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군대 보내자'에 대한 솔직한 생각
군필자로서 딸, 아들 둘 다 키우는 아빠의 생각.
나는 군필자이고 10대인 딸과 아들이 있다.
나는 육군 병장 때까지도 따귀 맞고 병역을 수행했다. 소위 꼬인 군번이라 부대 내 서열이 병장을 달았을 때 정확히 중간이었다. 병장인데 아래 반, 위로 반이었다. 병장 진급을 앞둔 달에 분대장을 달았을 때 고참이 후임보다 조금 더 많았다. 상병 때까지는 정말이지 줄창 맞았다. 사나흘이 멀다 하고 맞았다. 심하게 맞을 때는 지하실에서 밤새도록 맞았다. 한 번은 밤 새 맞다가 어느새 아침 점호 시간이 돼서 맞다가 나간 적도 있다. 농담이나 과장 같지만 아니고, 2000년대 이후 얘기로, 나만 맞은 게 아니라 동기들은 물론 모든 우리 부대 장병들이 모두 다 그런 폭력 속에 있었다. 몸에 멍이 들거나 원산폭격에 짖이겨진 머리가 빠지는 일은 일상이었다. 순수 폭행으로 영창 간 부대 장병은 셀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지금 내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다. 아이들에게도 이미 말한 바 있다. 세월은 변하고, 시대도 변하며, 사람도 변한다. 물론 여전히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는 다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견디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솔직하게는, 안 갈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면 굳이 스스로 자원입대하라고는 안 하겠다는 정도다.
뭐, 이쯤에서 서두를 마치고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여자들도 군대 보내자는 말은 좀 문제가 있다. 남자라고 다 똑같은 군생활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난 병역 의무, 국방의 의무를 여성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를 남성과 동일하게 보내자는 건 아니다. 남성들도 모두가 군대를 감으로써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국방의 의무든 병역이든, 실제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한다. 아주 평범하게 군대 가는 사람도 있지만 출퇴근하며 공무 수행을 돕는 인력도 있고, 군 병원에서 의료를 돕는 인력도,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다. 기간도 그에 따라 제각각이다. 공통적인 것은 아마 기초 군사훈련 정도일 것이다.
기초 군사훈련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받아봄직하다. 단순히 사격만 해도 다른 나라는 돈 내고 사격장에 가는 걸 공짜로 다양한 총기를 사용해볼 수 있다. 수류탄은 보너스다. 우리나라 같은 분단 국가, 휴전국가에 성인이라면 누구나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내 아내가 군사훈련을 받았을 때와 아닐 때 비상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다를 수밖에 없다. 미얀마 국민 중 성인남녀가 모두 군사훈련을 받았다면 작금의 사태는 다른 양태를 띌 것이다. 이거 당연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민주화에도 이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 보는 건 내 착각일 수 있겠지만 미얀마를 두고 생각하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내 기억에 훈련소 생활은 힘들었던 게 없다. 힘든 건, 자대 배치 후에서의 선후임간의 문제였지 군대 훈련이 아니었다.
군대 역시 생각보다 많은 비전투원이 있다. 복지단이 그러하고 복지단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호텔과 콘도, 휴양시설이 그러하며, 각급 부대 매점이 그러하고 부대 내 목욕탕이나 이발소가 그렇다. 각 부대는 행정병이 필요하고, 운전병이 필요하며 질서유지를 하는 인력도 필요하다. 군대는 작은 일반 사회이다. 그저 계급이 있고 독특한 규율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비전투병으로서 여성이 복무할만한 일은 무한히 많고, 여성이 복무할 부대 환경 조성 문제 역시 근거리 지역 우선으로 출퇴근제를 실시하거나 후방 지역의 보급부대 우선 배치로 해결할 수도 있다.
나는 해외 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여성은 물론 동북아 여성들이 유달리 한정된 신체운동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 필라테스, 수영, 조깅, 자전거, 발레 정도가 보통의 여성들이 즐기는 운동으로 대부분 실내 운동 또는 특정 운동에 한정된다.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 서양이나 동남아 여성들은 배구, 농구, 축구 등의 구기운동이나 온몸을 사용하는 야외운동을 즐기는 여성인구가 유달리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실 내 딸도 그러하다. 소위 보기에 예쁜 운동을 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직장에서 사회생활하며 남녀 역할을 구분하게 하는 것은 일부 한심한 남성우월주의자들만이 아니다. 분명 여성들 스스로도, 제도적으로도 자초하는 감이 있다.
여성들이 군대에서 남성들과 동일하게 부대 내에서 숙박하고 훈련받고 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 딸도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고, 남성들과 동일하게 국방의 의무, 병역을 수행하고 당당하게 남녀평등을 외칠 자격을 획득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방법을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굳이 급진적일 이유가 없다. 사회봉사, 비전투병, 보급이나 지원인력, 경찰이나 소방서 근무 등 다양한 방법론이 있고 신체검사 요건을 조정하여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거나 구분하여 배치하는 것도 더 연구해본다면 더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남성은 병역으로 20대 대략 평균 2년을 소비한다.(병역에 따라 기간은 제각각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비록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나 여성들과 비교해서 그 자체가 평등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녀평등이 당연한 가치를 갖는 시대다.
남녀 갈등의 연장선에서 여성의 군 복무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이게 하는 일체의 선동은 반대한다. 선거에 이용하는 것도 반대한다. 이건 보편적인 가치에 관한 이야기다.
그저 남녀평등의 가치가 중요하고 실현되어야 하는 시대적 정신에 현재 병역의 의무를 남성들만 지는 것은 불합리하며, 현실적으로 남성들 역시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여성도 충분히 병역을 이행할 수 있고, 이게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모두가 병역을 수행하며 5년만 지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만하다 생각한다.
끝으로 노파심에 곁들이자면 우리 아이들 역시 국적이 한국인인 이상, 결국 징병제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국방의 의무를 질 것이고 나는 그것을 회피하게 도울 생각은 없다. 나처럼 구타를 당한다면 슬프겠으나 그럴 확률은 현저히 낮다 생각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견뎌내길 바란다. 이것은 딸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난 아이들을 나약하게 키우고 있지 않다.
모든 남성이 똑같이 군대 가서 똑같이 지내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여성들이나 일부 남성들이 잘 모르거나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발병, 취사병, 행정병, 운전병 같은 평범하지만 전투병과가 아닌 병과도 있고, 경찰서와 소방서 등에서 일하는 인력도 있고, 사회봉사를 하거나 일반 회사에서 병역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국방부는 관련 통계를 공표할 필요가 있다.
여성도 기초 군사훈련만을 마치고 그저 같은 기간을 그런 식으로 복무하게 하면, 그런 곳에 굳이 신체 건강한 남성을 비전투병과에 보낼 이유가 없으니 실제 전투훈련을 하는 전투병과에 더 많은 건강한 청년들이 임할 수 있다. 국방력은 강화될 것이다.
끝으로 나는 일병 때 병과가 바뀌었는데 다른 병과로 변경된 후 총을 쏴본 적이 없다. 부대 내에 아예 총기가 없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총소리도 못 들어봤다. 난 이후로는 유격훈련, 혹한기 훈련도 안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 전이나 후나 그저 '일반병'이었다. 이런 군대도 있다, 아니 사실 무척 많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이런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거나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남성들이 일반병만큼 매우 많다.
군 관계자로 일하는 여자 군무원들도 엄청나게 많다. 군무원들이 하는 일의 일부는 여성 징병자들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여성이 병역을 이행하지 못할 이유도, 배제할 이유나 근거도 없다. 난 이제 꼰대라 그런지 여성이 전방이나 일선 부대에서 일반 보병이나 포병 등으로 근무하는 것은 좀 어렵다 생각하고 현실적으로도 여성들의 복무 환경을 만들기도 힘들다 생각하지만 이런 병역은, 이미 남성들도 하는 비전투병으로서의 병역은 충분히 이행할 수 있고 내 딸이 이런 식의 병역을 행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썩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족 1. 솔직히 나나 아내 모두 아들과 딸을 동시에 키우면서 볼 때 우리나라가 남녀평등을 이야기하기엔 상당히 불공평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쪽이 아닌 이쪽저쪽으로.
사족 2. 군대를 나오고 해외에 나오면 상당히 많은 생존 스킬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LA 한인 폭동 때 한인 남자들이 건물 옥상에 진지 구축하고 방어 기지를 만들고 보초 서며 지켰다는 건 뉴스 영상과 유튜브만 봐도 알 수 있다. 총 쏘는 거, 군필자면 사실 다 별 거 아니다. 방어능력은 기초 군사훈련으로도 어느 정도 일반인 이상의 레벨을 습득할 수 있다. 이거, 돈 주고도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