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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Jul 26. 2021

외로워 볼 만큼 외로워 해보는 것

 외롭다고 느껴질 때, '아 내가 외롭구나'라고 인식하고 외로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안 아픈 주사를 매번 맞는 것 같이 느껴진다. 


 주사를 맞을 때, 걱정한 것보다는 아프지도, 따끔하지도 않을 때가 가끔씩 있다. '바늘이 진짜 들어갔나?', '이 분 주사 잘 놓으시네.' 아주 흡족해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조그마한, 미세한 고통도 주지 않는 주사를 수시로 매번 맞는다면, 주사를 맞으면 원래 따끔한지도, 가끔은 팔에 힘을 줄 때마다 아프다는 것을, 때로는 피멍이 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 것 같다.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아픈 곳이 있고, 근본적으로 완치가 되는지조차 그 어떤 의사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처방전은 내준다고 한다. 사람마다 갖가지 다른 방법으로.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이 특효 주사 덕분에 아픔이 느껴질 때쯤에 잠시 동안, 일시적으로 이 고통이 없어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제는 '원래' 아프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무심해지고 그 주사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 행위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원래' 사람은 외로워야만 하는 존재인가? 생각해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채워줄 수 없는 공허함의 공간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왜 사람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냐고.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어도 진다. 나는 만약에 이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생각한 것보다 많이, 나의 모든 것을 할애할 것 같다.

 외로워 볼만큼 외로워 해보는 것이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게는 해줄 수 있다. 또 그리하면 사람을 만날 때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에게 집중하게 되고, 표현을 했든 못했든 만남의 행위 그 자체에 고마워하게 되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럽지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도 감사하게 된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으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 뿐인 그 주사에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명쾌한 해답일 수만은 없다. 

그러면 그걸 뭐 어쩌자고?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것부터가 또 다른 발전의 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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