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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Aug 30. 2021

소중한 것을 위해 나를 잃어보기로 다짐했다.


 나에게는 정말 너무 소중한 가치 하나가 내면에 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하나의 가치관의 씨는 내 안에서부터 자라나 싹이 돋고 나물이 되고, 장성하게 자라 나무가 되어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고, 가지에 새가 앉는 것처럼 생명력 그 자체를 가지고 있으며 나도 모르는 나를 알려주고, 나도 모르는 내 가치를 알려준다. '나'에게 호기심이 가장 많은 '나'에게, 내 삶을 위한 특별한 멘토 같은 존재다. 

 나는 껍데기일 뿐인 이 육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육신보다는 영혼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 삶의 흐름 속에 나의 자잘한 계획은 부질없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많이 느낀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거나,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나의 부모님, 나의 친구, 나의 지인, 나의 직장 동료,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조금 '남다른' 가치관을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나이에는 취직해야지.'

 '이 나이에는 자리 잡아야지.'

 '이 나이에는 효도해야지.'

 '이 나이에는 이러면, 저러면 안 되지.'

 '이 나이에는 저렇게 해야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 자신을 잃어가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신경 쓰며 맞춰 살아가야만 사랑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살아오며 확실히 느낀 것은, 적어도 '나'란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남들이 뭐라든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용기는 누가 줬는지, 어떻게 생긴 건지는 나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때때로 나를 감동시킨다. 나의 사랑스러움을 깨닫게 해주는 이 삶의 흐름과 가치관이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감회가 새롭다.

 남들은 '나'라는 존재의 사람을 사회의 흐름에 조금 동 떨어져 있고 어긋나가는 듯 한, 조금 독특한 사람인 듯 한, 쉽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집과 소신 사이의 어떤 것을 가진 듯한, 한 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듯 바라보곤 한다. 이러한 '시선'과 단순히 '보여지는 모습'보다, 나는 내 안의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하고 이 소리를 사랑하며 이 소리를 듣고 행동으로 옮긴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 이러한 내 모습에 '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누군가에게는 귀감이 될 수 있다. '타인'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귀감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하게 느끼는 가치관으로 인해 '나를 잃어보고, 나를 시험하고, 나를 던져 볼 기회가 생겼다.' 나도 놀란 것은, 내가 이렇게 행동할 용기를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시각이 달라지는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특유의 에너지와 분위기와 눈빛과 가치관과 사소한 말투와 행동이 인상 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든 배울 점이 있으며, 사랑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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