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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 Dec 27. 2024

워킹맘의 아침 전쟁, 아이가 건넨 평화의 한마디

워킹맘으로서 매일 아침은 전쟁이다. 8시 35분 통학버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바로 출근하려면 8시 28분에는 문을 열고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날 아침, 모든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문을 열려던 순간, 도어락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왜 이래? 이거 고장 난 거야?"


한여름 완공된 신축 아파트라 아직 정이 들기도 전인데, 도어락 문제로 골치를 썩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동안 '우리 집은 괜찮겠지' 하며 넘겼던 걱정이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등원해야 하고, 나는 출근 시간에 맞춰 서둘러야 하는데,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사정없이 문을 흔들어보고, 손으로 쳐보기도 하고, 온몸으로 밀어보았다.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다리는 몇 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더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시간이 없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문을 두드리는 내 모습은 아침의 고요를 깨는 동시에 아이들의 눈에도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다섯 살 서빈이와 세 살 나희는 말없이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러다 서빈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 괜찮아~ 경비아저씨 오기로 했잖아."


그 순간 나는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딱 한 마디였다. 아이는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불과 몇 주 전, 화가 난 서빈이에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가 나도 때리지 말고, 물건 던지지 말고, 숨 크게 쉬자."


내가 그렇게 가르쳤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날 아침 그 말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침착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내가 그토록 지키지 못했던 가르침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서빈이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그저 어린아이가 아닌, 누군가를 위로할 줄 알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느꼈다.


잠시 후 경비아저씨가 도착했고, 문을 열어줬다. 문이 고장 난 줄 알았던 나는 또 한 번 허탈하게 웃었다. 원인은 고장이 아니라, 도어락 잠금 설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만든 작은 사고였던 셈이다. 아마도 나희가 이것저것 만지다가 그렇게 설정해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등원버스에 무사히 올라탔고,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그러나 아침의 사건은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말로는 "화내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서빈이가 보여준 그 태도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육아는 언제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을 가르치려 할 때,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성장한다. 아침의 그 사건은 내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엄마가 되고자 다짐하게 만든 소중한 계기였다.


서빈이가 내게 한 말이 자꾸 떠오른다.

"엄마, 괜찮아."



그 말은 단순히 상황을 넘기는 위로가 아니었다. 내 부족함을 일깨워주고, 그 부족함을 극복할 용기를 준 말이었다. 나는 앞으로 아이들 앞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위로받으며 나도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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