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경력이 없는 9년차 실무자. 스타트업에선 드문 커리어다. 포트폴리오에 실무 경력이 많은 걸 강조했지만, 이걸 살펴보는 어느 팀장은 나보다 연차가 낮을지도 모른다. 5년차, 길어도 7년차까지를 찾는 채용공고가 대부분이라 우수수 서류탈락은 그러려니 한다. 그러다 면접 보자는 회사가 있으면 참 반가운데, 그곳이 문제의 A사였다.
“사전과제 하신 거 봤는데, 내용은 둘째치고 배포 전략에 대해서는 안 적으셨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하시죠?”
“저도 그쪽 업계에서 일했었는데, 얘기하시는 걸 보니 고객 이해를 완전히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지원자분을 질책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이 있는 건지 알고 싶은 거니까 방어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우리 분명 초면인데, A사 팀장은 내 어디가 싫었을까. 모든 질문이 ‘네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보자’는 식이었다. 날선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진작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나. 머리로는 그 사람이 이상한 걸 알면서 마음으로는 내 잘못이 뭐가 있나 헤아려보게 된다. 면접 자리가 오랜만이라 긴장한 모습을 준비가 모자라다고 판단한 걸까.
갈까 말까, B사 면접을 앞두고 고민한 것도 A사의 기억 때문이었다. 규모가 큰 회사인데 압박 면접이 더 심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포기하자니 A사 팀장에게 지는 기분이었다. 떨떠름한 발걸음으로 결국은 B사 사옥에 도착했다. 이상한 말 하기만 해 봐, 주먹을 꾹 쥐면서.
“회사 웹툰 작업이 재밌던데, 제작은 대행사에 맡기신 건가요? 직접 그리셨다고요? 대단한데요.”
“다니던 회사에서 즐겁게 일하신 것 같은데, 그만둔 이유가 있으신가요?”
“마케팅 전략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희 회사는 어떤 전략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저희도 고민 중이라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B사 면접은 다른 의미로 어려운 자리였다.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이렇게 열심히 읽어보셨을 줄이야. 하하호호 대화 속, 어느새 약점을 내보이게 될 예리한 질문이 많았다. 내가 회사에 대해 아는 것보다 팀장이 나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아서 미안했다. 면접준비에 소홀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런 좋은 팀장이 있는 회사인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알아볼 걸.
A사와 B사. 두 면접을 나란히 두었더니 A사 팀장이 참 바보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나를 이겨먹고 싶었다면 B사 팀장처럼 대했어야지. 그랬으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느꼈을 텐데. 내 모자람을 따뜻하게 알려 줬다며 고마워했을 텐데.
언젠가 나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누군가를 이겨먹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야겠지만 세상 일 모르는 거니까. 그때가 오면 지난 면접을 기억할 것이다. 상대를 내려다보는 대신 눈을 맞추며 B사 팀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 면접 준비를 잘해서 함께 일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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