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종종 최악을 상상한다. ‘여행가는 날 비가 오면 어쩌지’ 부터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까지. 걱정을 사서 하는 건 물론, 확률이 희박한 일까지 마음속에 대응책을 만들어 둔다. 그래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고.
죽으라는 법이라니. 맞다. 제일 무섭고 걱정되는 건 죽음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뿐,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런데 죽음은 도무지 준비를 할 수가 없다. 비 오는 여행을 즐긴 사람, 해고를 성장의 기회로 만든 사람이 쓴 글은 당장 브런치만 해도 많다.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새로운 삶을 살아볼 좋은 기회였다고. 하지만 죽음을 겪은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말이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가장 무섭다. 나도 언젠가 죽게 될 텐데, 죽음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때 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서 종종 죽음을 다룬 책을 읽는다. 답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고 싶어서다. 유명 의사의 연명 치료에 대한 견해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례 절차까지 이것저것 살피곤 했다. 그래서 이번 <죽음이 물었다> 서평 요청을 받았을 때에도 기뻤지만 걱정이 앞섰다. 죽음을 앞세운 흔한 감성 에세이면 어떡하나. 그래서 책을 읽고 나와 맞지 않으면 소개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다행히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죽음이 물었다>의 저자 아나 클라우디아는 20년 넘게 일해 온 브라질 의사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죽음 앞에 의연한 건 아니었다. 절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할머니와의 약속, 의대 진학,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던 자신의 나약함, 계속되던 심리 치료, 마침내 자신의 삶을 보살핀 덕에 죽음을 직면하게 되었다는 전환점까지. 저자는 자신이 가졌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솔직히 드러내며 독자들의 마음을 연다.
의사들을 비롯한 의료인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점은, 그들의 실패가 환자의 죽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의사의 실패는 환자의 죽음이 아니라 환자가 잘 살지 못하는 것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암에서 치유된 후 너무도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건강은 우리가 삶에서 의미 있는 체험들을 즐길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주는데, 환자들에게 그걸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병을 치유하고 통제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사가 환자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죽음이 물었다> 중
저자는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살펴 온 수많은 삶과 죽음이 그 근거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저자의 태도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해온 의사지만, 죽음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무작정 들이밀지 않아서 좋았다. 브라질은 2010년 기준 92%의 국민이 종교를 가진 곳이다. 삶의 방식도, 의료 시스템도 우리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을 고려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그다지 없었다.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를 보면, 길을 잃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멋진 대사가 나온다. “발견될 수 없는 곳을 발견하기 위해선 먼저 길을 잃어야 하지. 그게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곳을 알겠지.” 길을 잃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죽어가는 이의 곁을 지킨다는 것은 길 잃은 심정을 여러 번 느끼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도망칠 일이 아니다.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삶이라는 경이로운 곳에 이르는 난생처음 가보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죽음이 물었다> 중
죽음에 대한 나의 걱정은 여전하다. 그 어떤 책도 죽음을 무섭지 않게 만들진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걱정과 두려움을 동력 삼아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유의미한 제안을 건넨다.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 즐거운 파티보다는 내년을 위한 준비 시간을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았지만, 일체의 수정 없이 솔직히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