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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쏭 Nov 05. 2024

마음이 동해야 산다.

스토리의 힘

잠시 눈을 감고 출근길 지하철을 떠올려 보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여유로운 자리와 쾌적한 공기, 편안한 승차감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빠르게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서서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날 것이다. 나는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까지 출퇴근을 한다. 물론 2호선이나 4호선 지옥철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늘 탈 때마다 서울-경기의 높은 인구밀도를 체감한다.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통근 버스나 자차 출근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당연한 이 뚜벅이 생활이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다. 물론 처음에는 이 뚜벅이의 삶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가장 먼저는 복장도 달라져야 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필요한 착장이 달랐다. 그리고 일단 힐이 있는 신발은 내다 버려야 한다. 유사시에 달릴 수 있는 가장 편한 운동화로 갈아탔다. 이제 나는 꽤 능력 좋은 뚜벅이다. 내가 타는 노선에서는 어느 열차칸에 타야 가장 빠르게 자리에 앉을 수 있는지, 가장 빠르게 환승할 수 있는 곳은 어딘지도 알 정도로 도다 텄다. 


먼저 신분당선 환승역이 있는 정자와 판교에서 내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 있는 칸을 선택한다. 그리고 빠르게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캔한다. "누가 가장 빨리 내릴 상인가?" 큰 가방을 들고 있는 학생이나, 판교에 있는 IT 기업에서 개발할 것 같은 개발자상을 찾는다. 그리고 그 앞에 바짝 붙어서 선다. 나의 예측 정확도는 꽤 높다. 10번 중 8번은 앉아서 가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나의 루틴대로 늘 타던 칸에 탔다. 바로 앉았다. 편안하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모처럼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음악 사이로 자꾸 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잘 들리진 않지만 "여러분!" "도와주세요~"이런 말 같았다. 내 이어폰의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 때문인가?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가 않았지만 굳이 내가 이어폰을 빼면서 그 내용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다리로 누군가의 머리고 쑥 들어오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내 앞에 틈도 없이 빼곡하게 서 있었고 한 남자의 머리는 그 수많은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내 다리 앞까지 훅 들어왔다. 


"아!! 뭐야!!!!"


그 남자는 이렇게 소리쳤다. "제가 이어폰 한쪽을 떨어뜨렸어요. 좀 찾을게요!"

그 말을 반복하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바닥을 왔다 갔다 했다.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아 뭐 하는 거야?"

"아... 진짜..."

"이봐요~"


그러자 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소리쳤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이어폰 한쪽을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검은색입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라 이 근처에서 아직 신호가 잡혀요.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어폰이 제게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에요. 아이들이 선물해 준거예요. 꼭 찾아야 해요. 제가 원래는 판교에서 내렸어야 하는데요. 여기까지 왔어요."

나도 드디어 이어폰 한쪽을 빼고 그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지하철은 양재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요. 이건 꼭 찾아야 해요. 아까 사람들이 많이 내릴 때 제가 양보하면서 떨어진 거거든요. 아 정말 꼭 찾아야 해요. 도와주세요. 발 밑을 한 번만 봐주세요."


이 사람의 말이 끝나자 그 비좁은 지하철 칸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 벌어진다. 나는 일단 다리를 번쩍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옆사람도 그 옆사람도 앞사람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기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바닥을 비춘다. 어떤 사람을 고객을 숙여서 의자 밑을 쳐다본다. 그 남자분의 얼굴을 보니 거의 울상이다. 이 날씨에 땀까지 줄줄 흐르고 있다. 분명 불편한 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발 밑을 쳐다보았다. 너무 안타깝지만 아무리 바닥을 쳐다봐도 그분이 애타게 찾는 검은색 블루투스 이어폰은 보이질 않았다. 


강남역이다. 나는 내려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분의 이어폰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리는 순간까지 나는 바닥을 보며 그분의 이어폰을 찾고 있었다. 내가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리고 그 칸에 있었던 사람들은 왜 모두 그 남자의 이어폰을 찾기 위해 움직인 걸까?


우리는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어떤 사람은 아이가 있는 부모여서 그분의 스토리에 공감할 수 있었고 어떤 이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에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그를 위해서 움직였다. 


출근길에 일어난 짧은 해프닝이었지만 업무를 하는데도 적용할 수 있다. 지금 내 최대 고민은 새롭게 선보인 서비스의 '구매 전환'이다. 어떻게해야 고객이 새롭게 제안하는 우리의 서비스를 구매를 할까? "어떤 기능이 있고, 경쟁사 보다 무엇이 뛰어난지 많이 알려줘야 할까?" 물론 그게 정보로는 고객에게 전달될 수는 있지만 고객의 행동을 만들지는 못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선물해 준 이어폰을 찾는 한 아빠의 스토리처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전할 수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들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의 공감, 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한 누군가의 증언 등 '스토리'가 그들의 행동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비스를 알리는 랜딩과 크리에이티브, 상담 스크립트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들의 스토리가 될 수 있는 걸 찾고 고객가치제안으로 만드는데 집중해 보았다. (덕분에 야근도..했다..) 


그런데 그 남자분은 소중한 이어폰 한쪽을 찾았을까?

진심으로 종착역인 신사역에서 극적으로 찾았길 바란다. 

지각은 했겠지만 행복하게 출근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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