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B Nov 20. 2020

순례자가 되기 위한 준비

"일 그만두고 뭐할 거야?"
"혹시 산티아고 순례길 들어봤어? 어머니랑 같이 그 길을 걸으려고."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책이나 티브이 속에서만 접하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 속의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곳이고 흔히 후기를 접할 수 있어 가깝게 느껴지지만 막상 실행은 두려운 여행이었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시간과 적지 않게 쓰일 경비, 그리고 머나먼 스페인까지 가서 걸어야 한다는 거리감은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갈 거라는 막연하던 계획도 입으로 내뱉자,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로 변했다. 불투명하던 어머니와 산티아고를 걷는 내 모습이 갑자기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주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와는 날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략적인 스케줄과 준비물을 챙겼다. 우리의 목표는 딱 한 가지였다.


웃음이 가득한 순례길을 건강하게 걷자.


순례길에서 마주치게 될 신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첫 번째 고려해야 할 상항은 늘 지고 다녀야 하는 무거운 배낭이었다. 아무리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배낭을 메고 걸을 때 오는 장점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째, 쉬고 싶은 마을에서 쉴 수 있다. 두 번째, 가방을 잃어버릴 걱정이 없다.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오는 기쁨과 만족도는 얼마나 클지! 하지만 나의 패기로 64세인 어머니를 편찮으시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로 산티아고를 다녀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순례길을 걸은 후 무릎에 무리가 와 오랫동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어머니께 순례길을 걷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하나, 어머니의 가방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

둘, 짐을 들고 이동하게 될 경우 무거운 짐은 딸이 들기.

여름은 너무 더워서 피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고,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봄에 걷기로 했다. 운이 좋다면 길가에 만연한 꽃들의 하늘하늘한 손짓과 향내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겠지. 일반적으로 약 33일 안에 순례길을 끝낸다고 가이드 북에 적혀있었다. (참고한 가이드 북은  John Brerley의 Camino de Santiago) 우리는 우리가 맞닿은 현실을 고려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연세는 64세. 그리고 딸인 나는 36세, 합이 100세. 게다가 우리 사이에는 8200km의 거리와 17시간의 시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자주 뵙지 못하는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잡고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이미 백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시간의 노예가 아니었다. 우리는 두 달이라는 기간을 잡고 그중 첫 열흘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그 후 일정은 몸 상태에 따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천천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길가에 핀 꽃의 향기를 맡으며, 새들의 지저귐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몸이 힘들면 조금 걷고, 컨디션이 좋으면 많이 걷고. 우리에게 순례길이 고행의 길이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존재는 없었다. 오로지 어머니와 딸, 우리 둘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3월 말에 파리에서 만나고 4월 중순부터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기로 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나니, 남은 건 오로지 설렘뿐이었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나에게 많은 일이 남아있었다. 어머니와 순례길 일정 외 여행의 일정을 짜고,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검토해야 했다. 또한, 집에 있는 물건과 구매해야 하는 물건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했으며, 각자 어떻게 짐을 꾸릴지에 대한 계획도 필요했다. 인터넷 검색 엔진을 통해 정보를 얻고, 산티아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정보를 얻었다. 그 당시 깨닫지 못한 나의 실수는 많은 한국인들이 산티아고에 간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점.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오로지 밴쿠버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범위를 좁게 설정했다. 아,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정말이지 큰 실수였다.


밴쿠버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산티아고 여행길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박스에 넣은 후 우체국을 통해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발송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녀는 캐리어는 우체국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박스에 들어가는 가방을 들고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당부했다. 고마운 그녀의 '꿀팁' 덕분에 우리는 순례길에 필요한 용품뿐 아니라 나머지 일정에서 입을 옷과 여행용품을 어깨에 짊어지고 이동을 했다. 생 장 피에 드 포트에 도착하여 무거운 가방을 낑낑 짊어지고 우체국에 도착하니 아뿔싸, 우체국에서 파는 박스는 크기가 너무 작아 우리의 짐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시간을 돌아다니다 간신히 발견한 식료품 점에서 박스를 얻어 우편을 붙였다.이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홀가분하게 마을을 거닐던 우리는 순간, 멈칫했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건 한국인 순례자가 캐리어를 끌고 짐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어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굳은 어머니의 표정에  난  "죄송해요..."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함께 이룬 첫 번째 성취는 첫 번째 실수로 결론 났다.



순례길을 걷기 위한 첫 번째 팁

정보의 천국, 대한민국 국민의 정보력을 절대 의심하지 말지어다!


2018년 4월 9일에 도착한 생 장 피에 드 포드. 알베르게(숙소) 입구에 달려 있는 배낭과 신발이 순례자를 위한 공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많은 책들을 보고 참고했지만 막상 순례길에 들어서니 아쉬운 물건들도 필요 없는 물건들도 많았더군요. 추후에 순례길을 걷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저희가 가져간 물건들과 준비한 과정을 공유합니다.


순례길에 들고 간 물품 목록
배낭, 침낭, 등산 양말 두 켤레, 반팔티 두 장, 반바지, 긴 레깅스 두 벌, 스포츠 브라 두 벌, 긴 팔 티셔츠, 조거 팬츠, 운동 집업 상의, 비 옷 겸 바람 마개 재킷, 얇은 면 스카프, 조리, 가벼운 스니커즈 그리고 방수되는 하이킹 슈즈. 추가로 등산스틱과 무릎보호대, 야구모자, 비상약(소화제, 소염제), 태블릿(저는 태블릿에 키보드를 부착하고 일기를 썼어요.), 디지털카메라, 핸드폰, 발가락 양말, 바셀린, 발바닥 쿠션, 바늘, 두꺼운 면실, 옷핀

각 물품에 대한 장단점과 후기(2018년 4월부터 5월까지 걸었다는 시간을 참고해주세요)

배낭: 아마존에서 방수팩이 제공되는 4만 원 정도의 배낭으로 구매했다. 다시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저렴한 제품으로 구매했으나, 좋지 않은 품질로 더 큰 손해를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업데이트될 글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온라인 구매보다 매장에 가서 사용자가 직접 메보고 몸에 맞는 것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이킹 슈즈: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해서 방수가 되는 것으로 준비한다.

비옷: 가져가기 전에 입어보고 성능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추위에 떠느라 순례길을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

모자: 스페인의 햇볕은 강하다. 얼굴이 전부 가려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추천한다.

등산스틱/ 무릎 보호대: 필수품. 걷다가 등산 스틱을 구매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옷: 가볍고 쉽게 마르는 긴 바지와 긴 상의를 준비하는 좋다. 참고로 여성분이라면 긴 요가복 레깅스와 스포츠 브라를 추천한다. 피부가 어두운 편이라 햇볕 아래서 벌겋게 타기보다는 태닝이 되는 편이다. 하지만 스페인 햇볕은 강렬하다. 덥다는 이유로 반팔을 입은 4시간 만에 화상을 입었다. 그 뒤로 스포츠 브라를 입고 그 위에 통풍이 잘 되는 집업 스포츠상의를 입고 다녔다. 원단 자체가 바람이 잘 통해 많이 덥지 않고 햇볕에서도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기 때문에 더운 경우 지퍼를 내리면 시원하고 화상을 입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벼운 운동화: 하루의 걷는 일정을 끝내고 등산화를 벗은 후 신고 다니기 좋다.

조리: 알베르게의 경우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공용이기 때문에 조리를 신고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드라이 백: 물건들을 드라이 백에 넣고 짐을 싸면 정리가 쉽고 비나 눈에 젖을 일이 없다. 특히나 비 오는 날 전자기기를 보관하기 용이하다. 저자는 걷기 시작한 첫날 눈과 비에 가방에 넣어둔 카메라가 젖었다. 바로 고장이 나서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

바셀린, 발가락 양말, 발바닥 쿠션(다이소에서 구매 가능): 아침마다 바셀린을 온 발에 바르고 발의 절반까지 오는 발가락 양말을 신은 후 발 쿠션을 끼고 나서야 등산 양말을 신었다. 이 삼 종 세트로 저자는 딱 한 번의 물집이 잡혔으나 초반에 바늘과 실로 진물을 뺀 후 콤피드를 붙여두었더니 바로 나았다. 그 후에 여행이 끝날 때까지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

콤피드(Compeed): 물집에 붙이는 밴드로 순례길에 위치한 어느 약국에서든 쉽게 구매 가능하다.

옷핀: 빨래가 마르지 않을 경우 배낭에 매달고 걸을 때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우리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