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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Mar 12. 2019

디즈니랜드에서의 일주일

애너하임 디즈니 파라다이스 피어 호텔/상하이 디즈니랜드 리조트 호텔

여행기자였고, 여행작가라는 이유로 '최고의 여행지'를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내 대답은 늘 '디즈니랜드'였다. 절반은 진심이고, 절반은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고른 답이었다. 나름 성공적이었다. 다들 '디즈니랜드? 왜?'라며 되물었으니까. 


디즈니랜드에서의 일주일 

취재차 미국 애너하임 디즈니랜드에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놀이공원에서의 일주일이라, 새로운 경험을 쫒는 여행자라면 그런 일정 따윈 짜지 않을 것이다. 놀이공원이란,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고 어김없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놀이기구의 운동에너지를 지켜보는 건 여행자로서 직무유기처럼 느껴지니까. 유명 놀이기구를 정복하듯 해치우고, 인스타용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면 나도 디즈니랜드를 '미국의 에버랜드'쯤으로 기억했을지 모른다. 자세히 볼수록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건 국적 불문, 만국 공통이다. 



동화책으로 체크인 
디즈니랜드가 보여주는 마법의 방점은 '호텔'이다. 나는 
애너하임에 있는 4개의 디즈니 호텔 중 '디즈니 파라다이스 피어 호텔'에 묵었다. 객실 상태가 훌륭하진 않았다. 낡았고, 촌스러웠다. '내가 너무 늦게 찾아온 탓이겠지' 아쉬움을 중얼거리며 커튼을 걷어내자, 창 밖 풍경이 나를 달래주었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대관람차도 디즈니랜드식 청룡열차 '파라다이스 피어'도 모두 눈 앞에 있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디즈니랜드를 하나씩 뜯어보고 있을 때 누군가 찾아왔다. 똑똑. 나가보니 도날드 데이지가 쿠키를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웰컴 쿠키라며 성인 남자 손바닥 만한 초코칩 쿠키와 코인 초콜릿을 건네는데, 눈이 커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어린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쉬멜로우나 캐러멜이 들어 있는지, 쫀득하고 두툼했던 초코칩 쿠키. 먹는 순간 엉덩이와 옆구리로 직행해 떨어지지 않을 아메리카의 달콤함이었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알록달록한 베딩 따위, 미국 어린이 놀이한다 셈 치지 뭐. 호텔의 작은 서비스는 여행의 시작을 한 번에 바꾸는 스위치가 되기도 한다. 


에버랜드 리조트에서도 묵어본 적이 있다. 당시 새로 오픈한 에버랜드 사파리인 '로스트밸리'의 수륙양용차를 기다림 없이 타고 싶어서였다. 친구들과 리조트 중 가장 저렴한 온돌방에 묵었는데,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엠티 때 주로 묵었던 방 하나 덩그러니 있는 스타일에, 놀이공원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콘셉트였으니 말 다했지.


취재가 끝나고 돌아오면 매일 밤 창문에 매달려 숨은 놀이기구 찾기
다시 봐도 촌스럽지만, 그리운 야자수 베딩
'하나만 더 주면 안 돼?' 쪽지를 쓰게 만든 초코칩 쿠키


미키와 함께 조식을  

놀이공원의 숙박시설은 놀이공원의 일부여야 한다. 디즈니랜드에서는 레스토랑이나 로비에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구피 등 디즈니 지분을 꽉 잡고 있는 캐릭터들이 랜덤으로 나타난다. 손님들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도 언제나 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캐릭터를 만나면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고! 미키마우스 모양의 각종 쿠키와 와플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엄마가 숟가락 들고 따라다녀야 간신히 먹던 아이들도 테이블을 떠나지 않는다. 맛은 좀 덜해도 여긴 미슐랭 레스토랑이 아니고, 놀이공원이니까. 캐릭터들의 재롱에 절로 마음이 열리고, 인심이 후해진다. 클럽 룸에 묵는다면, 매일 밤 9시에 로브를 걸친 미키 마우스와 굿나잇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이때 TPO를 아는 손님들은 방에서 로브를 걸치고 미키를 기다리고, 미키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와 기념 촬영을 한 후에야 자리를 뜬다. 하루 종일 곳곳에서 미키를 보고 직접 만나고 했으니, 내가 조금만 더 순순했어도 꿈에 미키가 나왔을 거다.  



호텔 투숙객에게는 놀이공원을 보다 더 잘 이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즈니랜드까지의 무료 셔틀이나 무료 페리는 기본이고, 호텔 투숙객들은 오픈 시간보다 먼저 입장할 수 있다. 이건 디즈니랜드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는 호텔 투숙객들이 오픈 시간보다 최대 1시간 먼저 입장할 수 있도록 했고,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10시 이전에 무료 셔틀을 이용하면 정문이 아닌 다른 입구에서 내려준다. 상하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이 '트론'과 가까워 정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제칠 수 있다. 불꽃놀이 시간에 방에서도 배경 음악이 똑같이 흐른다. 조금 멀리 보이긴 해도, 조용하게 색다르게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디즈니랜드를

의도치 않게 주기적으로 디즈니랜드를 갔다. 애너하임을 가고 싶지만 일하면서 미국행 휴가를 가는 건 쉽지 않았고, 마침 디즈니랜드 최초로 현지화된 디즈니 파크 상하이가 오픈했다.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는 파란 하늘이지만 포기할 수밖에. 상하이 디즈니랜드만 3일 다녀온다는 내게 되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디즈니랜드가 그렇게 좋아?



질문에는 '다 큰 어른'이 '놀이기구'가 그렇게 재미있냐는 무시가 반 스푼 섞여 있다. 나는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디즈니랜드는 내게 놀이공원이 아니라 환상 세계다. 비슷한 체구의 아르바이트생을 뽑아 모든 미키마우스와 모든 구피가 같은 행동을 구사하고 같은 사인을 연습한다. 현실에서도 내가 두 명일 순 없듯이, 미키마우스 아르바이트생끼리 마주치는 일도 없다. 미키마우스 둘이 손잡고 걷기라도 하면 디즈니랜드 세계관이 무참히 무너질 테니!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도, 근무 교대를 하는 모습도 내겐 보이지 않는다. 직원들만 다니는 지하세계에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기 때문에 나는 공연만 볼뿐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 월트 디즈니가 만든 완벽한 환상세계를 그저 즐기면 된다. 철저히 짜고 치는 <트루먼 쇼>라 해도, 나는 걱정 없고 오차 없는 그 세상이 그립다. 


미니마우스 전매특허 포즈. 디즈니랜드 캐릭터들은 캐릭터마다 동일한 키로만 채용해서 같은 포즈를 교육시킨다. 보고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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