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을 지고 머리를 뒤로 젖힌다. 태어나서 4년 동안 기른 머리가 제법 찰랑인다.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나희의 두 눈이 반짝인다. 나희도 해볼까? 하면 나희도 척하고 언니를 따라 자세를 잡는다. 눈을 감고 고고히 머리 감을 준비를 하는 둘째 녀석. 우리 집에 사는 두 공주님의 목욕시간은 제법 우아하다.
드로잉을 좋아하는 자매를 위해 목욕용 크레용을 선물했다. 화장실의 울퉁불퉁한 타일은 벽화를 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진회색 타일에 다섯 가지 색으로 열심히 무지개를 그리는 서빈이. 나희는 그런 언니 옆에서 폼을 잡으며 자유로운 추상화를 휘갈긴다.
한 날은 목욕하는 두 아이에게 물총을 쥐어주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물총 대결상대를 엄마로 정하고는 한 팀이 되어 나에게 총을 겨눈다. 히히- 맑은 미소 띤 아이들의 물줄기에 무장해제된다. 나는 기꺼이 그 귀여운 물을 맞아주다가 "얘들아 그만!" 외치면, 깔깔- 아이들의 웃음이 욕실의 온기를 꽉 채운다.
두 아이가 목욕을 마치면 욕실바닥은 온통 물바다, 널브러진 목욕 장난감들은 폭탄 맞은 것 마냥 어지럽다. '아아- 지겨워 지겨워' 소리가 방언처럼 나온다. 아이들을 감당하는 책임감의 무게는 경제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런 아이들의 흔적을 치우고 닦고 정리하는 것. 그 뒷감당이야 말로 부모로 거듭나는 진정한 수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찰나가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기꺼이 아이들의 일상을 보살핀다. 축축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고 드라이기로 말려준다. 고운 머릿결 한번 더 쓰다듬으며 맑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는 이 순간을 느끼는 지금이. 부모는 사실 벅차도록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