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월문 이룰성 Jun 13. 2022

1인 가구의 끝, 2인 가구의 시작

약 7년 간의 자취생활의 끝. 가족과의 삶 시작.

 약 7년 간의 타지 생활이 끝났다. 7년 동안 남은 것은 수많은 경험, 안타깝게 앓게 된 우울증, 통장 잔고에 있는 돈, 나의 모든 짐이 들어있는 택배박스 5개가 전부였다.


 '나는 앞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끝까지 잘 살아 볼 거야'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약 7년 전의 그때가 생각난다. 기대와 설렘,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 처음 경험해보는 완전한 '독립'이었고 내 인생의 큰 '시작점'이었다. 지금은 제 1막이 끝나고 제 2막이 시작되는 인상 깊은 지점에 도달했다. 


 혼자 살아가며 겪은 무수히 많은 가치 있는 경험과 그 과정이 있었다. 나는 이 경험들을 사랑하고 아직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 

 결국 내가 스스로 정한 제 1막에서 무엇이 남았는가, 결론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다.'라는 뻔한 말이자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자 결론이다. 이런 흔한 말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와닿은 적이 단연코 없었으며 많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 스스로를 귀하게 대하지 않고 소홀하게 대하며 나보다는 주변과 남들을, 가치를 둔 어떠한 것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노력하며 살아봤다. 융통성 없게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다. 뜻하지 않게 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 벼랑 끝에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다. 검사와 상담 후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게 되었다. 여태껏 살아오며 흘려 들었던 정신과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나는 정말 목숨을 연명하며 살기 위해 간절하게 절박하게 용기 내어 발걸음을 떼었다. 


 약을 먹고 정말 놀란 것은, 효과가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 같았던 감정의 바다가 약을 먹고는 잔잔한 호수같이 변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무서운 것이, 슬픈 것을 잘 못 느끼지만 기쁜 것도 잘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러나 적응의 기간을 거쳐 시간이 지나니 웃음을 겨우 되찾았고 슬픔을 멀리하면서 기쁨을 점점 만끽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용기 내서 한 행동은 무엇이든 간에 어떤 가치가 분명히 있고 '후회'라는 것에서 멀어진다.

내가 만약 용기를 내야 할 때에 내지 못했으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못 내어 행동하지 못한 것에서 많은 후회를 하곤 한다. 후회하는 것을 최소화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가치관을 지닌 나로서는 행하고자 하는 무엇이든 간에 우선 행동하고, 겪고, 후회하는 것이 용기 내지 못해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냐고. 그렇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굳이'에 포함되는 그 부질없고 쓸데없어 보이는 경험이 귀한 삶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고, 불특정 다수 또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거나 가치를 줄 수 있는 경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남들이 아무리 '굳이'라는 말을 섞어 나한테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이제 혼자 사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유익하고 좋겠다고 생각하고, 타지 생활을 한 부산을 떠나 시골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엔 가족인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셨다. 어렸을 적 내 방과 책상, 옷장, 거닐던 골목길, 익숙한 길과 건물이 덩그러니 그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정말이지 달라진 것은 내면 속, 머릿속에 쌓인 정보와 소중한 기억과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었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자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어서 기쁨에 젖었다. 


 혼자 떨어져 살아봐야만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소중함을 깨닫고, 환경을 변화시켜 이제는 그 소중한 가족과 매일 얼굴을 보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남들이 어찌 보든 나의 행복에 확연히 가까워졌다. 앞으로 행복할 일이 넘쳐난다. 나이 스물아홉에 우울증을 앓고, 나이 서른이 되는 해에 어머니와 단 둘이 고향 집에서 같이 살게 된 청년이 기어코 살아간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이든 용기를 내어 행동해봤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세탁기의 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