸슬 따로 놀았습니다.
살다 보니 이 커뮤니티는 적당한 거리감과 옅은 소속감 사이, 요정도의 밸런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한국은 아직 '코리빙', '셰어하우스'라는 단어가 낯설기만 한 기숙사인가? 초기 시장입니다. 그래서 로컬스티치처럼 1) 하드웨어는 리모델링으로 큰 투자 없이, 대신 인테리어는 첫눈에 반하게 2) 소프트웨어는 어차피 만들기도 어렵고 초기 시장에 잘 팔리지도 않을 '끈끈한 커뮤니티' 말고 (아직까지 코리빙은 임시주거공간이고, 커뮤니티를 가꾼다는 개념도 낯선 것 같습니다) '느슨한 커뮤니티'에 투자, 있어빌리티 커뮤니티 활동 챙겨주고 3) 코리빙은 힙한 거야!!!로 각인!! (이상 뇌피셜 주의) 하는 접근이 좋아 보였습니다.
부동산은 70%가 입지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을지로 교통 짱입니다. 처음에 월세를 들었을 때는 '어 비싼데?' 싶었지만, 을지로 한복판에는 주거 인프라가 거의 없을뿐더러, 요즘은 대학가 원룸도 그 정도 가격대라고 하니 현실적인 선택지입니다. 특히 주말에 친구 만날 때 제 앞마당인 힙지로를 제 앞마당처럼 드나들고 유행한다는 에스프레소 바인가 뭐시긴가 하는 곳도 가보고 (커피에서 홍삼 맛이 났습니다. 칭찬이에요) 좋았습니다. 을지로 코리빙 한 달 살기 로맨틱 성공적!
5월에는 업무 공간을 추가 구매했습니다. '부캐'를 키워보고 싶어서 그 부캐에 집중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오피스 공간도 있기 때문에 돈 낭비인가 싶기도 했지만, 내가 '자아를 선택'해서 그에 맞는 '공간을 선택'하는 경험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공유 오피스 업체마다 월 회비를 내면 자신들의 여러 지점에 대한 접근(access) 권한을 주는 상품이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제 자리보다 소파에서 일하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에, 지정석 없이 '라운지 접근 권한'을 파는 상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4인 가구 집에서 저는 책상이 안 들어가는 방을 선택하고 월세를 깎았는데, 그 대신 집 밖에 럭셔리한 오피스를 마련한 셈입니다.
그런데 부캐에게는 주 3-4일, 퇴근 후 집 근처 지점에서 두세 시간 정도로 잠깐 쓸 약간의 공간만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지점에 24시간 접근 권한을 줄게!'라는 상품은 끼워 팔기 가격이 부담스러워요. (첫 달 10만 원 할인 프로모션으로 이용했습니다)
언젠가 공유 오피스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고, 상품/가격 차별화를 더 쪼개서, 맞춤형으로 공간 점유권을 팔아준다면, 방방곡곡의 집 안에서 책상이라는 게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편의점이 '나만의 냉장고'를 외치는 것처럼요! 어차피 비는 자리 싸게 싸게 팔아주세요.
이번 6월에는 친구의 빈 자취방에 한 달 얹혀 살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가꿔놓은 사적인 공간에 잠시나마 주인이 되어보는 건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 사람에게 최적화된 공간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단서를 줍니다. 이 집에는 책상이 세 개나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칫솔은 두 개
이 친구는 집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동선과 시나리오(공간의 용도와 채광, 위치 등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 에 맞게 곳곳에 필요한 조명과 가구, 소품(무언가를 거는 고리, 인센스 등) 등을 갖춰놓았습니다. 의식주에 골고루 관심이 없는 저에게 '주'에 대한 이런 과감한 투자는 신선했습니다. (이 친구는 제 방-선정릉 4인 가구-의 너저분함에 큰 충격을 받아 제 방에 침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집에 세탁기가 없습니다! 세탁 as a Service 업체를 쓰면 집을 더 넓고 조용하고 간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냉장고 세탁기!
무엇보다 효창동의 고요함이 좋았습니다. 밤이면 길고양이와 집강아지의 합창 소리만 나지막이 들려옵니다. 게다가 집 앞 1분 거리에 기사식당이 줄지어 있다니! '식' 해결 완료! 점심 먹고 효창공원 한 바퀴 돌면 재택러 루틴 완성입니다.
이제 곧 7월이네요. 다음 주에는 베이스캠프인 선정릉 4인가구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비밀번호 안 바꿨지? 집에 잘 안 들어오니 하우스 메이트들은 제가 역마살이나 방랑벽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냥 다양한 공간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룸메이트는 집에 오지 않는 룸메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최고지? <어쩌다 4인가구> 에서의 주거 실험 덕분에 낯선 공간도 턱턱 임대해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살고 일하는 공간에도 여러 가지 옵션이 있고, 복수 선택도 가능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1년짜리 프로젝트인 <어쩌다 4인가구>는 2022년 9월 30일 부동산 계약 종료 시점에 해산됩니다. (회고록을 기대해주세요!) 그 이후에 저는 노마딩을 하며 이곳저곳을, 서울을 벗어나 좀 더 멀리 가서 살아 볼 예정입니다. 제가 의지박약이라 혼자 떠돌아다니며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인데, (혼자서는 끼니 챙기는게 눈물나게 귀찮습니다. 봇짐에 프로틴 쉐이크 넣어 다닐까요) 그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아침마다 30분 요가 습관도 들이고 있습니다.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스타일' 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어제 있었던 6월 저녁 회동 사진을 감상해보시죠!
<어쩌다 4인가구>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