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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Mar 25. 2018

레이디 버드에겐 날개가 있다

영화 <레이디 버드> Lady bird 2018


영화 <레이디 버드>를 시사회에서 봤다. 그레타 거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 그레타 거윅은 배우로 메기스 플랜, 우리들의 20세기 등에 출연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개봉 전이지만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고, 이 작품은 골든글러브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을 통해서 주연인 시얼샤 로넌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충분히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내력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미국 서부 새크라멘토에 사는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 맥퍼슨(시얼샤 로넌)의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한해(2003년)를 담고 있다. 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에 자신이 직접 지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은 그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 때때로 그녀의 어머니인 매리언(로리 멧칼프)은 그녀를 크리스틴으로 부르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주려고 한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 흐름이 엇갈려 진행된다. 레이디 버드가 대학에 지원하고 발표를 기다리는 이야기와 십대로서 친구들과 그리고 이성과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만났다 헤어지면서 영화가 나아간다.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나 캘리포니아의 대학이 아닌 동부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 한다. 문학의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하길 원한다. 하지만 학비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도 빠듯한 형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주지시킨다. 레이디 버드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해 어머니 몰래 결국 동부 대학들에 지원서를 넣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가정 안에서의 갈등과 관계들을 보여준다.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교의 뮤지컬 팀에 친구인 줄리와 함께 지원하게 되고 결국 배역을 따내고 그곳에서 같은 재단 고등학교에 다니는 대니를 만나 사귀고 또 시간이 지나 대니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음악을 하는 카일과도 만난다. 그리고 단짝이었던 줄리와의 관계도 여러 부침을 겪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설명하면 전형적인 가족 서사나 십대 성장물 같아 보이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큰 이야기의 줄기는 분명 전형적이나 내부의 이야기와 관계들은 전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서 레이디 버드의 가족 구성은 부모와 브라질에서 입양한 오빠와 그의 애인, 레이디 버드로 이루어져있다. 레이디 버드의 어머니인 매리언이 레이디 버드가 최고의 모습이길 원하며 다그치고 갈등고 심해질 때도 있지만 매리언은 레이디 버드의 의사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레이디 버드도 매리언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이 갈등하다가도 이쁜 옷을 발견하면 그 옷에 대해서 잘 어울린다고 마음에 든다고 화제를 돌려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진학에 관한 부분에서는 가장 큰 갈등을 보여주지만 여타의 영화와 다르게 진행된다.

레이디 버드의 또래 친구들과 이성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레이디 버드는 그저 착하거나 나쁘지 않다. 복합적이며 자신의 기분과 감정, 호기심 그리고 허영심을 최선을 향해 따라갈 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깨닫고 성장해나간다. 그래서 쉽게 화해하지도 쉽게 미워하지도 않는다. 인상적이 었던 것은 레이디 버드가 다니는 가톨릭 학교의 교사들의 모습이었다. 여타 다른 영화였으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강압적이거나 보수적으로 그릴 텐데 이곳의 교사들은 학생들을 존중하고 같은 눈높이로 소통한다. 이들과 레이디 버드가 갈등하는 장면은 극에서 갈등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의견이 부딪히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 드라마 장르로 분류된다. 십대의 한 해가 그려진 영화가 코미디로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 같다. 코미디가 우스운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위트 있는 톤으로 그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잔잔하고 정직한 톤도 필요할 때 제대로 구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연출력과 각본의 호흡에서 많은 부분 발휘된다.

레이디 버드를 보면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의 꿈과 어머니가 고백했던 한계가 부딪히는 고등학교 마지막 한해를 난 기억 한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나를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난 그날까지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당연히 한계를 정확히 계산하는 법도 그 한계를 돌파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한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아들이 겪을 좌절을 알지 못했다. 직접적을 부딪혔던 한 해가 지나고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만큼 떨어져 지냈다.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여러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 반응하는 레이디 버드의 방식을 보면서 생각은 깊어졌다. 그녀는 전혀 비굴하지도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레이디 버드는 분명 크고 넓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까지 날아갈 수도 있고 그리고 사람들을 품어줄 수도 있는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그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품어주는 게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분명 날개는 자라 가고 있고 언젠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날개가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 레이디 버드가 도달한 성장은 성장의 완성이 아니라 더 나아질 크리스틴(레이디 버드)을 예감하게 했다. 


레이디 버드가 마지막에 음성메시지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기는 말들이 계속 생각났다. 새크라멘토를 처음 드라이브했을 때의 느낌에 대해 묻고 자신이 처음으로 새크라멘토를 드라이브했을 때의 느낌을 말하는 장면. 상대의 입장과 더불어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은 진정한 이해의 순간을 목격한 시간이었고 난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레이디 버드는 모든 부분에서 정말 훌륭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훌륭했다. 그리고 여러 미국 소설들이 떠올랐지만 이보다 뛰어난 소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레타 거윅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레이디 버드를, 크리스틴을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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