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을 브런치 시사회 초대를 받아서 관람했다. <그린 북>은 비고 모렌슨(토니 립-일명 떠벌이 토니),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떠벌이 토니는 뉴욕의 클럽에서 보안을 담당하며 살아가는 이탈리아계 중년 남성이다. 거칠고 주먹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교육은 그다지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전통적인 남편과 남성 역할을 성실히 해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그리고 이탈리아 인 친척들과 함께 살아간다. 돈 셜리는 흑인이고, 카네기 홀에서 혼자 산다. 그는 뛰어난 피아노 아티스트이고, 자기 이름을 딴 삼중주단을 이끄는 유명인이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박사이며, 교양과 고결함을 믿는 사람이다.
돈 셜리는 미국 남부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남부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심했고, 북부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떠벌이 립에게 운전기사로 수행해줄 것을 제안한다. 마침 일을 찾고 있던 떠벌이 토니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떠벌이 토니가 운전을 하고, 돈 셜리는 뒷좌석에서 토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부로 떠난다. 삼중주단의 멤버인 다른 두 명도 다른 차에 타고 떠난다. 이때 토니는 셜리의 음반사로부터 <그린 북>이라는 가이드북을 받는다. <그린 북>은 흑인 여행자들도 환영하는 남부의 음식점과 호텔을 실어놓은 여행 가이드였다.
이 영화는 로드 무비이고,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구도가 전형적이고 그 구도가 흔히 예견하는 결말로 달려간다. 다만, 인종에 대한 편견을 뒤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한다. 편견을 뒤틀면서, 인종차별과 인종적 경험의 복잡성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피상적으로 인종차별을 다루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떠벌이 토니가 라디오를 통해서 흑인 가수들과 흑인들이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놓지만 돈 셜리는 그에 대해 모르고, 흔히 흑인들이 좋아한다고 알려진 켄터키 프라이드치킨도 토니는 좋아하지만 셜리는 먹어본 적도 없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도 미국 내에서 차별받았고, 그래서 떠벌이 토니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건 어쩌면 전형적일 수 있다.
셜리는 러시아에서 교육받은 피아니스트이고 여러 분야의 박사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흑인 중에 그런 사람이 적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기보다는 영화상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 그래서 백인에게 글과 교양에 대해서 가르치는 흑인 캐릭터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구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운전석에 앉은 토니와 뒷좌석에 앉은 셜리 박사이다. 이 구도의 장면은 계속해서 나오고, 이 장면을 관객들도 목격하지만 그들이 앉은 차 옆에 정차한 차 안의 백인들도 목격하고, 밭에서 노동하는 흑인들도 목격한다. 이는 셜리가 흑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지도 자라지도 않았고 또 백인들로 둘러싸인 채로 성공적인 예술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그리고 무대와 관련 없는 순간에 셜리 박사는 그저 흑인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건물 밖에 있는 간이 화장실을 써야 하는 처지이고, 흑인이기 때문에 두들겨 맞는 처지이다. 떠벌이 토니와 셜리 박사의 관계는 무대에서 멀어진 공간에선 끊임없이 오독당하며 이는 모두 인종차별에 근거한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그 편견을 강요하는 시선들 그리고 그 편견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들을 배제하거나 폭력을 가해서 자신의 편견에 맞춰버리려는 차별들. 그래서 떠벌이 토니가 셜리를 두고 자신이 더 흑인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당신보다 내가 더 흑인이다라고 말할 때 셜리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셜리는 북부에서만 공연을 했으면, 더 존중받으면서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공연을 했을 텐데 왜 이런 차별이 더 선명한 남부로 매번 떠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아마 고결함이 천박함(인종차별)을 이길 수 있다는 셜리 박사의 믿음과 무대 위의 흑인을 존중받는 흑인을 보여주고 싶다는 굳은 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인종 차별과 싸우는 어느 흑인의 담대하고 고결함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이런 고결함과 담대함을 지닌 이의 고독과 괴로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남부로 떠났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고, 떠벌이 토니의 관점에서는 가족에서 떠나서 혹은 흑인을 차별하던 자신을 떠나서 돌아오는 이야기이고, 셜리의 입장에서는 흑인들로부터 유리된 흑인인 자신이 '흑인'이 되었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두 사람을 바꾸고 두 사람의 관계를 바꾼다.
여행이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여행을 함께한 사람이 사람을 바꾼다. 함께 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지는 않게 되지는 않지만 이따금 그런 일이 일어난다. 상대를 향해 냉소하는 이들보다, 서로를 보며 이해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이 언제나 즐겁지도 언제나 좋은 일은 아니지만(무례할 수도 있으니) 결국 문을 여는 사람은 누군가의 두드림을 듣고 열어주는 것일 거다. 이제 <그린 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인종 차별이, 다른 차별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슬프게도 그 차별이 단기간에 해결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다고 여전히 믿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는 차별받는 곳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사람 옆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