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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9. 2023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나이도.

책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를 읽고

30대가 되고부터 묵직한 것들을 신경 쓰게 된다. 부모님 용돈 드리기, 주 4회 운동하기, 혈관 건강 챙기기 같은. 모두 '나이 먹기'에 대한 것들이다.


요즘은 걱정이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보다 두 배쯤 나이가 많아지면 어떠려나. 회사를 다니기도 어려울 텐데 돈은 충분히 있을까. 그때도 만나서 책 얘기 나눌 친구가 있을까. 아니 책을 사도 제대로 읽을 만큼 정정할까.


어른들이 쓴 책을 찾아 읽는 것도 그래서다. '나이 먹음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멋진 선생님들도 계시잖아' 하면서.


이번에 읽은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도 그중 한 권이다. 아마 우리 동년배들이라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들어보았을 거다. 이건 그 책의 주인공 모리 선생님이 직접 쓴 책이다. 루게릭병 발병 전, 81세 때 이미 나이 먹음에 대한 원고를 써두었는데 그게 이번에 출간되었다.


늙는 것의 최고 장점은 뒤에서 흘끔대며 지시하는 상사가 없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스스로 알아서 시간을 관리한다. 새 도전에 직면하면 외적인 상과 벌은 전보다 미미하고 스스로 준 상벌만 남는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욕망과 열망으로 삶을 가꾸겠다고 선택하면 노인을 다 끝난 무용지물로 취급하는 노인 차별주의에서 해방되고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창의적인 노화에 강제 은퇴란 없다.’

-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중



모리 선생님이 이 책을 쓴 시기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다. 30년도 전의 이야기라 지금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전혀. 늙는다는 것의 긍정적인 면을 살피고, 사람 간의 온기를 주고받을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지금도 유효한 것들이다. 저자가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한 시기에 살았다면 분명 인플루언서가 되었을 거다.


이 나이까지 살았으니 우리는 복이 많다. 노년기는 재고하는 시기이다. 낡은 망각들을 버리고 새로운 은유를 얻는 시기이다. 바라건대 그것이 은유임을 더 지각하게 되기를.

-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중


책에는 저자 본인뿐 아닌, 다양한 어른들이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렸다. 노년기에 대한 마냥 긍정적인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아픈 아내를 위해 ‘내 연금이면 혼자서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이 편지는 읽고 나서 버려라’ 유서를 남기고 삶을 마무리한 사례는 한숨 없이 읽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어서 저자의 말에, 노년기를 보낼 지혜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어려움이 있는 시기에도 긍정을 놓지 않을 수 있다니.


+ 이 책의 번역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공경희 번역가가 그대로 맡았다. 책 마지막에 번역가의 짧은 글이 있는데 참 좋았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노인이 본 노년의 풍경. 이 글을 통해 인간 누구나 겪을 그 시기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보내도록 패러다임을 바꿔보고자 한 모리의 열망이, 사람들을 향해 그가 내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글을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모리 교수의 제자이자 독자가 되어, 내가 '터널'로 느끼는 이 시공간을 힘내어 지내보자고 마음먹었다. 늙어가는 일에 관심 있거나 그것이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낀다면, 연로한 부모님을 보면서 마음을 앓는다면, 노년으로 살아갈 나날이 암울하게 느껴진다면 모리가 나누고 싶었던 지혜에 마음을 풀어놓아도 좋겠다.

- 책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번역가의 말 중


*출판사에서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았지만, 일체의 수정 없이 솔직히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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