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토)
[7일 차] Treviglio ~ San Marino del Lago 89km / 누적 거리 591km
계속 조식을 먹고 출발하니 아침마다 늦장을 부리는 것 같다. 오늘은 안 먹는다. 6시 반쯤 출발하고 싶었지만 조금 늦게 일어났다. 호텔 앞의 예쁜 테라스는 저녁에 레스토랑이 되었고, 불금의 여파로 11시가 넘어서까지 매우 매우 시끄러웠다.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나도 음악을 틀어놓고 12시가 넘어서 잤다.
7시 반쯤 출발해서 차가 아주 많이 다니는 SP 도로를 탔다. 왜냐하면 옆에 가드레일로 완벽 분리된 자전거 도로가 있기 때문이지!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산한 SP 도로로 갈아탔다. 차량 통행량이 생각보다 괜찮다.
구글 지도에서 안내하는 길로 가로질러 갔더니 말도 안 되는 숲길이 나왔다. 이거 인간적으로 비포장 표시 해야 하는 도로 아닌가요? 어쨌든 중간까지는 왔으니 다음 도로로 가기 위해 끌바를 했다. 아침 이슬이 신발에 맺혀서 풀떼기가 잔뜩 묻었다.
이렇게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포장되어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강변을 따라 들판을 나아가고, 가로수를 지나며 한적한 SP 도로를 요리조리 잘 찾아내서 달렸다.
가다가 차가 많아지는 큰 도로를 만나면 귀신같이 옆에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롬바르디아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아..
크레마(Crema)를 지날 때는 철길을 건너야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메인도로가 통제되어 있었다. 기차역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우회해서 건너갈 수 있었다.
한 35km 정도 달리니 배가 고파서 길가에 열린 바를 들어갔다. 초콜릿 크로아상과 라떼마끼야또, 마무리로 제로콕을 먹었다. 카페 사장은 아주 친절한 젊은 여자였는데 방금 바닥에 물걸레질을 했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빵도 하나하나 종류를 설명해 주고,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게 충전선을 빌려줬다.
커피와 빵을 받아 테라스에 앉았더니 옆에 귀여운 강아지와 아저씨도 왔다. '자전거로 투어 중이야? 자전거 진짜 bella다!' '응, 그쪽 강아지도 bella~'
자전거 표지판이 있는 이런 멋진 도로가 나와도 난 가지 않았다. 달리기 좋을 뿐이지, 내가 가는 길은 아니다. 나는 이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한다.
중간에 마을이 가끔 나왔는데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듯 조용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다음 큰 도시까지 조금 더 달린다.
크레모나(Cremona)에 도착했다. 원래 여기서 잘까 했었는데 어제 찾아보니 이미 숙소가 별로 없었다. 주말이라 그런 것 같다. 가야 할 방향으로 미리 봐둔 곳이 몇 군데 있어서 자전거를 조금 더 타보려고 한다.
중심가를 지나면서 적당한 바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요즘 QR로 메뉴판을 대체한다. 주문한 리조또가 7.5유로인데 4유로짜리 음료 3개랑 1유로짜리 물 1개를 먹으니 마시는 값이 더 나왔다. 여긴 병음료가 넘 작아... 200ml라니.. 차라리 캔으로 주는 곳이 고맙다구요.
시내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푸드트럭과 야외 식탁이 잔뜩 깔려있다. 난 이미 밥을 먹어서 이곳은 그냥 구경만 했다.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서 사람들만 피해서 살살 지나갔다.
약 30 km 남았으니 다시 출발~ 길은 비슷했다. 자전거 도로가 있거나 차가 적거나. 차도를 달릴 때는 화물차들 때문에 이미 무너져버린 아스팔트가 너무 울퉁불퉁해서 승질이 났다. 차가 언제 올지 모르니 가운데로 달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지친 라이딩 중 나타나는 로드 아저씨들 중에 밝게 인사해 주는 사람들이 반갑다. 덥고 힘들지만 조금씩 힘을 내서 달려본다.
아까 점심 먹으면서 숙소를 예약했는데, 길가에 있는 이 B&B는 표식이 없어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로드뷰를 보고 겨우 찾았다. 30분 전에 왓츠앱으로 연락이 왔던걸 답장했더니 앞에 도착하자마자 자동문을 열어줬다. 아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영어를 잘하는 딸이고, 나를 반겨준 건 영어를 거의 못하는 어무이다. 번역기로 자세히 설명을 잘해줘서 어려움은 없었다. 어무이가 번역기를 보여주셨다. '너 내 딸이랑 동갑인데 니가 훨 어려보이네??' 그렇겠죠, 나는 에이시언이니까..^_^
방은 엄청나게 크고 넓었다. 매우 매우 큰 거실이 따로 있고 그곳에는 커피머신과 커피포트, 우유, 주스, 생수, 다양~한 빵과 과자가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차도 뜨끈하게 타먹어야겠다. 아침에 눈치 안 보고 아메리카노도 마셔야지!!
샤워&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식당이라곤 2개밖에 없는 아주아주 작은 마을이다. 원래도 대도시에서 잘 안 자지만, 주말이라 더더욱 시끄러울 도심이 싫었다. 둘 중에 좀 더 빨리 여는 오스테리아로 가본다.
생맥주와 소고기를 시켰는데 너무 조금 시켜서 그런가 좀 놀라는 눈치다. 요즘 양이 줄어서 하나씩만 주문하그든..
스테끼는 피카냐라는 우둔살 부위였는데, 살코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었다. 같이 나온 바게트도 3개나 먹었다. 여긴 겉이 딱딱하지 않고, 공기반 밀반 아주 좋았다. 올리브유에 다암뿍 담궈서!
B&B 입구는 도로 쪽에 하나만 있었기 때문에 식당을 오가는 길은 인도 없는 지방도를 약간 걸어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지고 껌껌해져서 핸드폰에 빨간색 이미지를 틀어놓은 채로 역방향을 걸어왔다. 다행히 이 방향에는 차가 한 대도 안 지나갔다.
방에 돌아와서 뜨듯한 티를 몇 잔 마시고 과자도 좀 까먹어본다. 과자는 역시 내 돈 주고 사 먹을 필요가 없어,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