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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Jul 10. 2022

아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내가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나는 아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한다. 약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은 안타깝고 무섭게도 아빠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간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TV나 책, 잡지, 광고, 길거리 등에서 '가족 구성원 중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신경 쓰는 예민함도 점점 무뎌져 갔다. 문득 어느 날 '고독의 힘'이라는 책을 읽다가,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글을 보고 독서를 멈추고 잠깐 아빠 생각에 잠겼다. 


 집에는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주무시려던 어머니를 붙잡고 물었다. 아빠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노래가 무엇이냐고. 나는 아빠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듣는 노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엄마는 노래에 대해 말해주셨다.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고 박재홍이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라고.

 20년 정도 넘게 진행되고 있는 계모임에 다녀오신 엄마가 어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계모임에 다녀오면 너희 아빠 생각이 많이 나." 엄마는 아빠를 진정으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바로 18번 곡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 정도로. 


 1948년에 발표되었던 탓에 제목조차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유튜브에 검색하여 들어봤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긴 했다. 그러나 아빠가 왜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은 끊이질 않았다. 노래 가사 속의 사연이 궁금했다. 충북 제천시에 있는 고갯길인 박달재의 전설을 배경으로 한 이 노래에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기다림, 그리움 등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빠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고 아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너무 좋았다. 더 그리워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랄까. 

 
 글을 쓰다 아차 싶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하마터면 엄마를 서운하게 할 뻔했다. 엄마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들어보는 게 아닌 살아계실 때 같이 들을 수 있으며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시더니 서유석이라는 분의 가수가 부른 '가는 세월'이라는 곡명을 말씀해주셨다. 노래를 들어보니 역시 엄마와 나는 많이 닮았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좀 더 친밀하게 느껴져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를 추억하며, 이 질문을 했던 오늘을 기억하며, 엄마를 더 상세하게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 


 엄마가 주방에 서 있는 뒷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고, 같이 웃으며 셀카도 찍고, 통화할 때 목소리를 녹음해놓았다. 아빠에 대한 아쉬운 경험으로 이렇게 해 놓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소중하고 귀한 행동이라는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부모님과 통화할 때 목소리를 녹음해놓으라고. 사진을 같이 많이 찍어두라고. 동영상이면 더 좋다고.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말한다. "그냥 지금 있을 때 잘해드려라." 물론 가장 현명하고 명쾌한 답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효도와 별개로, 가족과 사별하고 난 이후의 삶을 위해 준비해놓는 것이 어떠냐는 뜻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을 귀찮아하고, 무언가 민망하고 부끄럽고, 나중에 언젠가 하면 되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글을 읽는 그 순간이나, 이것들이 생각날 때 그 찰나의 순간, 딱 한 번만 귀찮아하고 딱 한 번만 부끄러워했으면 좋겠다. 예전에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지금 이 순간은 더 특별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날, 뜬금없이 찍은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 목소리 녹음이. 하나 더 말할 것이 생겼다. 좋아하는 노래를 꼭 여쭤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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