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적절한 데우기 시간
첫째 서빈이는 우유 온도에 아주 까다롭다. 한 번에 통과하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고, 최소 두 번은 그녀에게 컨펌을 받으러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녀의 하녀가 되어 수발을 들고 있다 보면 주도권 싸움의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나의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인해 부모에게 기어오르는 버릇없는 어린이로 서빈이를 키울 것만 같아 갸웃한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이 우리 집의 vcr을 보고 있는 상상을 한다. ‘아… 금쪽이 어머님! 우리 아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 패널들은 탄식하고, 화면 속의 나는 고개를 푹 떨군다.
더 이상 우유 온도로 아이와 씨름하지 않기 위해 우유의 양과 데우는 시간을 고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알게 된 최적의 시간 35초. 아뿔싸 우리 집 전자레인지에는 5초 단위가 없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40초를 설정한 뒤 10초 남았을 때부터 그 앞에서 초조하게 숫자를 센다. 7초, 6초, 5초 됐어 꺼내! 1초라도 틀려서 그녀에게 다시 컨펌받고 싶지 않기에 나는 최선을 다한다. 이게 맞는 걸까? 그래도 우리 부부가 찾은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
오늘은 저녁에 우유를 가져다주는데 평소보다 양이 많이 부어졌길래 한번 40초를 데워보았다. 아이는 한입 먹더니 뜨겁단다. 다시 우유를 들고 나온 엄마에게 같은 하인출신인 아빠가 쏘아붙인다. “그러게 35초가 딱 맞다니깐!” 옥신각신. 우유의 양이 많았다고 해명하며 우유의 적절한 데우기에 대해 대화하고 있자니, “너네 싸우지 마!!!” 그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우리 그냥 대화한 거야~ 우리 싸운 거 아니야.”
투닥거리던 우리는 그녀에게 단숨에 제압당한다. 오늘도 그녀에게 지고 또 지는 평화로운 우리 가족의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