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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Aug 29. 2022

'비행기 모드'와 인간관계

버튼 하나로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멀어지는 방법

 이유를 막론하고 살다 보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에너지와 생기를 얻고, 충전하고, 활기와 자유를 얻고 만끽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잘 알면서도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여러 번의 거절에도 고맙게도 항상 먼저 연락해주는 친구들의 연락을 마다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타인의 호의는 잘 알아주고 배려해준 반면, 내 스스로에게 너무 푸대접을 해오다 결국 어느 날 '툭'하고 선이 끊어졌다. 끊어진 선은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그렇게 24시간 몸에 품고 다니던 휴대폰의 '비행기 탑승 모드'를 켜고 지인과의 모든 전화와 만남을 거부했다. 휴대폰을 당장 저 멀리 던져버리거나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막상 실천하자니 망설여졌다.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사람과의 단절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비행기 탑승 모드를 이용하기로 타협한 것이다.


 비행기 탑승 모드를 켜면 전화, 문자는 수신하지 않고 Wi-Fi를 통해 인터넷과 휴대폰의 기본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카카오톡으로 급한 용무와 모든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또 그때 상대가 전화를 하면 휴대폰이 꺼져있다고 음성 안내가 나온다. 부재중 전화를 문자로 알려주는 부가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으면 내가 원할 때에 비행기 모드를 끄고 누구에게 연락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지금 이 시대에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효율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 듯하다. 사람과의 연락과 만남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지친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다. 전화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텍스트를 이용해 상대방과 연락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게 두 달가량을 비행기 탑승 모드를 켜고 살고 있다. 전화가 꺼져있기에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는 척하며 조롱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만 늘 늘어놓아도 들어주기만 했던 사람이 없어져 당황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사정을 듣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한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은 온전한 자기만의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은 엄청나다. 이런 방법으로 살아보면 여태껏 얼마나 쓸데없는 연락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생각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누구에게 또 어느 곳에 필요한 사람인지, 습관적으로 전자 기기에 얼마나 메여 살았는지, 자발적 고독이 얼마나 달콤한지, 얼마나 부질없게 남 눈치를 보며 살았는지 보다 선명하고 명확하게 알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 같을지도 모르겠으나, 본인도 신기하지만 아직까지 굳이 친구나 지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살다 보면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 됐다, 할 때까지 자연스럽게 있을 예정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고 선한 마음으로 걱정해준다. 또한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혼자 있으면 뭐하냐, 혼자 나다니는 게 재밌냐 등 자발적 고독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받기란 쉽지만은 않다. 물론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사람은 특히나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이런 환경에 살면서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혹여나 나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눈치를 너무 본다든지, 타인에게 너무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라 정작 본인을 지속적으로 못 챙기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 동안이라도 '통신 수단'을 비행기에 탑승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큰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이 될 수 있겠지만 막상 '단절'을 경험해보면 별 탈이 없기 마련이다. '내가 없으면 안 돼', '내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어떤 탈이 일어날 것이고, 모든 것이 어긋나고 일이 꼬이게 되는 것을 은연중에, 한편으로는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짚어볼 수 있다. 그렇게 '부질없음'과 '허무함'과 '부끄러움'을 경험해보면 넓디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 아주 작고 초라한 개개인의 나무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개개인 본연의 특색을 지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나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자발적 고독 행위를 감히 현명한 단절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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