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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Aug 01. 2021

오늘, 낯선 카페 그리고 글쓰기

검은 참게 하나가 모래성 첨탑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중이다.

 마지막 글을 쓴 지 5개월이 지났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반가운 사람들에게 반년은 진한 낮잠 같은 시간이겠지만. 매일 아침과 밤 사이, 브런치를 열어 보았다가 쓸어 넘긴 반년은 눈 뜬 새벽 같다. 지난 두 개의 계절, 그중 대부분의 날은 누구도 내 글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나 가끔 누군가는 긴-새벽의 시간 동안 내 몇 년의 행적을 단숨에 훑고 사라지기도 했다. 0-64-7-0. 이른 아침, 알람을 끄고 무심코 열어본 화면의 기록.


 회사를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그 숫자의 높낮이를 떠올렸다. 내가 쓴 과거의 행적은 글귀로 태어나 영문도 모른 채 고고한 시간을 버티는 중이라고. 그리고 나와 누군가는 함께 그 작은 생명체를 응시하며 해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난 반년의 내 생활은 이렇다.




 2월의 마지막 일기에 스스로 내뱉은 말은, 이젠 결심으로 굳어졌다. 내년에 꼭 다른 팀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이미 몇 차례 면담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냈다. 그럼에도 막상 결정할 때가 다가오니 심란해진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지긋지긋한 업무와 함께, 그동안의 인정과 혜택도 사라질 테니까. 그럼에도 다른 곳을 간다면, 긴 회사생활의 여정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다.




 3월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 클럽하우스에서 MBTI방이 유행했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INTP방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하루 동안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고, 나와 참 비슷한 구석이 있는 여자애와 지금까지 135일이 넘게 사귀는 중이다. 여자 친구는 만약 소개팅으로 서로를 만났다면 참 어색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가끔 같은 말을 내뱉고, 같은 생각을 했다는데 놀라곤 한다. 그리고 우린 수영을 못하고 운전면허가 없다.



 

 4월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늘 해오던 주제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늘 탐구하던 대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늘 떠오르던 생각들이 잘 엮여 누구든 생각할 수 있지만-새로운 것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팀을 떠나겠다는 의지가 줄어들면서도, 동시에 지긋한 업무들이 일으키는 노이로제에 다시 떠날 결심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확고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잃을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모양이다.




 5월 즈음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하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연희동의 중식당을 거의 반쯤 돌아다녔고, 매번 보드게임 카페에 끌려가 패배를 당하는 루틴도 갖추어졌다. (20연패를 할 때 즈음엔 마일리지 적립을 하기 시작했다.) 와인가게에서 시큼한 오렌지 와인을 사 와 맛을 음미해보고, 손목을 붙잡힌 채 결제한 헬스 PT, 그리고 개인 필라테스 강습, 샐러드 식단, 그리고 택시를 타고 가로지르는 한강의 풍경 이런 것들이 요새의 일상이 되었다.




 6월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제주도를 떠났다. 스물일곱 살 때 혼자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 면허가 없는 나는 버스를 타고 늦은 밤까지 '지금 이 순간' 노래를 들으며 제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지쳐 호텔로 돌아오곤 했다. 따가운 얼굴에 뒤늦은 선크림을 발랐었다. 반면 지금. 여전히 면허가 없는 둘이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여러 식당을 찾아갔으며 해변가에 몸을 담그고 모래성을 짓고 양산을 쓴 채 돌아왔다. 분명 혼자와 둘은 다른 면이 있다.




 7월, 글쓰기를 멈춘 지 5개월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그리고 더 풍요로운 주말을 보내는 중이지만, 마음 한 구석, 빈 해변가의 파도가 느껴졌다.


 곧 검게 변할 청보라 색 하늘 아래, 네온사인 같은 자줏빛 석양이 옅어 든다. 긴-해변에는 고딕풍의 검은 모래성이 파도에 물러지는 중이다. 성곽을 순찰하던 조약돌만 한 참게 하나가 거세지는 파도를 피해 첨탑에 올라섰다. 그리고 어둑해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중이다.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알 소리. 그리고 해수면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참게는 가라앉는 모래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다시 글을 쓰겠다 마음먹었다. 이곳은 낯선 연희동의 카페. 한동안 켜지 않은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를 열였다. 키보드의 촉감이 낯설다. 한/영 버튼마저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 글을 훑어보았지만, 이어지는 문맥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음 그대로를 털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상념이 들어차고, 일상의 모든 것들이 멀어진다. 카페에 무작위로 흐르는 배경음악은 글을 쓰는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하고, 그 위로 건반을 눌러 보듯 문장 하나하나를 나긋이 읊어보며 지우고 다듬고, 그리고 다시 읽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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