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출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로 가자마자 비서인 D에게 외부 일을 시키려고 차키를 들고 문을 나섰다. 열 발자국쯤 걸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지시를 하고 다시 나서려는데 D가 내게 타이어가 주저앉았다고, 펑크가 난 것 같다 말했다. 나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플랫 타이어. 십수 년 전 한국에서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데 차 타이어가 완전히 주저앉아서 아주 천천히 끌고 나가 아파트 단지 앞 타이어 가게에서 손을 본 기억이 났다. 딱 한 번이었는데 아침에 그런 일을 겪으면 낭패다. 급한 일정이 없더라도 그런 날의 아침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포장 상태가 나쁜 길을 지나 타이어 가게에 가는 동안 저 작은 차의 가냘픈 휠이 작살날 것 같아 싫고, 그 샵에서 제대로 된 공구 없이 타이어를 자기네 방식대로 탈착하고 원인을 찾고 또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걸 듣는 걸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난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잠깐 기다리라 말하고는 다른 차에서 수리 키트를 꺼내고, 창고에서 콤프레셔를 끌고 와 D에게 플랫 타이어 수리해본 적 있냐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노.
콤프레셔에 전원을 넣고 타이어에 공기를 충분히 채운 후 그제서야 타이어를 살펴보니 나사가 하나 박힌 게 보인다. 타이어 펑크를 때운 게 대충 열 번쯤일까. 한국에서는 바이크를 타다 지방도에서 때워야 하는 일이 간혹 있었고 이곳에서는 툭하면 박히는 나사못에 타이어를 길에서, 집 차고에서 때우곤 했다.
능숙하게 나사를 제거하고 지렁이를 박고 다시 권장 압력에 맞춰 타이어 4짝의 바람을 채워 넣었다. 어느 자동차든 제조사가 권장하는 공기압이 운전석 문틀에 붙어있다. 이것을 알고 이걸 기준 삼는 정비소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이참에 공기압 맞추는 건 또 겸사겸사 괜찮은 일이다. D는 내 장비들을 보고는 타이어 가게에도 이렇게 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 건 못 봤단다. 그 가게들이 비정상이라고, 그냥 잘 봐 두고 나중에는 네가 직접 해보라고 했다.
아침부터 땅바닥에 주저앉아 타이어 빵꾸를 때우고 나니 진이 빠졌다, 아니 맥이 빠졌다. 때로 엔진오일도 차고에서 직접 갈곤 하지만, 고작 20분 정도라곤 해도 예고치 않게 터진 일을 수습하는 건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난 곧이어 마당 옆 수도꼭지 누수를 발견했고, 나는 잘 쓰지 않는 1층 화장실 변기 누수를 봤고, 그걸 고치다가 펌프가 센서가 고장 나서 24시간 돌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변기 누수로 펌프가 과열되게 돌았고 그러다가 수도꼭지도 누수가 생긴 것 같았다. 집에화장실이, 변기가 여섯 개라, 한국 아파트처럼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물 새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가정부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애들이야, 그런 거 챙기기에는 아직 어리다.
먼저 맘에 안 들던 싸구려 야외용 수도꼭지를 좋은 걸로 교체하고, 물이 새던 변기를 손보고, 펌프를 분해하고 의심되는 원인을 찾아 우선 센서부 내부 청소를 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리 반복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센서 고장으로 판단.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밤새 펌프 구동원리와 구조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직원들 둘을 시켜 이것저것 준비하게 하고 펌프 수리업체에 직원을 보내 문의하여 대안을 찾았다. 사실 고민한 이유는 이 펌프가 한국에서 구입해서 들고 온 '신일자동펌프'라 여기서는 정상적으로는 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긴 수입도 안 되고 당연히 부품도 없다. 고민해서 찾은, 대안이 될 범용 센서를 구입했고 창고에 앉아 공구를 들고 펌프를 분해, 조립하고 새 센서를 커스터마이징해서 세팅을 마쳤다.
내가 할 일, 머리를 쓸 일은 끝났고, 이제 내 대신 펌프실 세팅을 새로 하면서 펌프를 설치할 우리 기사가 내일 고치면 된다. 세팅 설계, 순서도도 다 준비해놓았고 도면에 맞게 구입해야 할 배관 부품도 다 사두었다. 세팅은 나도 할 수 있지만 파이프를 자르고 붙이고, 이어가지고 실 테이핑을 하고 누수 체크해가며 테스트하는 것은 집 구조상 서너 명이 필요하고 하루를 또 통째로 써야 하는 일이라 나는 구조도만 그려주고 배관공 손을 빌려하는 게 속 편하다. 구조도에 맞춰 작업하는지, 센서를 커스텀한 펌프가 정상 작동하는지 옆에서 잘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후진국으로 이민을 가면 한국처럼 뭐가 제대로 되는 게 없으니 혼자 다 하게 되고, 선진국에 가면 서비스란 서비스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 직접 하게 되고, 미국 같이 땅덩어리 넓은 곳에서는 주거지에 따라서는 너무 먼 길을 나가야 한다거나 시간적인 문제로, 또는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직접 하게 된다. 괜히 집집마다 창고가 있고 작업실이 있고 가가호호 공구들을 다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어디서나 이민 1세대로서는 언어적 문제도 있고, 물건과 달리 정찰제가 딱히 없는 출장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선진국일수록 인건비가 상상초월로 비싸거니와 서울처럼 동네마다 다 서비스업체가 있고 부르면 당일에 출장 나오고 하는 경우가 없다. 후진국은 반대로 돈으로 해결하려 해도 찾을 수가 없거나, 더 큰 일을 야기하기도 한다. 더러운 일이건 힘든 일이건 어지간한 것은 직접 하는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서울촌놈의 타국살이는 힘들다.
중고등학교에서 기술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군대에서도 삽질과 총질 말고 다른 것도 좀 배우는 게 가능하다면 한국 남자의 타국 살이, 이민은 좀 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나도 전기 배선도를 보면 머리가 아프다. 전기에 대해 좀 잘 안다면, 뭐든 뜯고 잇고 계산이 된다면 여기 삶이 두 배는 편할 것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기술자가 아닌 이상 한국 사람은 대체로 딱히 혼자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힘들다. 나도 조금은 그랬고. 학교에서 뭘 배웠어야지. 죄다 아파트에 살아서 할 줄 아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