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제 백수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이 글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백수다.
'서른 중반 백수의 일지'를 처음 시작한 지 만 3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나는 이제 서른 후반이 되었고, 다시 백수의 신세가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처음 백수의 타이틀은 단 것은 나의 의지였고, 다시 달게 되었을 때는 불복할 수 없는 코로나에 의해서였다. 3년 전에는 꼭 해야 하는 일로만 느꼈던 퇴사.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경제 뒷받침과 준비 없이 퇴사를 결정한 배경은 '오만'이었다. 요즘은 '파이어족이 온다'라고 말하지만 나의 통장 잔고를 보면 좋게 말해서 서른 후반의 취업 준비생이다.
나의 경력을 되돌아보면, 10여 년 간의 회사 생활 동안 이직을 4번 했다. 이직한 횟수는 많지만 나의 변덕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2번은 당시 다니던 회사 상사의 추천으로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직장으로 옮겼고, 3번째는 밴쿠버로 이민 오게 되면서 부득이하게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에 일하던 업종인 의류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의류 업계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면접을 보고 원하던 회사에 취직했다.
남들이 보면 성공 시대에서 들어봄직한 스토리일 법도 하다. 밴쿠버에서 취직한 회사는 의류업계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회사였고, 나는 이제 막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말도 어버버한 이민자 나부랭이 었으니. 어떻게 취직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이력서를 제출하고서도 연락이 올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우선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생활비도 충당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서비스를 중요시하는 외식문화 덕에 레스토랑에서 일하면 시급은 낮아도 팁으로 벌이가 꽤 된다고 들었던 터였다. 높은 힐을 신고,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레스토랑이 즐비한 골목으로 나섰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손님을 맞이하는 호스트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서빙 경력이 없는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위치는 호스트가 유일했기에 나 역시, 내가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친절을 얼굴에 담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일을 지원하고 싶은데 혹시 매니저와 상담할 수 있을까요?"
잠시 멈칫하는 그녀의 얼굴, 손님이 아니라 실망한 눈빛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 그렇구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틀 동안 20여 개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처음에는 영어로 인사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곧 익숙해졌다. 하루 종일 얼굴이 머금고 있던 미소로 볼과 턱이 쑤셨지만, 곧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올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행여나 연락을 놓칠까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띠링~" 메일이 도착했다며 핸드폰이 울렸다. 놀랍게도 이력서를 제출한 두 의류 회사 모두에서 면접 스케줄을 잡자고 보낸 메일이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스토랑에서 20번 넘게 본 영어 면접이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 면접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놀랍게도 레스토랑에서 면접 시 물어보던 질문과 경력직 면접은 많은 부분에서 흡사했다. 그래도 가장 큰 득을 뽑자면, 수없이 진행된 영어 면접을 통해 편안해진 마음이 아니었을까.
3년 동안 별 탈 없이 근무했다. 캐나다 문화를 배우고 그들과 얽혀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를 갉아먹던 좀이 슬슬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이해진 업무는 지루했고, 소모와 소비로 돈을 벌어야 하는 패션 업계에 넌덜머리가 났다. 나는 개발 쪽에 있었기 때문에 티셔츠 하나를 개발할 때도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창출되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제 환경에도 이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무엇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나는 내가 모르는 그것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경력에 공백이 있었던 적이 없었고, 면접에서 떨어진 적도 없었다. (레스토랑 제외) 거기에서 나의 오만이 자랐다. 사퇴서를 내고 당차게 문을 박차고 나올 때도 마음만 먹으면 재취업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우선 좀 쉬자, 낯선 도시에 와서 적응하기도 전에 일부터 했으니 나에게 포상 휴가를 주자.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을 찾아보자.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데로 진행될 거라고, 실패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소모와 소비로만 이어지는 패션에 회의감이 들어서 그만두었어.'가 퇴사의 가장 큰 이유였음에도 불구하고, 패션 업계 외에는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몸서리치며 싫어하던 업계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내가 돌아오고 싶다고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력서를 내면 50% 확률로 면접을 봤지만 취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9개월 동안 이어진 실패에 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는 잔고는 통장에서 사라지는 속도의 두 배 이상의 무게로 나의 목을 조르고 어깨를 눌렀다.
새로운 걸 배워보자는 생각에 콜드 프레스 주스 가게(착즙으로 짜내는 주스. 야채, 과일, 뿌리 작물을 많이 사용한다)에서 주스를 만들고 비건 음식을 팔았다. 하지만 불규칙한 스케줄은 오히려 몸에 무리가 되었다. 일하는 시간이 다른 아르바이트 생에도 공평하게 돌아가야 했기에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없었고, 버는 금액은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생각하면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손에 마비가 오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쉬자 마비는 금방 회복되었다)
3년 전, 조금의 미련도 없이 박차고 나왔던 일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일이 어렵지도 않았으며, 수입도 아르바이트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로지 퇴사만이 내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출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 실행 그리고 결과가 없는 상태로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 결국 다시 패션업계로 돌아가 일을 하다가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실직하게 되었다.
구직 기간이 길면 길수록 경력이 단절되는 속도는 빨라진다. 이력서에 대뜸 비어있는 기간은 면접할 때 100% 질문이 되어 인터뷰이에게 돌아온다. 경력이 단절된 채 두어 달이 지나가면 타당하게 느껴졌던 퇴사 이유도 지나간 시간만큼 희미해진다. 경력이 완벽히 단절되기 전에,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백수에서 벗어나면 좋으련만.
가진 게 없으니 욕심도 없다. 백수 인생 2차.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업계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는 재취업 성공 스토리로 돌아올 수 있길 바라며!
백수가 다른 일을 시작할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계획이 있었다면 출발점이 달랐겠지. 퇴사는 본인 의지로 결정한다. 하지만 파이어족이 아닌 이상 나의 지인이 퇴사를 결정했다고 이야기하면 바지끄덩이를 잡으며 말리고 싶다. 꼭 해야 한다면 이거 하나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탄탄한 준비 없이 각오만으로 퇴사를 결정하지 말 것.
'서른 중반 백수의 일지'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서른 후반 백수의 일지'가 되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단순하다. 내년이 되면 이제 마흔, 백수의 일지로 바꿔야 하나.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 한 마디만 하고 물러가겠다.
퇴사하신 분, 퇴사를 준비하시는 분 그리고 취업준비생 모두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