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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7. 2023

선생님 탓이네요

#6. 숨은 재미 찾기 - 노잼 필라테스, 어느 날 유잼이 되다

앗! 필라테스 신발보다 싸다! 한 번에 몇 만원 하는 기구 필라테스 수업, 우리 동네 구립 체육센터에서는 한 달 15만원에 들을 수 있다. 실업급여 받는 사람도 이 정도면 낼 만하다. 따지자면 우리 동네가 아니라 옆 동네고, 걸어서 25분 걸리지만 그게 중요한가. 이렇게 싼데. 벌써 몇 달째 재등록 중이다.


체육센터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그 오르막보다 힘든 게 따로 있다. 선생님의 한숨. 신전 자세는 대체 무엇이며 척추는 어떻게 늘리라는 건지, 내 평생 운동과 연이 없었는데 알 리가 있나. 나름 열심히 따라한 나의 동작들은 선생님 눈에 차는 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시겠어요?” 듣는 건 영 씁쓸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구구단 못 외워서 혼나던 게 새삼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바뀌었다. 나이는 나보다 우리 엄마 또래에 가까울까, 반짝이는 눈에 단단한 코어 근육이 인상적인 분이었다. 선생님이 바뀌니 수업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강생들의 자세를 잡아주면서 “맞아요!”, “그거지!”, “자세 너무 좋다!” 느낌표 가득 담아 칭찬해 주시는데, 수업시간 50분 동안 시계를 보지 않을 만큼 재밌었다. 알고 보니 새로운 선생님은 10년 훌쩍 넘은 경력에 국제강사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이제 보니 필라테스가 재미없던 건 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 한숨 들을 때마다 쌓였던 응어리가 쑥 내려갔다. 무언가 배울 때 선생님 탓을 하는 건 아마도 처음이다.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니까 잘 따라야지, 그 생각으로 많은 선생님들을 참아내 왔다. 초등학생 손등을 때리던 피아노 선생님이 사랑의 매를 드는 줄 알았고, 수업시간에 북한 공기가 좋다며 딴소리를 하던 과학 선생님이 학생들 잠 깨우려고 노력 중인 줄 알았다. 지금 보니 가르치는 능력이 모자란 사람들일 뿐이었다.


선생님 탓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니 이것저것 흥미진진해졌다. 잘하지 못해서 싫어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싶어졌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남 탓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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