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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소설 Jan 01. 2018

어머니의 유서

'치매'에 대하여

사랑한다. 그동안 미안했다.


유서는 짧았다. 단 세 단어였다. 어머니는 이렇게 쓰고 결국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그해 겨울이었다. 속절없이 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스크와 목도리로 온 몸을 무장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 해 어머니께 라쿤털이 달린 두툼한 패딩을 보내드렸다. 선물을 받고 어머니는 행복해하셨다, 고 누나는 뒤늦게 말했다. 털이 참 보드랍다며 쓰다듬곤 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동물보호에 관심이 참 많으셨다. 그러나 패딩을 받았을 때조차 어머니는 라쿤털이라는 게 살아있는 라쿤의 가죽을 잔인하게 벗겨내 얻은 것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건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여름의 일이다.

아버지는 살해당했다. 친구가 빌려준 1억 원을 갚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수년 간 아버지를 쫓아다녔으나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불알 친구새끼가 나를 못 믿는다"며 그 친구를 수십차례 내쳤다. 어머니도 봤고, 나도 봤다. 우리집에 산다면 그 광경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세숫대야 채 뿌리기도 했고, 소금 한 바가지를 뿌리기도 했다. 친구는 아버지 앞에서 머뭇머뭇거렸다. 그 돈이 없어 이혼까지 당한 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냉혹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친구를 사지로 몰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그 여름.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식칼로 아버지의 흉부는 다섯 차례 난도질 당했다. 그 때도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곁에는 어머니가 서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건 그 모든걸 잊어버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고 나는 감히 짐작할 뿐이다.


ⓒ Alzheimer Society(alz.to/get-help/music-project)


그날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오락가락했다. 끊어진 필름처럼 어머니의 기억은 쉬이 이어지지 못했다. 어떤 때는 며칠이 이어졌고, 어떤 때는 몇 시간도 가지 못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침묵했다. 아버지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가장 힘들었던 건 누룽지였다. 어머니는 누룽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깜빡깜빡. 어머니의 기억이 짧게 끊어지는 날엔 누룽지를 만드는 일이 위험천만했다. 가스레인지를 켜놓은 채 어머니는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마치 저승을 다녀온 것처럼. 어머니는 환생한 듯 행동했다. 새 이승에서 누룽지는 없었고,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적도 많았다. 우리 세 남매는 어머니를 위해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을 들여놓았으나 어머니는 다른 사고를 연달아 쳤다. 밥통은 변기 안에 있었고, 이불은 잘 개인 채 차 트렁크 안에 들어가 있었다. 누나들은 점점 힘들어했다. 그렇게 3년 후, 우리는 어머니를 하얀 감옥에 가두었다. 요양소라 불리는 곳이었다. 나와 누나들은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 말하곤 한다. 우리도 그때 모든걸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슬픔도. 우리의 죄책감도.


우리도 그때 모든걸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오후 2시였다. 큰누나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큰누나는 울지 않았다. 나도 울지 않았다. 회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 나는 지금도 내가 울지 않았던 이유를 변명한다. 큰누나는 그때 혼자 집에 있었는데 왜 울지 않았던 것이냐고 묻지는 말아달라, 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하얀 감옥에 우리 셋은 함께 갔다. 큰누나가 새로 샀다는 외제차를 타고서다. 새 차가 정지선에 설 때마다 시동이 꺼졌다. 그러다 다시 앞으로 나아갈 땐 다시 시동이 켜졌다. 큰누나는 "덕분에 기름을 덜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차와 달리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신 뒤에 기름을 더 먹었다. 기억이 꺼졌다 켜진 다음에 어머니는 항상 밥을 찾았다. 밥 먹은 걸 까먹어서였다. 어머니는 하루에 네끼도 먹고, 다섯끼도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 토를 한 뒤에도 기억을 잃어버리면 무용지물이었다. 밥 먹고 토한 기억을 지워버린 어머니가 감지할 수 있는 건 '신체적 현상'뿐이었다. 비어버린 위장은 밥을 갈구했다.


하얀 감옥에서 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았다. 평온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표정이었다. 마지막 순간 느꼈을 고통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깊은 주름을 나는 언제쯤 이렇게 자세히 보았을까. 지난 7년간 나는 회사에 취직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과장 직함도 달았고, 새로운 코트도 여섯 벌 샀다. 그러나 그 동안 어머니는 변하지 않았다. 그 긴 세월동안 어머니는 내게 치매에 걸린 어머니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잊기 위해 치매에 걸려온 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에서야 겨우 치매에서 깨어나 어머니의 유서를 읽는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 소설은 아래 기사와 영화를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265034


http://m.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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