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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Aug 21. 2020

동남아의 한국인

동남아 이민자의 작은 한탄이라고 해두자.

중국인들은 어디에서나 커뮤니티를 만들고 몰려 산다. 사실 대단하다. 인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중국인들, 다시 말해 화교들은 여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장사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많다. 브라질에서 한국인들도 일부 업종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중국인들, 화교들은 다방면으로 상권을 장악한다.


동남아인 이곳에서 규모가 있는 화교들은 이중 가격,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교 특별 할인이 있다. 정가에서 화교 거래처나 고객에겐 10퍼센트나 그 전후의 할인을 해주는 것이다. 별반 따지지도 않는다, 화교면 된다.. 나는 몇 년 전 한 업체 사장이 화교인 걸 우연히 알고 중국어로 인사하고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내가 한국인인 걸 알지만 바로 내게 화교 할인을 적용해주었다. 화교 3세쯤으로 보이는 그는 외모가 중국인 티가 덜 나는 관계로 화교인 걸 숨기고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난 반갑다고 중국어로 말했던 거다. 아무래도 드러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따져보고 나름 전략적으로 드러냄을 조절하는 거라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이후로도 가끔 중국어를 활용해서, 필요하면 다시 좀 더 배우고 일상적으로 말하고 듣는 환경을 조성하여 중국인이나 화교 시장도 좀 어떻게 해볼까 하지만 이미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급하거나 아쉬운 게 없어서인지 막상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지 게을러진 것이다.


이런 화교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한국인들은 화교들처럼 같은 민족이나 국적이라는 것만으로 무조건 잘해주거나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 조심하라는 말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동남아에서 이민 1세대로서의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런 것이다.


우선 젊은 한국인들은 같은 한국인끼리 돕고 살아야지 하는, 화교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마인드가 없는 것 같. 물론 연세가 있고 이미 자리 잡은 지 이삼십 년 된 분들은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지만. 이런 분들은 한인회 활동이나 한인교회도 다니고 하는데 주로 주재원으로 있다가 눌러앉거나, 여행사를 운영하거나 가이드로 오래 일하다 자리를 잡은 케이스들이다. 아무래도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


화교들은 어딜 가나 워낙 인구가 많고 옛날부터 자리 잡고 산 경우가 많다 보니 그 차이가 눈에 뜨지 않지만 한인들은 극소수만이 오래전에 자리 잡은 케이스이고 나머지는 화교들과는 환경이나 사정이 조금 차이가 있다.


특히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민자는 냉정히 말해 두어 부류로 나뉘는 것 같은데 하나는 은퇴 이민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힘들어서 동남아가 좀 만만한 것 같으니 나오는 케이스다. 춥지 않아서, 바다가 좋아서 등등 이유들이 있지만 핵심은 한국에서 경쟁에서 뒤처졌거나 소득이 낮거나 일하기가 싫은데 동남아가 싸고 만만해 보여서인 경우가 꽤 많다.


이 두 가지에 속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당연히 있다. 문제는 이 나머지의 비율이 현저히 적은데 그 모수가 되는 한국인 수 자체가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 대비해도 너무 적다는 것이다.


먼저 은퇴 이민자들은 나와 처지도 다르고 연배도 다르고 하니 편히 어울릴 대상이 아니다. 살까지는 몰라도 스무 살 차이가 나면 최소한 같은 취미에 미쳐있지 않은 이상은 아무리 해도 어울릴 일이 없다. 두 번째 케이스는 어쩌면 내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런 케이스는 사람 문제다. 학력이나 가치관 차이가 심해 대화가 되지 않거나, 자산 규모 차이가 심해 같이 뭘 하기가 어렵거나, 싱글에 욜로족이라 자녀들을 키우는 우리와는 어울릴 환경이 아닌 것이다. 솔직히 맨날 놀고 이성 찾아 파티나 찾고, 영어도 못하는데 현지어도 안 배우고 대충 되는대로 한국 90년대 하숙방 같은 데서 살며 2천 원짜리 밥 먹고 사는 20-30대와 친구가 될 만큼 내가 무던하지 않은 인간인 것이다. 대학생 때야 후배가 그냥 밥 사달라는 말만 해도 사주고, 직장에서도 선배나 연장자가 후배 챙기는 거야 일도 아닌데 나이 마흔 넘어 사회에서 만난 사이에 매번 부탁 들어주고 만나는 것은 피곤한 관계다.


한 번은 아이를 하나 키우는 어떤 부부가 같이 식사를 하자고 몇 번 이야기를 하길래 계속 거절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싶어 그럼 주말에 애들 데리고 같이 좀 놀게 하고 식사도 하자 하였다. 마침 그 집은 차가 없을 때라 우리 차 두 대로 우리 부부가 각기 운전하여 두 가족을 태우고 놀러 다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그 식당은 한 사람 당 대충 뭘 시켜 먹어도, 인당 메인 메뉴 하나씩 시키고 쉐어해서 먹을 메뉴 하나 더 시키고 음료 시켜도 인당 1만 원 정도 이내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고 우리 가족은 종종 들러서 가볍게 먹곤 했던 곳이다. 사실 젊은 가족이 낸다는 생각에 그날의 동선 상에서도 제법 저렴한 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아,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았는데 둘이 계산서를 보더니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 하는 거다. 그리고는 자기 식구 셋이 먹은 돈을 낸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지..... 하는 생각이 들은 동시에 그냥 우리 가족은 우리가 계산하고 바로 데려다주고 헤어졌다. 그 전 코스도 다 우리가 계산했는데, 식사 한 번 같이 하자고 그렇게 말해놓고 인당 1만 원이 많다고 더치페이를 하는데 어이가 땅에 떨어졌다. 이후로는 얼굴을 보지 않는다.  


인당 1만 원 정도가 안 나오는 식당에서 밥 먹는 게 부담스러운 가족이라는 것도 편히 어울리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까짓 밥값이야 나이 좀 더 먹은 우리가 내는 거 몇 번이고 낼 수 있다. 그렇지만 난 식사 같이 하자, 같이 한 번 놀자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제안을 한 사람이 어느 정도는 내겠다는 생각이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미쳤다고 하루 종일 차 두 대를 끌고 모시고 다니면서 놀아준 게 아니고 여기저기 구경시켜준 게 아니다. 그렇지만 밥 같이 먹자던 그 어린 부부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냥 하루 잘 놀았다고 끝났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겪으면 속사정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서울 살 때 같으면 내 생활 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해외에 살다 보면 전혀 백그라운드가 다르고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른데 한국인이라는 걸로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때 반갑다고 만나다가는 학을 띄곤 한다.


얼마 전에는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자기가 사는 나라의 정보와 이야기들을 올리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가 질겁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유명하진 않아도 구독자가 만 명이 넘고 가끔 추천 영상이 떠서 보곤 했는데 현지 주택과 부동산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자기 아내를 계속 '현지처'라고 부르는 것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현지의 처를 줄여서 말하려고 저러나, 아니면 실수인가. 그런데 10분이 훌쩍 넘는 영상에서 내내 '현지처가 있으시면 명의를~' '현지처가 있으시면 구입을~'이라고 셀 수도 없이 말했다. 아내가 지나가다 보더니 저 사람 미쳤냐고...... 영상을 끄고 덧글을 보니 역시나 현지처에 대해 지적하는 글들이 많았고 그 유튜버는 자기는 현지처라는 말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음,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어울릴 수는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동남아에서는 현지처를 따로 둔 한국인을 보거나 건너 건너 알게 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기에 더 그러하다.


아이들을 봐도 그렇다. 버릇없는 애들이 왜 그리 많은지. 한국에서 같은 반 친구들네랑 만나면 그다지 심하게 애들이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 나도 아이들 키우는 부모이니 우리 애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어린 또래의 아이들은 대체로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본다 - 여기서는 부모에게 소리 지르고 밥 먹다가 젓가락 탁탁 식탁에 때리면서 '아이 씨'하면서 짜증내고,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초등학교 입학한 애가 아무 때나 엄마 엄마하고 부르고 옷 잡아당기고... 모르겠다. 우리 애들은 안 그랬기 때문에 그러는 아이도 이해가 안 가고 그렇게 키운 그 부모들도 이해가 안 간다. 가끔 대기업 주재원들을 보면 분수 넘치는 대우 속에서 근무를 해서 그런지 주제 파악 못하고 잘난 척만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회사 명함이나 이름이 자기 계급인 것이다. 대리는 물론 경력이 몇 년 되지도 않는 사원 나부랭이만 되어도 관리자 노릇을 하니 그 가족들은 현지인들을 하인 부리듯 하고, 애들은 영어를 해도 please 하나 붙일 줄 모른다. 한국에 가면 강남에서 전세도 못 살 사람들이 회사에서 해주는 집에, 차에, 기사에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며 주제를 잊고 거만하게 군다. 차포 떼고 계급장 떼고 맨몸으로 사회에 나와본 적이 없으니 동남아에선 회사 믿고 대장놀이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도대체 동남아에 적당히 만날만한 부류의 내 나이 또래쯤 되는 한국인 가정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사실 굉장히 자주, 많이 했다. 너무 산만하고 기본 예의가 없는 한국 아이들이 많다.


누구나 그렇듯 나와 나이도 적당히 비슷해야 어쨌든 말이 잘 통할 것인데, 그 안에서도 가족 구성이 너무 달라도 어울리기 힘들고, 자산이나 소득과 소비 수준이 너무 달라도 식사 한 번 편하게 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한인들의 인구가 많다면야 비율이 적어도 적당히 만날 일이 생길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상대해본 한인들과의 경험을 기반으로 대하게 되는 태도가 정해지게 되는 것이고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같은 한국인이라고 잘해주게 되는 게 아니라 근본이 어떤 사람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니 거리를 두고 보자는 식이 되어버린다.


이런 면에서는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의 영어권 선진국 대도시가 편하다. 주재원들도 많고 유학생부터 살던 사람들, 비슷한 환경의 이민자도 많으니 나와 비슷한 사람의 비율이 적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만날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외국 이민 생활을 올리는 유튜버의 영상들을 나라별로 보다 보면 - 각 국가별로 이민자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제법 공감도 많이 되고 재미있다 - 안타깝게도 동남아 이민자들의 생활수준이 낮은 것을 인정하게 된다. 영상 속 보이는 것들, 소비 수준이나 영상의 퀄리티가 아니라 전하는 이야기, 말투,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그렇다. 동남아의 개도국들이 계속 발전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나면 그 차이는 줄어들겠지만 그런 모습들이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이민자로서 약간 씁쓸한 일이다. 갈수록 한국인 인구가 줄어든다고 볼 때 나의 바람은 바람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한국인 친구 만나러 이민 온 건 아니니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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