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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14. 2020

가끔 작가, 대부분 백수로 사는 요즘

‘잘’은 지내고 있어요!


 지난 12월, 두 번째 책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출간했습니다. 서점에 책이 진열된 모습을 보면서 ‘만약 이 책이 대박 나면 어쩌지?’란 생각을 0.000000001초쯤 했어요. 예상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책도 저도 각각 서점과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중입니다. 그사이 세 번째 책 원고를 추가로 수정했습니다. 요즘은 그마저도 끝나서 백수가 됐네요. 허지웅 작가가 <나의 친애하는 적>이란 책에서 자신 ‘종종 방송에 불려 나가고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건달에 불과하다’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요즘 그래요.  

    

  2주 전부터 쓰고 수정해서 보낼 글이 없으니 할 일도 없더군요. 첫 주는 멍한 상태로 가끔 동네를 어슬렁거렸고, 둘째 주인 이번 주는 ‘글쓰기 스터디’에 제출할 작품을 쓰고 있어요. 늘 바빠서 짧은 글만 내다가 오랜만에 맘먹고 긴 글을 쓰기 시작했죠. 한데 10분 쓰고 2시간 유튜브 보고, 20분 쓰고 2시간 티브이 보고, 30분 쓰고 3시간 낮잠을 잡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오면 본격적으로 먹고 놀아요. 네, 이번 주도 망했습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남편은 절 걱정합니다. 주로 그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시간에 글을 쓰고 다른 일들을 처리하곤 하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눈에는 아내가 몇 달째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요즘 자꾸만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친구들 좀 만나고 놀아” 하면서 신용카드를 주는데, 그 모습이 사뭇 ‘기죽은 취준생 딸을 안타까워하는 아빠들’과 닮았네요.


  그래서 어제는 남편이 준 신용카드를 들고 동네 백화점에 갔습니다. 딱히 기분전환이 필요하진 않은데 굳이 등을 떠밀어주시니. 오래간만에 할인 매장에서 득템을 해볼까 했죠. 한데 막상 간 그곳에서 득템은커녕 기절할 뻔했습니다. 쇼핑하다가 우연히 한 아주머니를 만났거든요. 행색이 추레하고 얼굴이 측은해 보이는 40대 여자였는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어요. 저 여자가 왜 이렇게 낯익은 걸까, 생각을 더듬다가 주저앉을 뻔했네요. 그 아주머니는 쨍한 조명 아래 있는 거울에 비친 저였거든요. 세월이 이렇게 조용하고 치밀하게 덮쳐오는지 몰랐습니다. 자신을 30대 후반처럼 안 보이는 30대 후반이라 믿었는데, 거울은 진실을 알려줬습니다. 이제 40대처럼 보이는 30대 후반이 됐습니다.     


  전 이렇게 가끔 작가로 일하고, 대부분 시간을 백수로 보내는 중입니다. 얼마 전 한 회사에서 같이 일하잔 연락이 왔는데, 거절했습니다. 조금 더 백수로 지내면서 새로운 일들을 해보고 싶어서요. 물론 ‘새로운 일’에는 ‘새로운 글’에 대한 욕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몇 달은 글을 쓰느라 못했던 일과, 글을 쓰느라 쓰지 못했던 글을 쓰며 보낼 예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세 번째 책도 출간될 거고요. 아, 그리고 ‘책’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덧붙이자면 ‘출간하는 일’에 대한 ‘무게’를 체념하는 중입니다. 첫 책을 낼 때는 마냥 신나고 좋았어요. 근데 두 번째 책이 나온 후에는 즐거움보다 걱정이 큽니다. 책이란 게 ‘나의 성취’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업’이란 걸 실감했거든요. 책에는 내가 만족하는 글이 아닌 독자가 원하는 글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도 커졌고요. 결국, 책도 상품이고, 상품은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니까요.     


  짧게 근황을 전하려고 했는데, 또 글이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잘’은 지내고 있다는 것과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 말도 하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 2월 7일 금요일 저녁 7시에, 홍대 경의선 책거리에서 북 토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인스타 @sangsang.publishing 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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