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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Oct 12. 2020

코로나가 정리한 일부 떠벌이 가짜 이민자들.

유튜브, 인스타에 넘쳐나던 그들은 어디로 갔나.

한 베트남 유튜브 채널이 있다. 해당 채널은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채널의 출연진 개개인도 수십만의 구독자들이 있다. 유튜브를 그다지 보지 않던 내가 그 채널을 알게 된 것은 사실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보고 알아보니 외국에서 살면서 유튜브를 하는 것은 거의 유행 같아 보일 정도였다.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베트남, 필리핀, 호주, 캐나다는 유튜버들이 정말 많았다. 모두가 취미로, 사이드잡으로, 본업으로 유튜브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십 년 넘게 산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제 막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 혹은 그저 이제 막 체류를 시작한 장기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도 해당 국가 이야기를 내세우며 동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국가별로 활동하는 구독자 수가 많거나 컨텐츠의 질과 양이 좋은 유튜버만 꼽아도 열 손가락으로 꼽아지는 국가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다 연초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국가별로 사태가 심해진 시기가 제각각이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올 1~6월이었다. 이때 과반수 이상이 사라졌다.


특히, 실제로 해당 국가에 체류한 지 1년 전후밖에 되지 않거나 특별히 직업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유튜브가 본업 같던- 채널들의 다수가 사라지거나 5~6개월 이상 업로드가 전혀 없다. 일부는 귀국했다고 영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걸 끝으로 업로드가 없기도 하다.


해외 이민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사실 국가별로 다르기는 해도 유튜버는 이민제도상으로는 직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소득을 올리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민법상으로는 불법체류 수준의 신분으로 체류하는 경우다.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사회보험의 테두리 바깥 사람임을 의미한다. 건강/의료 보험이 없으면 당연히 병원에 가도 다 비보험이니 감기만 걸려도 10만 원이 나오고 전문의를 만나면 수십만 원은 기본인 게 보통이니 넉넉치 않은 형편이면 코로나가 겁날 수밖에 없다. 서두에 언급한 베트남 채널은 아예 회사 설립을 하고 비자와 기타 행정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이미 규모를 갖춘 케이스다. 그런 경우 회사 직원들은 이미 건강보험 가입을 했을 것은 당연하고 별도로 보험을 들었을 것이다. 한편,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며 텐츠를 올리는 사람들은 이민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살기, 생활 뭐 이런 단어들을 쓰며 현지 정보를 전한다. 하지만 이들도 보건 영역에서는 보호 받기 어려운 대상으로 주로 기간이 한정된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하는 형편이 많을 것이다.


사라진 채널들, 컨텐츠 업로드가 없어진 채널의 유튜버는 대체로 신분이 불안정하고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었고 수입이 유튜브에 의존하는(유튜브로 버는 돈이 아니라 유튜브로 인해 파생되는 수입이 많은) 경우로 보였다. 이는 사실상 이민을 했다고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민자라면 우리나라의 보편적 보험 개념의 사회보장보험은 해당 국가에서도 가입되어 있을 것이고, 개별적으로 사기업의 의료보험도 있을 것이다. 연금도 든다.


단순 장기 체류 목적의 현지 살기, 혹은 소위 말해 간을 좀 보기 위해 한 번 가본 사람들이 코로나를 견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저런 보호막을 스스로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분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단순히 직업 때문에 해외에 사는 경우라면 내가 말하는 '협의의 이민'과는 또 조금 다르다. 그런 분들이야 일자리에 문제가 생기고 수입이 없어지면 돌아오는 것이야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건 이민이라기보다는 주재원이 나가듯, 일자리로 인해 타국에 사는 것이지 삶의 터전을 통째로 영구적으로 옮기는 이민과는 다르다. 주재원이 한정된, 혹은 무기한은 아닐 파견 기간 끝나면 한국에 다시 돌아오듯, 직업으로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직업에 문제가 생기거나 변동이 생기면 돌아오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부산 지사로 갔다 서울 본사로 올 때 이사하는 거나 다름 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협의의 이민은 이게 아니다. 이민은,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삶의 터전 전체를 옮기고 동거가족이 모두 나가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직업, 수입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미 이민을 한 사람 입장에서, 이제 와서 보니 이민이 어쩌고 현지가 어쩌고 하며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민낯을 보게 된 느낌이다. 실제로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고 뿌리내릴 생각이 없이 왔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불안하고 먹고 살기 막막하니 유턴한 사람들, 그들이 얇게 전한 얄팍한 현지 이야기가, 현지 적응 스토리가 얼마나 의미가 있었겠나 싶다. 마치 잘 적응했고 이미 자리 잡았으며 여기는 살기 좋고, 다른 어디 이상으로 안전한 곳이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외환 위기도 아니고 나라가 내전에 휩싸인 것도 아닌데 1년은 고사하고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귀국했다. 사실은 안전하지 않고, 불안하며, 본인들은 언제든지 귀국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IMF 당시 환율이 3배 넘게 뛰어 한국에서 보내주던 돈으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도저히 감당 못하게 된 것과는 다르다. 관광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한편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무던히 애쓰던 일부 사람들은 실상 하루 벌어 하루 살던 형편으로 오늘 벌어 내일 쓰는 정도여서 이게 몇 개월 가니 현지 삶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이 얘기는 현지에서 최소한의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를 받는 대상도 아니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 멋지고 이국적인 곳에서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포장했던 본모습은 한두 달을 벌지 못해도 다음 달 렌트비가 없고, 병원비도 걱정되고 심지어 말도 잘 못하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멋진 영상, 사진, 행복과 편안함을 이야기하던 그들의 일상은 껍데기를 벗기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해외 취업, 주재원 파견 등과 달리 이민은 가족이 영구적으로 생의 무대를 외국으로 옮기는 것이고, 이는 어려운 일이다. 단어를 마구 혼용해 쓰면서 속사정은 감추고, 몇 줄의 쓰레기 같은 미사여구와 감성팔이 사진, 영상으로 행복한 척, 잘난 척, 아는 척하다 고작 몇 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귀국해야 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자마자 이민이 어쩌고 이 나라가 어쩌고 살기 좋네, 안전하네, 이런 사업이 유망하네 돈 많이 버네, 이래서 한국보다 낫네 떠벌리다가 - 사실 돌아보면 매 7~8년마다 오던 국제적 위기가 온 것뿐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 바로 다 접고 귀국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사람들이 가볍게 말을 해왔는지,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이, 컨텐츠가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소통이라는 단어에 진심이 담겨있다면 실패해도 실패의 경험을 나누어야 마땅하며, 잘난 척이 아니었다면 반성을 공유하야 하고, 실패가 아닌 1보 후퇴라면 그 역시도 소통을 위해 올렸을 것이다.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고 코로나 사태로 자취를 감추는 것은, 좋은 것만 올리고 행복한 척하고 잘나가는 척 하는 것만 올리고 약간의 그림자도 올리는 걸 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 무슨 소통이 있으며 경험의 공유가 있단 말인가. 경험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많고, 그런만큼 그림자의 어둠,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극복을 공유해야 진정 의미가 있다. 겉저리 소통 따위는 허세에 불과하고 그저 공유, 공감이라는 걸 내세워 유무형 이득을 얻기 위함이 전부였던 게 그들 컨텐츠의 목적인 셈이다.




뿌리를 내리러 왔다.


병이 돌든, 경제 위기가 오든 여기서 견디고 여기서 방도를 찾는다. 전쟁이나 종교적 인종적 박해, 내전에 준하는 폭동이 있지 않다면 자리를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진짜 이민을 한 사람들이고, 누군가 그들에게 배우고자 한다면, 이민 경험자에게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타국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그들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뿌리를 내렸다면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 돌아간 사람들은 이유 불문하고 뿌리내리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실패할 이민은 가지 않아야 한다. 한 달 살기나 하며 여행을 포장해서 즐기는 것은 이민이 아니다. 나무나 식물을 옮겨 심거나 분갈이를 하면 잎이 다 지고 한동안 몸살을 앓는다. 한국의 식물을 기후가 다른 타 국가에 심으면 태반 이상이 죽는다. 이민은 그런 것이다.




끝으로, 몇 달이나 고립된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고 견뎌내고 이겨내려 노력하는 이민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이 글은 직장이나 직업을 이유로 해외 생활을 하다 코로나 사태로 돌아간 분들을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빨리 판데믹이 지나고 그분들 모두 다시 원하시는 곳에서 하시던 일을 하실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고 남을 돕고자 한다면 부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극복의 모습을 전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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