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Jun 30. 2024

나만의 작고 소중한 건 너무 작아서

정말 여기가 맞아? 싶던, 간판도 잘 보이지 않던 곳. 망설이다 계단을 올라 철문을 열면 노란 불빛과 음악이 새어나던 곳. 최측근은 제일 싼 맥주를 시키고, 나는 그 옆에서 분다버그를 홀짝이던 곳. 사는 건 좋다가도 나쁘기 다반사였고 회사는 대개 때려치고 싶은 곳이었기에 대화가 끝나지 않던 곳. 그러다 어느 순간 말을 멈출 만큼 멋진 음악이 나오던 곳. 맘속으로 나 혼자 아지트 삼았던 곳.


그때 음악 들으면서 술이나 더 시킬 걸. 작고 소중한 그 곳은 이제 지도에서 사라졌다.



잘난 것 없는 내게도 자랑거리 하나가 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는 것. 그래 봐야 대단한 인기를 얻은 적도, 책을 낸 적도 없다. 제멋대로 혼자 쓰는 글이라 울퉁불퉁, 그래도 좋아하는 걸 써서 얼굴 모를 친구들에게 내미는 건 나만의 작고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6년 전부터 꾸준히 에세이 뉴스레터를 보냈다. 꾸준히는 아닌가, 매주 보내던 이메일인데 올해는 딱 세 통 썼으니까.


작고 소중한 즐거움,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아져서 결국 잃어버렸다. 무료 뉴스레터인데도 구독자 수는 늘 제자리. 매주 마감에 허덕이며 완성한 것치곤 재밌게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구독료를 받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인기도 훨씬 많고. 몰래 하던 시샘이 점점 커져서 이것저것 질려버렸다. 이럴 거면 혼자 일기나 쓰는 게 낫겠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2월. 날씨 좋아서 산책

3월. 점심에 먹은 제육 맛있었다.

4월. 오랜만에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서 일기를 써 본다.


몇 달 지나니 일기가 이상해졌다. 필요도 없는 문장부호가 찍히고, 은근슬쩍 문장이 꾸며졌다. 무언가 쓰고 싶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보다. 이런 식이면 다시 에세이를 글을 쓰는 게 낫겠다. 그렇지만 예전 방식대로면 제풀에 나가떨어질 텐데 어쩌나. 세상에 볼거리가 많은데 감히 돈을 받진 못하겠고, 글을 공개하는 방식을 어찌해보기로 했다.



내 글이 누군가의 작고 소중한 즐거움이길 바랐다. 그리 대중적인 글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 몇 명 만나면 그걸로 충분하다. 간판도 달지 않고, 불빛도 음악도 새어나가지 않게 이메일로 글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도 일주일에 한 번 메일을 놓치면 보이지도 않는 글인데 잃어버렸을 거다. 더 자주, 더 많이 보여야 했다.


몇 년 전에 만들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복구했다. 글을 썼다는 소식을 올리다 그만둔 계정이었는데 80명 남짓 팔로워가 있었다. 내 소식을 듣고 싶어한 분들이 있었던 거다. 소심하게 문을 열었다 머쓱해서 몰래 닫아버렸을 때도.


저 글 써요! 모르셨죠? 놀러오세요! 오가는 사람 많은 인스타 스토리에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대부분은 슬쩍 흘겨보고 스크롤을 바삐 올린다. 관종이 된 스스로를 언팔하고 싶지만 부끄러움을 미뤄두고 있다. 내 글을 작고 소중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많아지길, 내 글이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은 커지길 바라면서.



(참고) 사실, 글에서 이야기한 곳은 유명한데다/ 오래 운영되어 온/ 인기 있는 바였어요. 어딘지 알아챈 분 계시다면 오해 않으시도록 덧붙입니다. 사장님 다시 멋진 공간 열어주시면 좋겠어요!


(참고2) 인스타그램 계정은 여기! 잘 부탁드립니다 > @summer_unofficial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사랑하는 건 창밖의 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